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소요의 틈새에 낀(시&에세이)
울퉁불퉁 모난 돌멩이하나가
불쑥 내 세계로 들어왔다
그의 말들은 눅눅한 습기를 머금다가도
어느새 생경한 물기를 띠며 나를 홀렸다
그의 얼룩을 문지르고 또 닦아냈다
반질반질한 빛이 났을 때
돌은 내 손바닥의 온기를 비웃듯
뭇시선을 따라 굴러갔다
"나 원래 보석이었어
나보다 반짝이는 건 있을 수 없어"
아직 덜 다듬어진 말로 툭 쳤다
굴러간 돌은 그냥 돌멩이가 되어 굴러가 버렸다
내 웃음은 차갑게 식었다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깨지기 쉬운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서운함이라는 조그만 고춧가루가 관계의 치아 사이에 끼어버린 순간, 나는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혀를 놀리고 이쑤시개로 휘저어댔다. 잇몸이 부어오르고 끝내 피가 흐르는데도 영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방금 내가 밖으로 꺼낸 것이 고춧가루 같은 찌꺼기였을까, 아니면 애꿎은 잇몸의 연약한 살덩이였을까?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임과 사람들을 그에게 기꺼이 소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나를 거치지 않고 그들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기 시작했다. 나를 건너뛰어 조언을 구하고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그저 '적응을 잘해서 다행이다'라고 여겼다.
하지만 두 번째는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앞니에 고춧가루 하나가 낀 듯한 묘한 불쾌함. 그때부터 불편한 감정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날 선 기분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세 번째 불편함이 찾아왔을 때부터, 나는 고춧가루가 아닌 내 잇몸을 스스로 후벼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기분이 시기일까? 질투일까? 아니면 내가 옹졸한 걸까?' '이 친구가 잘 몰라서 그랬겠지?' 혼자서 내 탓을 했다가 그의 탓을 하기를 반복하며, 나는 내 마음을 죽이고 문장을 죽였다. 끝내 옹졸한 생각마저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그사이 그에게는 축하할 일이 참 많았다. 누구보다 먼저 기뻐하며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미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 소용돌이에 괴로워하느라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날 본격적으로 비난하고 헐뜯는 말은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끝내 그는 난 너의 사람이 아니라고 표독한 말로 분위기를 얼렸다. 하지만 부서진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질투였는지 객기였는지 그렇게 그는 튕겨져 나갔다.
관계라는 것이 이토록 나약한 것인지, 혹은 나의 인격이 고작 이 정도였던 것인지. 나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독한 멀미를 하고 있다. 그러다 양원근 작가의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는 바카라 속에서 니체의 말을 발견하고 정신이 들었다. 나는 나를 객관화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라는 문장에서 용기를 얻는다. 니체가 말했듯 우리는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 더욱 강해질 뿐인 것이다. 나의 옹졸함이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스스로 나를 파괴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친김에 내 심리 상태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구역질』에서 존재의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생리적 혐오감을 '멀미'라 표현했고, 『존재와 무』에서는 타자의 시선이 나의 세계를 침범하여 나를 하나의 객체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내가 느낀 이 마음의 멀미 또한, 타자의 시선과 행동 속에서 나의 주체성이 흔들리며 내뱉는 실존적인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를 건너뛰어 행동하는 순간, 나는 내 세계의 주인에서 그의 세계 속 관찰자로 밀려난 것이다.
시는 시들시들 말라서 주저앉고, 시선은 엄동설한의 빈 들을 훑는 바람처럼 서늘해졌으며, 말의 온도는 빙점 근처를 서성였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상처가 되고 딱지가 생겼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타인은 지옥'일지 모르나, 니체의 말처럼 그 지옥의 불길 속에서 상처를 흉터로 남길지, 아니면 다시금 나의 세계를 재건할지는 오직 나의 권리, 자유에 달렸다. 나는 이제 이쑤시개를 내려놓고, 상처 난 잇몸이 스스로 새살을 틔울 시간을 허락하기로 한다. 내 글이, 그리고 내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속 잇몸은 지금 안녕한가요?"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의 시선이 지옥이 될 때, 혹은 관계 속에 낀 작은 고춧가루가 내 잇몸을 할퀴는 듯한 통증을 느낄 때, 여러분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내시나요?
1. 관계의 본질에 대하여
"당신의 관계 속에서도 혹시 참기 힘든 '고춧가루' 하나가 끼어 있지는 않나요? 그것을 빼내려다 오히려 스스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2. 주체성과 소외감에 대하여
"아끼는 사람에게 내 세계를 열어주었으나, 정작 그 세계에서 소외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때 당신을 붙잡아준 문장이나 철학은 무엇이었나요?"
3. 감정의 승화에 대하여
"타인의 행동에 흔들리는 '마음의 멀미'를 느낄 때, 당신은 그것을 옹졸함이라 자바카라하시나요, 아니면 실존을 위한 비명으로 받아들이시나요?"
4. 결심과 회복에 대하여
"상처 난 자리에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기까지, 당신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허락해 주고 계신가요?"
"상처 난 자리에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기까지, 당신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허락해 주고 계신가요?"
상처 난 자리에 새살이 돋기까지,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허락해 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