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아픈 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아침부터 일이 잘 풀리는 날이었다. 오전에 숲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숲 속의 에너지를 느꼈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동과 나의 에너지가 만났다. 흔들리는 그 파동 속에서 긍정적 에너지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하늘은 그날따라 더욱 파랗고 높았다. 가을바람의 약간 서늘함이 내 뺨을 스치고, 그렇게 나무들을 스치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가 연주처럼 들렸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한 줄기의 햇빛이 내게로 바로 전달되었다. 도토리와 밤톨을 보며 완연한 가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에 집중했다. 들이마시고, 내 쉬는 그 모든 숨소리마저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것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기분과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숲 치유 프로그램이 주제는 ‘티 테라피‘였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들꽃차를 준비해 주신 강사님께서 하나씩 설명해 주셨다. 들꽃차의 효능을 들으니 그것이 목을 타고 내 몸 구석으로 퍼져 치유가 되는 듯했다. 티하우스 안에서 보이는 호수 공원은 그림 같았고, 그 동화 속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그렇게 숲 치유 프로그램이 끝나고 호수 공원의 산바카라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분수쇼의 경이로움을 만끽했다. 파란 하늘빛이 내게 닿은 기분이었다.
그날따라 소울메이트 친구와 연락이 되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는 이야기, 지금 느끼는 생각, 시시콜콜한 속 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벅찬 순간이었다. 날이 좋다며 야외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광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다. 우리들끼리 동네 공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했다. 부침개와 과일, 견과류까지 야무지게 도시락을 챙겼다.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지지 않은 장미꽃 정원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으며 “좋다. 참 좋다. “라고 쉴 새 없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도 처음 아팠을 때보다는 지금이 좀 좋아진 것 같다고 말이다. 처음엔 아파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소풍을 즐기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고.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마음속의 고민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적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좋은 경험들로 나를 채우고,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웃었던 날. 아이러니하게 그날 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으로 머리를 감싸지고 괴로워했다. 뒷목이 아프고 관자놀이 옆쪽의 근육들이 굳어있어 어떻게 해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귓속에서는 이명이 심해지고, 나의 균형 감각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이 빙빙 돌고, 속이 울렁거렸다. 이석증 자가 치료 영상을 보면서 침대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았다. 심한 구역질이 나면서 멀미를 하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빙빙 돌고 심한 구역감으로 금방이라고 구토를 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와 절규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시험 기간이라 공부하던 아들도 안방에 들어와 날 부축했다. 구토를 하고도 나의 속은 여전히 힘들었고, 머리도 여전히 어지러웠다. 급하게 두통약을 찾아 먹고, 잠들기 전 먹는 약을 서둘러 먹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날. 운수 좋았던 그날. 난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결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복직을 해야 할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하나? 내가 힘든 이유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일까? 아니면 지금 그 일에 대한 힘겨움 때문일까? 조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복직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난 어쩌면 또다시 괜찮은 척 내 삶을 오히려 즐기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정말 힘들었다. 주변에서도 이제 복직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제 나 역시 결정해야 할 때라고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어떤 날은 괜찮아졌나 싶은 날도 있는데, 과연 일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일하지 않고 지내는 일상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의 꼬리들이 내 몸의 신호로 다시 나타났다. 이틀은 시체가 된 사람처럼 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이석증 검사와 피검사 등을 시행했다. 약을 먹기 위해 겨우 죽을 몇 숟가락 먹고 누워만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밥을 차려주기는커녕 내 밥을 차려 먹을 힘도 없었다.
3일이 지났을 때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날 이후에 심하게 아팠노라 말했다. “분명히 무슨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야.” 친구가 말했다. 그때도 난 “글쎄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이렇게 답하고는 이내 “아! 이번 주에 복직에 대해서 고민을 하긴 했어.”라고 말했다. 친구는 0.1초 만에 바로 ”그거네!! 그것 때문에 힘들었네.”라고 말했다.
그랬나 보다. 나도 모르게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나 보다. 괜찮아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어쩌면 괜찮아져야 한다고 또 스스로를 다그친 것이었는지. 나의 괜찮아짐은 슬롯적 역할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안 괜찮았던 것이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아팠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몸이 다시 보내온 신호에 나는 다시 작아졌다. 돌아가기를 고민하던 날, 두려움이 다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괜찮은 날과 아픈 날 사이를 오간다. 괜찮아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이에서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을 바꾼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회복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다시는 아프지 않게 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직 두렵고, 여전히 모르겠고, 때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도 나는 이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답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아진다고 애를 쓰며 발버둥을 치지만 다시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직 괜찮지 않은 나와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