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나는 죽을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섰다. 거창한 결심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문에 댔던 이마의 온도가 자꾸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나갈 채비를 하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옷장을 열자 열여섯, 열일곱의 옷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소매가 짧았고 어깨가 좁았다. 겨우 맞는 건 언젠가 어머니가 사다 놓은 회색 후드티 하나뿐이었다. 신발장의 운동화는 발가락 끝이 아팠다. 칠 년 동안 발도 자랐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낡은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조금 컸다. 끈을 두 번 묶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등 뒤에서 기척이 났다. 어머니가 부엌 문턱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주를 쥔 손을 가슴께에 모은 채, 그저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내가 도로 방으로 들어갈까 봐 숨까지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바깥은 어두웠다. 그래도 칠 년 만의 달은 살갗이 아릴 만큼 따가워서, 나는 한참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어머니가 일러 준 대학가는 또래로 가득했다. 웃고, 떠들고, 무리 지어 흘러가는 얼굴들. 나만 빼고 모두가 같은 강을 같은 속도로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걷는 동안, 나는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다고 느꼈다. 저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만 같았다. 말도 못 하고 학교도 그만둔 채 칠 년을 방에서 썩어 간 놈. 스쳐 가는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나를 겨눈 야유처럼 들렸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고, 나는 후드를 더 깊이 눌러썼다. 그렇게라도 세상과 나 사이에 천 한 겹을 두고 싶었다. 결국 캠퍼스 정문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채, 나는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목, 대학가 어귀의 횡단보도 앞이었다. 빨간불이 길을 막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용 신호기에서 새어 나오는 단조로운 안내음만이, 텅 빈 머릿속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길 건너편에, 그녀. 그녀가 있었다.
윤이었다.
칠 년이 흘렀는데도, 나는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알아보았다. 신입생 소집일의 인파 속에서 단번에 그녀를 골라냈던 그때처럼. 세상에 그녀와 나, 단둘만 남던 그 감각이 칠 년의 거리를 단숨에 건너와 나를 덮쳤다. 그러나 이번엔, 그녀의 곁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겨울이었다. 그녀가 추운 듯 어깨를 옴츠리자, 옆의 남자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코트 주머니에 함께 밀어 넣었다. 익숙한 손길이었다. 처음 해 보는 동작이 아니라는 걸, 그 매끄러움이 말해 주고 있었다. 맞잡은 두 손이 한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는 그 사소하고 다정한 동작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윤이 무어라 말을 했다. 입술이 가볍게 움직였고, 남자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그녀는 말을 하고 있었다. 멀쩡히, 환하게, 누군가의 손을 잡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그건 아무렇지 않은 척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황급히 후드를 끌어당겨 얼굴을 덮었다. 건너편 인도에 박힌 듯 선 채,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강물처럼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고, 그녀도 그녀의 남자도 그 물결을 따라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건너지 못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박힌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내 곁을 스쳐 등 뒤로 멀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끝내 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다시 빨간불이 들어왔고, 거리가 한 차례 비워졌다. 그제야 시야가 천천히 뭉개졌다. 눈가에 차오른 것이 가장자리부터 번지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칠 년 동안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것들이, 그제야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무언가가 목구멍을 비집고 천천히 올라왔다. 칠 년 만이었다. 갈라지고, 메마르고, 오래 쓰지 않아 제 것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분명한, 내 목소리였다.
"……잘 지내는구나."
그녀에게는 닿지 못한, 아무도 듣지 못한 한마디였다. 안부를 묻는 그 흔한 말이, 칠 년을 묵어 나온 나의 첫 문장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어쩌면 의사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마주한 것이다. 그녀가 나 없이도 멀쩡히 웃고, 멀쩡히 말하고, 멀쩡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 사실을, 고작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똑똑히. 그러니까 그 한마디는, 이별 뒤에야 비로소 싹을 틔운 내 사랑이 칠 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말이자, 처음으로 그 사랑을 놓아주려 꺼낸 말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아버지의 운동화가 자꾸 뒤꿈치에서 헐거워졌다.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끈을 고쳐 맸다. 목이 따끔거렸다. 오래 쓰지 않은 문을 억지로 연 것처럼. 걸으면서 나는 작게, 아주 작게 소리를 내 보았다. 아. 어. 음. 소리는 나왔다.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트 복도의 센서등이 내 발소리에 켜졌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다. 몇 시간째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나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어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 없었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고 기다리는 데에, 이 사람은 칠 년 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목구멍이 다시 한 번 따끔거렸다. 그 따끔거림을 밀어내듯, 나는 입을 열었다.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