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물이 날까?

더 울어라

by새로미

생각해 보니 태어나서 마음껏 울어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층층시야 맏며느리의 고달픈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가 내게 말했다. “울어야 젖을 물리는데 배고파도 도통 울지를 않았어.” 갓난아이가 무엇을 알았을까 생각하지만 어쩌면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2살 터울의 여동생은 울보라서 엄마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19개월 정도만에 난 엄마 품에서 떨어져 할머니와 잠을 자야 하는 착한 첫째가 되었다. 물론 엄마와 떨어져 산 것은 아니지만 3대가 같이 살았으니 할머니와 삼촌, 고모의 품에서 잘 지냈다고 했다.


유년시절에도 유일하게 우는 순간은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보며 슬픈 장면이 나올 때였다. 남이 울면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수도꼭지가 된 듯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다. 어쩌면 평소에 대놓고 울지 못하는 내게 허락된 기회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나인데, 지금은 자주 눈물이 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서가 아니라 나를 생각하며 운다. 나 혼자 생각하는데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도 눈물이 흐르고, 그냥 혼자 있어도 눈물이 흘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무심한 것인지, 아니면 뜨거운 것인지도 몰랐다. 차가운 눈물도 있겠지만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온도는 뜨겁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대성통곡을 하며 절규를 하는 날도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지는 기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생각할 힘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눈물이 어색하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졌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있다. 그분이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감정이 올라오는데 왜 누르고 계시는 건가요?”


나도 몰랐다. 내가 감정이 벅차서 눈물이 날 때,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보니 마음껏 있는 힘껏 쏟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때도 다 쏟아내기보다는 인지하면 멈추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목 놓아 울면 오히려 속이 후련해질 수도 있을 텐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억누르고 살았는가.


강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

버텨야 한다.


무수히 많은 ‘~해야 한다‘는 것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지금 힘들면, 이제 행복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들 말한다. 거꾸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았기에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맘껏 울지 못했던 그 눈물을 이제야 흘리고 있는 걸까.


어색하기만 했던 그 눈물을 이제는 “그럴 수 있어.”라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나의 매력이라고들 이야기했다. 나의 웃음소리를 녹음해서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들어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렇게 눈물 버튼이 작동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몇 사람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조차. 물론 행복 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언젠가 다시 호탕한 웃음으로 하루를 채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눈물을 쏟아내고 내 마음을 털어내야 할 때라는 것을 안다. 눈물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도 때론 의미 없이 느껴진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웃음이 나면 나는 대로 그렇게 살면 되는 것. 하나하나의 이유를 다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웃고 싶은 날도 있고, 울고 싶은 날도 있다. 대신 울고 싶은 날의 나도 억지로 누르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주인공 캔디처럼 참고 참다가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돼.

외롭고 슬프면 울어도 돼.

눈물을 참지 말고 그냥 울어.


어른이 되어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눈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내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일이다. 눈물이 뜨겁게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그날도, 내 삶을 소중히 살아낸 날이다. 그 눈물이 있었기에 살아낼 수 있다.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어릴 땐 ‘캔디‘를 불렀다면 지금은 ’형(노라조)‘을 불러보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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