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배우는 아이

남자고등학교의 점심시간은 시끄러웠다.


그 시끄러움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철제 급식판이 부딪히는 소리, 복도를 뛰어가는 실내화 소리,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가는 아이들의 고함, 축구공이 발등에 맞는 둔탁한 소리, 농구공이 시멘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뒤섞인다. 종이 울리면 교실에서는 축 처져 있던 아이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어디에 그런 힘을 숨겨두었는지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내 첫 발령 학교는 학업 수준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남자고등학교였다. 요즘도 고등학교 입시가 남아 있는 지역이고, 그 시절에도 고등학교는 자연스럽게 서열화되어 있었다. 학교 이름만 들어도 대략 어느 정도의 성적대 학생들이 가는지 사람들이 짐작하던 때였다. 내가 처음 근무한 학교는 그 줄 세우기에서 뒤쪽에 있는 학교였다.


물론 그 안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 촘촘하게 움직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거창한 진학 목표나 학업 성취감보다는, 당장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급식이었다.


그 학교의 아이들에게 운동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교실에서 풀리지 않는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출구였고, 공부로는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던 아이들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축구를 잘하는 아이는 그라운드 위에서 스타가 되었고, 야구공을 멀리 던지는 아이는 친구들의 감탄을 받았다. 농구 골대 앞에서는 키와 탄력이 권력이 되었고, 탁구대 앞에서는 손목의 감각이 자존심이 되었다.


학교는 언제나 팀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축구를 하려면 열한 명이 필요하고, 야구를 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운동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남학생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팀을 짰다. 반별로 선수를 뽑고, 포메이션을 정하고, 주장도 세웠다. 누가 공격수고, 누가 수비수고, 누가 골키퍼를 할 것인지 꽤 진지하게 논의했다.


심지어 자체 리그전까지 운영했다. 점심시간 리그였다. 아이들은 규정을 정하고, 심판을 세우고, 우승 상품도 마련했다. 대진표가 만들어지고, 경기 결과가 기록되었다. 교사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학생회 공식 행사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꼭 해야 돼요?” 하던 아이들이 점심시간 리그에서는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규칙을 만들고, 순서를 정하고, 갈등이 생기면 나름의 방식으로 조정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진짜 학생자치 아닌가.’


물론 어른들이 상상하는 반듯하고 세련된 학생자치는 아니었다. 회의록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고, 교육과정과 연계된 멋진 이름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만큼 강력한 자치는 드물었다.


급식도 아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맛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양이 많았다. 성장기 남학생들에게 양 많은 급식은 중요한 문제다. 오전 내내 지루한 수업을 견딘 아이들은 급식실에서 다시 살아났다. 식판 위에 밥과 반찬이 수북이 올라가면 아이들의 표정이 풀렸다.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하러 오는 곳이라기보다 친구들과 운동하고, 밥을 먹고, 하루를 보내는 곳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교육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나도 운동을 좋아했고, 아이들도 운동을 좋아했다. 점심시간에 야구 글러브를 들고 나가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 오후 수업에 조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를 했다. 몸을 조금 가볍게 움직이고 싶은 날에는 강당에 가서 탁구를 쳤다.


재미있는 것은 종목마다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야구 글러브를 챙겨오는 아이들, 탁구채를 들고 먼저 강당에 가 있는 아이들. 학교 안에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 실력에 맞춰 상대를 고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잘하는 아이들과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너무 못하는 아이들과 하면 재미가 덜했다. 아이들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은근히 서로의 수준을 맞추어 팀을 짰다.


아이들과 운동을 하면 주변의 반응도 좋았다.

“쌤, 나이스!”

“쌤, 오늘 폼 좋은데요?”

“아, 쌤 그건 패스했어야죠!”


칭찬과 야유가 동시에 쏟아졌다. 교실에서는 조용하던 아이도 운동장에서는 말이 많아졌다. 평소에는 나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경기 중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불만을 제기했다. “선생님, 그건 파울이에요.” “선생님, 방금 손 썼잖아요.” 그런 말들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가 잠시 운동장 안에서는 팀원과 상대팀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가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성격이 보인다.


승부욕이 강한 아이는 절대 대충 뛰지 않는다. 지고 있으면 표정부터 굳어진다. 팀 플레이를 잘하는 아이는 자기 골을 욕심내기보다 빈 공간에 있는 친구에게 공을 준다. 스타가 되고 싶은 아이는 늘 마지막 슛을 노린다. 쉽게 화를 내는 아이도 있고, 실수한 친구를 조용히 다독이는 아이도 있다. 교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성향들이 운동장에서는 너무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그 덕분에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웠다. 얼굴과 이름이 아니라, 움직임과 이름이 연결되었다. 빠른 아이, 킥이 좋은 아이, 수비를 성실하게 하는 아이, 탁구 칠 때 유난히 손목이 부드러운 아이, 캐치볼을 할 때 겁내지 않고 글러브를 내미는 아이. 그렇게 아이들을 기억했다.


아이들과 빨리 친해지니 좋은 점이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묘한 의리가 생겼다. 나이 차이도 있었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의 차이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함께 땀을 흘리고 나면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은 교칙을 어기더라도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으려 했다. 담배 냄새가 나는 아이에게 “너 나하고 약속했잖아”라고 말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생활지도부 소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운동을 하다가 잠깐 벤치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간식을 사주며 아이들을 불렀다. 담배를 언제부터 피웠는지, 얼마나 자주 피우는지, 공부는 언제쯤 시작할 생각인지, 집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듣는지 물었다.


대단한 상담은 아니었다. 계획된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기록으로 남는 상담도 아니었다. 그저 운동 끝나고 땀을 식히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교무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정색하고 묻는 말보다, 운동장 벤치에서 음료수 하나 들고 묻는 말이 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간이 좋았다. 대학생 형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고등학생 동생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교사였고, 아이들은 학생이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선 안에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오히려 운동은 그 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함께 뛰고, 웃고, 지고, 이기고, 규칙을 지키는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제동행 운동의 힘을 믿는다.


요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까워지면 위험하고, 너무 많은 감정을 주고받으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맞다. 나도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교사는 학생의 친구가 아니고, 형도 아니며, 지나치게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운동장에서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진다.


공을 사이에 두고 함께 뛰면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다. 규칙이 있고, 역할이 있고, 승부가 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예의를 배운다. 상대를 밀면 안 되고, 반칙을 하면 인정해야 하고, 졌다고 화를 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팀원이 실수해도 다시 뛰어야 하고, 내가 잘해도 혼자만 빛날 수는 없다. 운동 안에는 교육이 있다. 그것도 몸으로 익히는 교육이 있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사제동행 체육대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많이 한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너무 형식적인 행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정해진 하루, 정해진 종목, 정해진 사진 몇 장으로 끝나는 사제동행 말고, 일상 속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는 시간이 있으면 어떨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의 공강 시간도 많아졌다. 그 시간 중 일부를 학생과 교사가 함께 운동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안전 문제도 있고, 업무 부담도 있고, 학교마다 여건도 다르다. 그래도 나는 가끔 꿈꾼다. 점심시간이나 공강 시간에 운동장 한쪽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공을 차고, 강당에서는 탁구공 소리가 오가고, 누군가는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하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교사들이 운동장 위에서 조금 더 알아가는 학교.


그 시절 함께 운동하던 아이들이 문득 그립다.


공을 차면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던 아이, 늘 골키퍼를 하겠다고 나서던 아이, 탁구를 치면 괜히 스매싱만 노리던 아이, 캐치볼을 하다가 공을 놓치면 머쓱하게 웃던 아이.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있던 아이가 운동장에서는 누구보다 반짝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여전히 축구를 좋아할까. 야구 글러브를 보면 그 시절 운동장이 떠오를까. 혹시 어디선가 자기 아이와 공을 차고 있을까.


교직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많은 장면들이 흐려진다. 어떤 수업을 했는지, 어떤 회의를 했는지,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운동장에서 함께 뛰었던 순간들은 오래 남는다. 햇빛에 달아오른 인조잔디 냄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발소리, 골이 들어갔을 때 터지던 함성, 수업 종이 울려 아쉬워하며 교실로 돌아가던 뒷모습들.


그 시절의 나는 초임교사였다. 아직 서툴렀고, 학생지도도 잘 몰랐고, 아이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운동장에서는 조금 덜 서툴렀던 것 같다. 공 하나가 있었고, 함께 뛸 시간이 있었고, 아이들이 웃어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한 날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았다.


공부보다 운동이 먼저였던 아이들, 급식 메뉴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던 아이들, 그래도 함께 뛰면 누구보다 살아나던 아이들. 그 아이들과 보낸 점심시간들은 내 첫 학교의 가장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아이들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뛰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땀으로 맺어지는 의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먼저 마음을 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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