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 일의 슬픔
십 년 전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무렵, 문득 나 자신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가족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에 익숙해진 사이, 내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온 시간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나섰다. 그리고 쉰 중반의 나이에 중장년 센터 상담실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명예퇴직 이후의 삶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용 24의 채용 공고를 살피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함께 썼다. 상담실에는 낡은 서류봉투를 꼭 쥔 채 문을 여는 사람, 무릎 위 이력서를 내려다보며 한참 말을 고르는 사람이 찾아왔다. 일자리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가족과 건강, 지나온 날들의 고단함으로 번졌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채용 공고 몇 줄보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지금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이었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다 쉰다섯에 퇴직한 남성이었다. 경제학 석사 학위와 금융 현장의 경험까지, 이력서에는 성실하게 살아온 세월이 빼곡했다. 그러나 이력서 맨 윗줄의 '지점장'이라는 세 글자는 면접관 앞에서 오히려 무겁게 놓였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숫자와 씨름하는 일 말고, 몸을 움직이는 단순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건물 경비원이면 좋겠습니다.”
지점장이라는 명함을 내려놓는다고 진솔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양복을 벗고 경비복을 입는다고 인생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분은 경비 교육을 마치고도 면접마다 고배를 마셨다. 한때 훈장이던 나이와 경력이 어느새 채용의 벽이 되었다.
우리는 이력서를 다시 펼쳤다. 지원 직무와 거리가 있는 학력 정보는 덜어내고, 근면함과 바카라임감이 드러나도록 문장을 고쳤다. 석사 학위가 적힌 줄 위에서 펜이 오래 멈췄다. 그 한 줄을 지우는 일이 한 사람의 이십 년을 접어 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면접에는 양복 대신 단정한 점퍼 차림을 권했다. 감추려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에서 필요한 장점이 먼저 읽히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왜 갖고 있는 역량과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까. 지나온 삶이 한 줄씩 덜어져야 비로소 읽히는 세상이라니,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얼마 뒤, 그분이 아파트건설 현장 경비직에 취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예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출근합니다, 선생님.”
그 말이 오래 귓가에 남았다.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고 햇살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일은 정보를 찾고 서류를 다듬으며 다시 문을 두드릴 용기를 보탠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길을 내기도 한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에게는 아침이면 갈 곳이 생기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나누는 인사가 즐겁고, 하루를 마친 뒤 안고 돌아올 작은 보람이 있다. 그들이 찾던 것은 월급을 넘어, 다시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삶의 자리였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가 기쁜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의지도 건강도 경험도 충분한 분께 더는 권할 일자리가 없을 때다. 공고를 함께 넘기던 손이 ‘만 60세 이하’라는 문구 앞에서 멈춘 적이 있다. 그분은 괜찮다는 듯 웃었지만, 접힌 이력서를 도로 가방에 넣는 손길은 느렸다. 나는 그 앞에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채용공고의 나이 제한에 시선이 멈추면 대화도 갈 곳을 잃는다. 일할 준비가 된 사람 앞에 일할 자리가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작은지 절감한다.
예순을 넘긴 분들은 많은 보수를 바라지 않는다. 하루 몇 시간이라도 일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자 한다. 그들에게는 소속감, 이름이 적힌 근무표, 퇴근길의 작은 뿌듯함이 소중하다. 온라인 게임을 떠났다고 일하고 싶은 마음마저 퇴직하는 것은 아니다. 65세 이상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노인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이는 지나온 시간을 알려줄 뿐, 앞으로의 가능성을 미리 써 놓은 답안지가 아니다.
나는 자주 질문 앞에 멈춰 선다. 사람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어야 하는가. 그보다 먼저, 사람은 왜 나이가 들어서도 그토록 일하고 싶어 하는가. 아마도 '나는 여기에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회가 일부에게만 허락된다면, 일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된다. 두 감정은 서로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삶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손을 잡아 주는 순간에는 기쁨이 찾아오지만, 잡아 주고 싶은 손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 사람을 다음 자리로 이끌지 못할 때는 슬픔이 남는다.
세상은 때때로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을 달력의 숫자로 재단할 수는 없다. 접힌 이력서에도 펼치면 새 문장이 쓰일 여백이 남아 있다.
오늘도 지원자의 이력서를 펼쳐 든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젊은 날을 읽고, 가족을 위해 견뎌온 시간을 헤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담자에게 말하곤 한다. 방향을 틀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그 말을 건넬 때마다 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들려준다. 누군가의 인생 이모작을 돕는 동안, 나 역시 내 삶의 두 번째 계절을 가꾸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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