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달전리에 천연기념물을 보며
주상절리(柱狀節理)라 하면 흔히 제주 중문 해안이나 경주 양남의 탁 트인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블로그를 보다가 신기한 장소가 궁금증을 유발했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 곳인데 이색적인 장소가 있다니... 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햇살이 내리쬐는 무더운 7월, 더위에 고생할까 봐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벼가 푸릇푸릇 익어가는 정겨운 시골길. 파란 하늘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완벽한 여름날이었다.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불안해질 때쯤 바람에 나풀거리는 초록빛 논밭 너머로 웅장한 병풍 같은 산이 보였다.
비포장 흙길을 따라 걸어가자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점점 커다랗게 다가왔다.
"와, 이런 곳에 꽁꽁 숨어 있었구나!"
요즘은 요리보고 조리보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부터 길가 주변까지 신기한 구석이 있을까 싶어 꼼꼼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조금 더 걸어가니 빽빽한 대나무숲이 나타났다.
한낮인데도 괜히 으스스한 기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다. 이 길의 끝에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무서움을 눌러주었다.
마침내 안내판을 지나 마주한 풍경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와~~~~~아!!!
38도가 넘는 폭염에 땀은 또 어찌나 흐르던지...
"와~ 거인이 성냥개비나 나무젓가락을 차곡차곡 쌓아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랄까? 부채를 펼친 모습이랄까?"
수천만 년 전, 뜨거운 용암이 식어가며 육각형 기둥으로 굳어 만들어졌다는 경북 포항시 달전리에 위치한 이 육상 주상절리는 2000년 4월 28일에 천연기념물 제415호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 아래에는 방문객들이 하나둘 쌓아 올려둔 귀여운 돌탑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돌탑 사랑'은 정말 못 말린다. 저 압도적인 바위 병풍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건강과 행복, 로또 1등 같은 염원들을 돌을 쌓으며 빌었겠지?"
미신을 믿진 않지만 그냥 갈 수는 없기에 마음에 드는 동글동글한 돌을 집어 들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보니 욕심이 생겨 야무지게 5층 탑을 완성했다. 그리고 소원도 빌었다.
"오, 내 탑이 여기서 제일 튼튼하고 예쁜데?"
뿌듯함도 잠시 꼭대기에서 자라나는 나무들 때문에 주상절리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 모습은 어땠을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2017년도 경북일보 기사에 의하면 주상절리 상부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쌓이고 나무들이 우거져 훼손이 심해지자 포항시에서 흙을 걷어내고 나무를 제거하는 대대적인 보존 정비 작업을 했다고 한다.
-------------------------------
-------------------------------
기사 속 과거 '정비 전' 사진을 보니 그때 정비를 거친 덕분에 지금 내가 본 반듯하고 선명한 부채꼴 병풍 모양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으니 또 시간이 흐르면 이 모습도 조금씩 달라질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직접 경이로운 자태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얼마전 다녀온 포항바다화석 박물관에도 주상절리 사진이 전시되어있었다.
주상절리를 보며 감탄하다가도 겸손함이 밀려왔다. 얼마 전 네팔을 덮친 홍수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웅장한 바위 병풍 앞에 서니 그 막강한 힘 앞에 나는 얼마나 작고 무기력한지 새삼 느꼈다.
자연을 결코 다스리거나 이기려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감사히 누리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주상절리가 나에게 건네는 삶의 교훈 같았다. 한참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어...생각해 보니까 여기 나 혼자잖아?"
사방이 조용해지자 아까 지나친 대나무숲의 으스스함이 뒤늦게 밀려왔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내려왔다.
#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거인
#부채 #병풍 #경주 #제주도 #돌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