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을 입은 수능 아나운서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나는 등산복을 입고 출근했다.


아나운서라고 하면 으레 반듯한 양복에 잘 정돈된 머리, 그리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달랐다. 두툼한 등산복을 껴입고 새벽 여섯 시에 학교 방송실로 들어갔다. 마이크 앞에는 대본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각종 방송 장비와 큼지막한 시계가 있었다. 카메라도 없고 시청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수험생 수백 명과 감독관 수십 명이 내 목소리를 듣고 움직여야 했다.


그날 나는 이십대 중반의 초임교사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아나운서였다.


첫 발령지가 고등학교였으니 11월은 특별한 달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교실 안팎의 공기가 달라졌다. 3학년 교실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내려앉았고, 복도에서는 수능과 관련된 이야기가 부쩍 늘어났다. 학교 전체가 일 년에 단 하루를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수능 시험장 학교였다. 고등학교라고 해서 모두 수능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교는 시험장으로 지정되고, 어떤 학교는 평소처럼 학생들을 보내거나 다른 방식으로 시험을 지원한다.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는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늘어난다. 평범한 교실을 시험실로 바꾸고, 방송을 점검하고, 시험본부를 설치하고, 바카라상과 의자를 정렬해야 한다.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종이 한 장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런 학교에서 20대 남자 신규교사인 내가 할 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수능 감독관이었다.


수능 감독은 대체로 젊은 교사들에게 많이 돌아가는 업무였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체력적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수험생의 인생에서 아주 큰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시험실 안에서 불필요한 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안내를 잘못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기피 업무라는 표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감독관 명단에 들어갈 줄 알았다. 다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감독을 하게 될까, 아니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될까. 고작 그 정도의 선택지가 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월 말쯤, 교무부장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따로 부른다는 것은 대체로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부장선생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잠깐 보자고 하면, 열에 아홉은 뭔가 새로운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교직 경험이었지만 그 정도는 이미 터득한 상태였다.


교무부장님은 내게 수능 업무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온 부탁이 뜻밖이었다.


“하 선생님, 이번 수능 방송 멘트를 맡아줘요.”


방송 멘트?


순간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수능 방송이라면 시험을 시작하고 끝내는 각종 안내, 감독관과 수험생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사항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걸 내가 직접 읽으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수능 시험장에는 아나운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왜 하필 나인가’였다. 신규교사에게 맡기기에는 바카라임이 지나치게 큰 업무처럼 느껴졌다. 수능 시험장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라니. 그것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방송이었다. 자칫 방송 내용을 잘못 읽거나 시간을 놓치기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얼떨결에 승낙했고, 그렇게 수능 아나운서로 데뷔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무부장님이 나를 선택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교내 방송을 유난히 많이 했다. 내가 방송을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다. 본교무실에 앉아 있던 신규교사였고, 교감선생님께서 수시로 방송을 시키셨기 때문이다. 방송의 내용도 대단한 것은 없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되었으니 교실로 돌아가라는 이야기,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전에 급식실로 가지 말라는 이야기,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학교에서 가장 어린 교사이자, 가장 많이 잔소리를 방송하는 사람이었다.


그 방송 경력이 수능 아나운서 발탁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교감선생님의 잔소리를 대신 읽어주던 경험이 국가적인 시험의 방송 요원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사람의 경력이란 참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쌓이는 법이다.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무렵부터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받은 것은 방송 시나리오였다. 종이가 제법 두꺼웠다. 하루 종일 치르는 시험이다 보니 방송할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 시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안내는 물론이고, 영역별 유의 사항과 감독관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대본을 악보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숨을 쉬어야 할 곳에는 사선을 그었다. 문장이 길면 의미가 끊어지지 않도록 표시했고, 강조해야 할 단어에는 밑줄을 그었다.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면 헷갈리지 않도록 구분했다. 음악 전공자답게 리듬과 호흡부터 정리한 셈이다.


방송은 단순히 글을 읽는 일이 아니었다. 전달해야 하는 내용을 정확한 속도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내보내야 했다. 너무 빠르면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고, 너무 느리면 방송 시간이 길어졌다. 마이크를 지나치게 가까이 대면 소리가 울리거나 먹혔고, 멀리 두면 목소리가 약해졌다. 마이크와 입 사이의 거리까지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다.


마치 플루트를 연주할 때 호흡과 입술의 각도를 조절하듯, 나는 목소리와 마이크 사이의 거리를 익혀갔다.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다. 수능 방송실에는 두 명이 한 팀을 이루었다. 한 사람은 아나운서, 다른 한 사람은 방송 기기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였다. 내 파트너는 나이도 비슷하고 경력도 그리 길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는 둘 다 비슷했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한 사람은 방송 내용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은 장비를 살폈다. 버튼을 누르는 순서와 시간을 맞추고, 실수할 만한 부분을 서로 지적했다. 아무래도 둘 다 젊어서인지 긴장한 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수능 종소리였다.


수능 시험장에는 예비령, 준비령, 본령, 종료령이 있었다. 각각의 상황에 맞게 방송하고 종을 울려야 했다. 자동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라, ‘수능 부저’라고 불리는 장치를 이용해 수동으로 종소리를 내보내는 연습도 했다.


버튼을 누르는 방식과 종소리의 리듬이 조금씩 달랐다. 음악교사인 나는 그 차이가 묘하게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시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신호였겠지만, 내게는 일종의 타악기 연주처럼 느껴졌다. 잘못 누르면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리듬 연습이었다.


모의고사 때는 실제 수능처럼 방송 시나리오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을 반복하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에는 종이 위의 문장들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실전을 앞두었을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연습은 연습일 뿐이었다.


드디어 수능날이 왔다.


오전 여섯 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했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 차를 몰았다. 앞유리에는 전날 받은 안내문을 붙였다. ‘수능 시험장 감독관 차량’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였다. 혹시 교통 체증으로 늦을 위기에 처하면 교통경찰이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들었다.


말하자면 아주 특별한 통행증이었다. 하지만 그 특권을 실제로 사용할 일이 생긴다면 이미 큰일이 난 상황일 것이다. 그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히 일찍 출발했다.


그리고 등산복을 입었다.


방송실이 추웠기 때문이다. 난방기를 켜면 작동 소음이 마이크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방송 중에는 생각보다 사소한 소리도 신경 쓰인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종이가 스치는 소리, 누군가 헛기침하는 소리까지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난방기를 켜는 대신 옷을 껴입기로 했다.


그렇게 수능날 아침, 방송실에는 등산복 차림의 젊은 아나운서와 엔지니어가 앉아 있었다.


방송실 안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긴장감만큼은 뜨거웠다. 우리는 시계를 수시로 확인했고, 대본을 다시 읽었으며, 방송 기기를 점검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하루의 임무였다.


그런데 정작 시험을 바카라임지는 교장선생님과 교육청에서 나오신 장학사님은 우리와 조금 다른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두 젊은 방송요원이 잠들지는 않을까.

혹시 잡담을 하다가 방송 시간을 놓치지는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루 종일 방송실에 앉아 있다 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고, 젊은 선생님 둘이 함께 있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필 중요한 방송을 해야 할 시간에 딴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였다.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은 방송실 근처를 자주 오가셨다. 가끔 문을 살짝 열고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으셨다. 말은 분명 우리의 편의를 걱정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분들의 머릿속에서는 아마 다른 질문도 함께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힐끗힐끗 안을 들여보는 머리의 실루엣이 자주 보였다.


‘안 자고 있지?’

‘시간 잘 보고 있지?’


우리는 그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잡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여유가 없었다. 시계와 대본을 번갈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시험실마다 흩어져 있는 수험생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떠올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읽는 한 문장에 따라 누군가는 문제지를 펼치고, 누군가는 연필을 내려놓고, 감독관들은 정해진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이 넓은 학교 안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내 마이크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가장 긴장했던 것은 영어 듣기평가였다.


약 25분 동안 듣기평가 방송이 흘러나가는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내가 직접 문제를 읽는 것도 아니고, 방송 장비를 조작하는 주된 역할은 엔지니어에게 있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편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소리가 끊어지면 어쩌나, 갑자기 잡음이 나면 어쩌나, 문제가 잘못 송출되면 어쩌나. 걱정은 끝없이 늘어났다.


방송실 안은 조용했다. 조용해서 더 긴장되었다.


나는 시계를 보고, 방송 장비를 보고, 다시 시계를 보았다. 음악회에서 독주자로 무대에 섰을 때도 이렇게까지 초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연주회에서 음 하나를 틀리면 아쉬운 공연으로 끝날 수 있지만, 수능 듣기평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수많은 수험생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송은 정해진 시간에 시작되었고, 듣기평가는 무사히 끝났다. 시험도 예정된 절차대로 흘러갔다. 하루 종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마지막 종료령을 내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그제야 내 몸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 느껴졌다. 방송실 밖에서는 시험을 마친 학생들과 감독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억눌려 있던 학교의 소음이 조금씩 돌아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업무가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따뜻하지도 않은 방송실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시험실 감독관처럼 오랜 시간 서 있을 필요는 없었다. 복잡한 시험본부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정해진 멘트를 읽고, 필요한 순간에 방송을 내보내면 되었다. 물론 정신적인 긴장감은 컸지만, 몸은 상대적으로 편했다.


다만 그 사실을 어디 가서 말하지는 않았다.

젊은 교사가 수능이 끝난 뒤 힘들게 감독을 마친 선배 선생님들에게 “저는 생각보다 편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큼 눈치 없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 정도의 슬롯생활 감각은 있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사실 조금 편했다.

물론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날 이후 나는 수능 시험장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능 시험장은 거대한 시계 장치와 같았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여야 했다. 시험실을 정리하는 사람, 바카라상을 점검하는 사람, 방송을 확인하는 사람, 문제지를 관리하는 사람,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복도와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 시험실에서 수험생을 감독하는 사람까지. 누군가 하나라도 자기 자리를 놓치면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곳에는 눈에 띄는 주인공이 없었다.

수능을 아무 사고 없이 마쳤다고 해서 특별한 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가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대대적으로 칭찬받는 구조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결과였다. 잘해도 본전이고, 실수하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일. 어쩌면 학교 업무 중 가장 억울한 장사일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했다. 교실의 작은 안내문 하나, 바카라상 위에 남은 낙서 하나, 방송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한 잡음 하나까지 확인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에서 조금 다른 종류의 교직을 보았다.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만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안심하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를 지탱하는 것도 교사의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능 아나운서 경력은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다.

놀랍게도 학교를 옮긴 뒤에도 그 업무가 따라왔다. 한 번 방송을 해봤다는 경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수능 방송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 자연스럽게 마이크 앞에 앉게 되었다. 마치 내 이름 옆에 보이지 않는 자격증 하나가 붙어 있는 듯했다.


‘수능 방송 가능.’


처음에는 그렇게 긴장하던 일이 네 번째쯤 되니 제법 익숙해졌다. 대본을 받아도 크게 놀라지 않았고, 방송 장비 앞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시계만 정확히 확인하면 대부분의 상황이 예측 가능했다. 여전히 실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익숙함은 긴장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세월은 참 희한한 방식으로 사람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올해 나는 교무부장이다.


그것도 개교 이래 단 한 번도 수능 시험장으로 운영된 적이 없는 학교의 교무부장이다.

인근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우리 학교가 올해부터 새롭게 수능 시험장이 되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하필 올해부터?’


기존에 시험장을 운영하던 학교라면 지난해 자료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업무를 누가 맡았는지, 어떤 물품을 몇 개 준비했는지, 시험본부를 어떻게 설치했는지 참고할 자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개교 이래 처음이니 당연했다. 수능 시험장은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거대한 퍼즐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방송실 안에서 시계 하나를 바라보면 됐다. 이제는 학교 전체의 시계를 맞춰야 한다.


시험실과 대기실을 준비하고, 바카라상과 의자를 점검하고, 청소 일정을 잡고, 각종 안내문과 출력물을 준비하고, 감독관과 관리요원의 역할을 나누고, 방송시설을 확인하고, 식사까지 챙겨야 한다. 어지간한 일은 목록에 적어놓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준비해야 할 일은 끝이 없는데, 한 가지를 해결하면 그 뒤에서 또 다른 일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변 학교의 친한 교무부장 선생님들께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남의 학교에서 사용한 계획서를 받아 우리 학교 상황에 맞춰 고치고, 빠진 업무는 없는지 비교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마치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의 기분과도 비슷하다. 악보는 있는데, 실제로 연주를 하려면 수많은 사람과 악기가 제때 움직여야 한다.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면 음악이 무너진다.


문득 첫 수능날의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이 떠오른다.


방송실 문을 슬쩍 열어보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자꾸 물으셨던 분들. 그때는 우리를 얼마나 못 믿으시면 저럴까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중요한 일을 맡긴 사람은 끝까지 마음이 쓰인다.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 큰일은 믿음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해 나는 방송실을 슬쩍 열어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불편한 것 없으시죠?”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잘 보고 계신지, 준비물은 빠짐없는지, 혹시 예상하지 못한 문제는 없는지.


수능 방송실에서 등산복을 입고 시계만 바라보던 젊은 교사는 어느새 학교 전체의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 목소리 하나만 바카라임지면 되었는데, 이제는 여러 선생님의 역할과 학교 전체의 움직임을 바카라임져야 한다.


조금 우습고,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이미 경험이 있다. 처음 수능 방송을 맡았을 때도 막막했다. 실수할까 봐 두려웠고, 정해진 시간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연습하고 준비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네 번째 방송부터는 제법 여유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물론 올해가 끝나기도 전에 내년 수능까지 맡게 될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여섯 번의 수능 방송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교무부장까지 맡겼으니, 어쩌면 학교는 사람을 잘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능 부저를 누르는 리듬만큼은 자신 있으니 말이다.


요즘도 두꺼운 수능 업무 계획서를 넘기다 보면 가끔 그날의 방송실이 떠오른다. 새벽 여섯 시의 차가운 공기, 두툼한 등산복, 마이크 앞에 놓인 시나리오, 초침을 따라 움직이던 눈동자, 그리고 모든 시험이 끝난 뒤에야 겨우 내쉬었던 긴 숨.


그때는 몰랐다.

그날 내가 익힌 것은 방송 멘트를 읽는 방법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해낼 때, 한 사람의 중요한 하루가 무사히 완성된다는 사실이었다.


올해 11월에도 수험생들에게는 단 한 번뿐인 수능날이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날일 것이다. 나는 그날이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시험장에 들어온 아이들이 조용히 문제를 풀고, 정해진 시간에 종이 울리고,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


그리고 마지막 종료령이 울렸을 때, 선생님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났다.”


예전에는 마이크 앞에서 그 순간을 기다렸다.


올해는 아마 시험관리본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단 하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정말 많은 일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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