추억의 운동회, 부활한 국민체조

by빛나다온

이 글은 워낙 어릴 적 일이라 드문드문 남아 있던 제 기억과 옛 운동회의 모습을 검색해 보며 찾은 자료들을 더해 완성한 이야기입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학교에서 큰 행사인 가을 체육대회가 다가오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장롱 속 오래된 앨범을 열어보면 꼭 하나씩 들어있을 빛바랜 사진들. 머리에 청군, 백군 띠를 두르고 하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뛰놀던 풍경이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라 부르던 그 시절. 국민학교 다니던 언니의 운동회 날이 다가오면 동네는 축제 분위기였다. 운동장에는 알록달록 만국기가 가을 하늘을 빼곡히 채웠고 운동장 사방에 그늘막(천막)이 설치가 된다. 경쾌한 동요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면 동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5남매 막내였던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언니의 운동회를 구경하러 학교로 향했다. 늠름하게 행진하는 언니를 찾으려고 눈을 굴렸다. 쿵쾅거리는 대형 스피커 소리에 내 가슴까지 터질 듯 뛰곤 했다. 이때부터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싶은 본능이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나도 입학하면 언니처럼 저기에 서겠지?"


몇 년 후 나도 입학을 하였다. 운동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이 끝나면 단연 '국민체조'가 시작된다.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https://youtu.be/a72NCO0OFXA?si=0JeSB49-_udBzmHn

다시 보는 국민체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 특유의 우렁찬 구령 소리에 맞춰서 수백 명의 전교생이 팔다리를 쫙쫙 뻗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에게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청소년체조'나 유연성을 강조한 '새천년 건강체조' 같은 새로운 체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음악만 흐르면 내 몸이 알아서 동작을 기억해 내는 건 역시 '국민체조'다. 그 시절 운동회는 단순히 학교 행사를 넘어 온 동네가 들썩이는 마을 잔치와도 같았다. 대도시가 아닌 촌동네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동네에 국민학교 다니던 언니, 오빠들이 많았으니 그 열기가 오죽했을까.



반별 학년별로 총소리에 맞추어 100미터 달리기 또한 재미난 구경이었다. 요즘은 달리기 신호로 호루라기를 불지만 그때는 선생님이 오른손을 귀옆에 붙이고 하늘을 향해서 땅! 하고 쏘면 하얀 연기가 나오더니 금세 사라졌다. 그때의 총소리는 왜 그리 컸는지... 멀리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나도 무서워서 귀를 막곤 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저학년들의 귀여운 춤도 눈에 선하다. 흥겨운 멜로디는 아직도 귀에 맴돌지만 노래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검색해 보니 '꼭두각시 춤'이었다. 앙증맞은 한복에 족두리를 쓰고 볼에는 빨간 연지곤지를 바른 채 짝꿍과 손을 잡고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던 그 모습, 요즘 학생들에게 시키면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에서 발췌



고학년 여학생들은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고운 한복을 입고 분홍빛 부채를 차르르~ 펼치며 넘실대는 파도와 동그란 꽃을 만들었다. 이런 춤을 선보이기 위해서 한두 달 전부터 연습했을걸 생각하면 그 시절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에서 발췌
사진 출처: 네이버에서 발췌


곤봉 돌리기도 볼거리 중 하나다. "슉- 슉-" 소리를 내며 칼같이 맞춰 돌리던 그 듬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요즘 곤봉 돌리기를 하라면 아마도... 어땠을까?




박 터뜨리기에 빠질 수 없던 천 주머니, 바로 오자미(오재미)에 대한 풍경도 떠오른다. 천 속에 콩이나 모래를 넣어 청군 백군 할 것 없이 커다란 박을 향해 오자미를 힘껏 던지면 마침내 박이 쩍 갈라지며 오색 가루와 축하 현수막이 쏟아져 내릴 때의 그 짜릿함은 누구나 경험했을 듯하다. 요즘도 박 터트리기와 공 굴리기 등 체육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경기다.



줄다리기까지 오전 경기가 무르익고 마침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면 그늘진 잔디밭을 찾아서 돗자리를 깔았다. 엄마가 아침부터 정성들여 싼 3단 도시락 뚜껑을 열 때면 김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언니와 나는 한없이 기뻤다. 김밥과 삶은 계란, 그리고 사이다 한 모금을 들이키던 맛까지 잊을 수 없는 낭만 가득한 시절이었다.


학교 정문 앞에는 리어카를 끌고 온 상인들이 알록달록한 장난감을 늘어놓았다. 평소 같으면 눈길도 못 줄 장난감을 유일하게 맘껏 탐낼 수 있는 특권의 날이기도 했다.



배를 든든히 채운 뒤 시작되는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이어달리기의 계주만큼 인기 있었던 고학년 남학생들의 차전놀이였다. 단단하게 짠 가마 기둥을 수십 명의 학생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그 위에서 머리띠를 두른 대장이 호령을 내리며 웅장하게 입장했다.

사진 출처:네이버에서 발췌


청팀과 백팀의 대형 동채가 거친 함성과 함께 상공에서 쿵 하고 맞부딪칠 때의 전율이란... 위풍당당하게 상대 동채를 누르고 머리띠를 빼앗으려는 결투가 벌어지면 온 운동장은 민속 축제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뜨거운 함성으로 울려 떠나갈 듯했다. 내 눈에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아직도 아기들 같은데 그때의 남학생들은 그렇게 늠름했나 보다.

사진 출처:네이버에서 발췌



요즘은 운동회라는 이름보다 체육대회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봄에는 체험 위주 축제로 운영되고 가을에만 체육대회를 여는 학교도 있다. 햇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이벤트 업체 슬롯자가 마이크를 잡고 매끄럽게 행사를 진행한다.


한복이나 족두리 대신 반 아이들이 직접 맞춘 알록달록 개성 넘치는 반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점심 역시 돗자리 도시락 대신 학교 급식으로 대체되었다. 부모님들이 도시락 싸는 번거로움이 사라져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잔디밭에 둘러앉아 나눠 먹던 그 시절의 낭만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가을 체육대회를 앞두고 그 옛날의 '국민체조'가 다시 핫하게 부활하고 있다. 학년 교실에서도 국민체조를 연습하지만 복습차원에서 돌봄 교실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국민체조 영상을 틀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반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내 몸은 알아서 첫 번째 동작부터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나게 팔다리를 뻗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셔플댄스에 비하면 나에겐 국민체조는 쉬운 운동이다. 비록 꼭두각시춤의 귀여움, 차전놀이의 짜릿함이나 우아한 부채춤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체육대회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설렘은 예전이나 지금도 같을 것이다.


마을 잔치나 다름없던 큰 축제였던 운동회가 세월이 흐르며 점차 축소되어 가는 모습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비록 풍경은 달라졌어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시절 운동회의 낭만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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