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트라

빛이 내려서 내가 젖겠네

by장지연 작가

만트라



새 한 마리 요란합니다
'저 소리는 틀림없이 웃음일 거야"
내 마음이 가벼운 날인가 봅니다
참과 거짓을 가려내지 못하고
그저 행복의 파랑새라 이름 붙입니다

또 새 한 마리 요란합니다
'유난히 서글프게 울어대는군'
짠 울음인지 단 울음인지
눈물 맛을 헤아릴 길 없는 나는
그저 슬픈 뻐꾹새라 부릅니다

참 기특하게도 철없는 나의 두뇌는
거짓 웃음에도 온몸을 따스하게 데우고
그 순한 흐름에 봄날의 빛을 나르니
이 우매함은 내게 주신 신의 선물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에
기쁨이란 꼬리표를 달고
마침내 사라지는 새를 보내며
멀리 가 있던 눈을 불러 감습니다

다 잘될 거라고 그럴 거라고
걱정을 불러 달래고
불안을 불러 안고서
마음에 마음이 주문을 외웁니다


만트라(Mantra): 어원적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마음'을 뜻하는 **만(man)**과 '보호' 또는 '도구'를 뜻하는 **트라(tra)**가 결합된 단어로, **'마음을 보호하거나 인도하는 도구'**라는 뜻을 지닙니다. 마음을 정화하고 집중을 돕기 위해 반복적으로 외우는 신성한 소리나 다짐의 문구를 의미합니다.


행간의 온도


자극과 반응 사이, 그 '틈'에 서서 몇 주 전, 나는 사람 사이에서 일종의 '추돌 사고'를 당했다.

내 차선을 잘 지키며 평온하게 달려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차선을 밀고 들어와 옆구리를 받혀버린 교통사고처럼 말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즉각적인 분노로 맞서기보다 가만히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치우쳤던 걸까? 차선을 살짝 물고 갔었던 걸까?' 관계의 풍랑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탰다.

어떤 이는 관계의 추돌 사고란 늘 쌍방의 문제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내가 욕심이 많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상대의 시기와 질투, 과도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적어도 나는 상대를 질투하거나 경쟁 상대로 의식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태도가 썩 내 결과 맞지 않아 마음을 깊이 열어두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딱히 억울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공개적 비난과 공작이 오가는 아슬한 경계 위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는 여론을 선동하며 나를 무너뜨리려 했고, 나 역시 당장이라도 맞서 싸우고 싶은 충동과 오해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살린 것은 나를 향한 공격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만들어낸 '잠시 멈춤의 틈'이었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Space) 정신의학자이자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틈(공간)'이 있다. 그 틈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반응 속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타인이 나에게 던진 비난과 모욕은 피할 수 없는 '자극'이다. 그러나 그 자극을 받아들여 곧바로 분노와 복수로 갚아줄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물러서서 내 내면을 정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틈의 지혜'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관계 사고는 이 '틈'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다. 자극이 들어오자마자 감정이라는 가속페달을 밟아 맞받아칠 때, 경계선은 무너지고 서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교섭하러 다니지 않았다. 나를 향한 오해와 비난이라는 자극 앞에서, 나는 기꺼이 그 '틈' 안에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그 틈 속에서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켰다. 굳건히 나를 믿어주는 몇몇 고마운 인연들이 있었고, 그 무렵 읽고 있던 류시화 작가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에세이가 그 틈새의 온도를 따스하게 채워주었다.


인도 여행자들의 유쾌함과 명상적 철학이 담긴 글귀들은, 외부의 소란함 속에서도 내 마음의 중심을 고요하게 지켜내도록 돕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 언어가 만드는 온풍, 마음을 지키는 '만트라' '행간의 틈'글을 쓸 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존재하며 글의 깊이를 결정짓는 '행간(行間)'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내 안의 자극과 반응 사이에도 숨을 쉬어갈 이 필요하다.


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Mantra)'는 '마음'을 뜻하는 '만(man)'과 '보호' 또는 '도구'를 뜻하는 '트라(tra)'가 결합된 단어다. 즉, '마음을 보호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눈앞의 사건만이 객관적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이 말해주듯, 우리의 뇌는 외부의 절대적 사실보다 '내가 그 사실에 부여하는 언어적 의미'에 훨씬 더 크게 반응한다. 새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이라 이름 붙이면 뇌는 온몸에 따스한 피를 돌리고, '슬픔'이라 부르면 서글픈 눈물 맛을 헤아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관계의 추돌 사고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상대가 쏟아낸 날 선 비난은 나를 향해 들이닥친 차가운 소음일 뿐이었다. 그 소음에 '상처'나 '억울함'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내 삶을 침식시킬 것인가, 아니면 '나를 돌아보는 기회'라는 이름을 붙일 것인가. 그 선택의 주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아슬한 경계 위에 서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가만히 불러 안고 나만의 만트라를 외웠다.


"다 잘될 거라고, 그럴 거라고."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의 진정한 존재와 만남은 너와 나 '사이(Das Zwischen)', 즉 '틈'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타인이 나에게 상처를 흘려보낼 때, 내가 그 '틈'에서 내뱉은 따뜻한 언어의 주문은 내 마음을 가로막아 보호해 주는 견고한 방파제가 되었다.


경계 위에서 피어난 평온 결국 내 결백을 입증하려 애쓰지 않았음에도, 과도하게 흥분하여 망신 주기를 선택했던 상대의 비난은 무색해졌고, 고요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 나는 오히려 묵묵한 진실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누구의 승리이고 누구의 패배인가를 가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삶의 아슬한 경계 위에서 비틀거릴 때 조급하게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틈 사이에 나의 언어, 나만의 만트라를 채워 넣어 행간의 온도를 지켜냈다는 점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관계의 추돌 사고를 만날 것이다. 불쑥 밀고 들어오는 타인의 감정에 내 선을 빼앗기지 않는 법, 그것은 타인을 바꿀 힘이 내게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에서 내 마음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쁨'이라는 꼬리표를 가만히 달아본다. 어지러운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내 마음이 외치는 순한 주문이 오늘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