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사진(四診)

24부

by김경훈

바라보고 아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듣고 아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물어서 아는 것을 공(工)이라 하고 맥을 짚어 아는 것을 교(巧)라 한다. — 《난경》 61난


문(問) — 물어서 아는 것


12월 둘째 주 수요일 오후 2시였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2칸씩이었다. 삐걱 하는 소리가 한 칸 건너 한 칸씩 났다. 5번째 칸은 밟지도 않고 넘었다. 가볍고 빨랐다. 구두 굽이 나무에 닿는 소리가 또각거렸다.


유리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그 뒤로 냄새가 들어왔다. 커피 냄새였다. 그리고 새 차 냄새였다. 플라스틱과 가죽이 섞인 냄새였다. 차 안에 오래 있던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였다.


"안녕하세요. 와 여기 냄새 좋네요. 한의원은 이래야죠."


목소리가 컸다. 밝았다. 인사 한 번에 문장이 3개였다.


박나리가 폰을 내려놓았다.


"진료 받으러 오셨어요?"


"네. 예약은 안 했는데 괜찮죠? 바쁘시면 기다릴게요. 아 근데 선생님 목소리 진짜 좋으시다. 라디오 하셔도 되겠어요."


박나리가 잠깐 말을 안 했다.


"……접수 카드 써주세요."


"네네."


볼펜 소리가 빨랐다. 종이 위를 거의 안 멈추고 달렸다. 30초도 안 돼서 카드가 박나리 앞으로 밀려왔다.


"여기요."


박나리가 카드를 들었다. 이름 칸을 읽었다.


허준.


박나리가 카드를 한참 쥐고 있었다.


"……들어가시면 돼요."


진찰실에서 단 냄새가 났다. 붕어빵이었다. 오늘은 슈크림이었다. 의자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어서 오이소."


"안녕하세요 원장님. 밖에 카이엔 원장님 거 맞죠? 큰길에 대셨던데. 23년식 맞죠?"


"……맞습니더."


"색 좋던데요. 그 색 대구에 잘 안 나와요. 원장님 저거 파실 생각 없으세요? 제가 시세보다 200 더 쳐드릴게요."


"안 팝니더."


"그럼 우루스는요?"


진찰실이 조용해졌다. 붕어빵 봉지 바스락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대기실에서 박나리가 고개를 들었다.


"우루스는 대구에 몇 대 없거든요. 제가 다 알아요. 직업병이라서요."


남자가 웃었다.


"중고차 합니다. 북구 매매단지에서요. 12년 했어요."


"원장님은 진짜 한의사 맞으세요? 차 2대 보면 아닌 것 같은데요."


"아입니더."


"네?"


"저도 사실 중고차 합니더."


남자가 웃음을 멈췄다.


"……어디서요?"


"약령시 매매단지예."


"약령시에 매매단지가 어딨어요."


"없지예."


대기실에서 박나리가 숨을 참다가 터뜨렸다.


남자가 한참 있다가 따라 웃었다. 이번엔 웃음 끝이 조금 걸렸다.


"원장님 장난 아니시네."


"허준 씨도 장난 아니시던데예."


김원효가 진료 카드를 집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


"허준 씨."


"네."


"동의보감 쓰신 분하고 이름이 같네예."


"자주 듣습니다."


김원효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말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예."


"원장님도요? 와 우리 통하네요."


남자가 웃었다. 웃음이 매끄러웠다. 끊기는 데가 없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꺼."


"가슴이요."


남자가 바로 말했다.


"가슴이 답답해요. 쥐어짜는 것처럼요. 그리고 숨이 차요. 계단 10칸만 올라가도 차요. 중간에 한 번 쉬어야 돼요."


"예."


"그리고 밤에 누우면 기침이 나요. 마른기침이요. 그래서 베개를 3개 베고 자요. 낮게 누우면 숨이 막혀서요."


"예."


"새벽 2시쯤 되면 깨요. 숨이 차서요. 그러면 일어나 앉아서 창문을 열어요. 찬바람 쐬면 좀 나아요. 그렇게 30분쯤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워요."


"예."


"그리고 발목이 부어요. 저녁 되면요. 양말 벗으면 고무줄 자국이 쑥 들어가 있어요. 손가락으로 누르면 들어간 채로 한참 안 올라와요."


김원효가 붕어빵을 내려놓았다.


"오줌은예."


"밤에 2번 3번 깨요."


"입맛은예."


"없어요. 요새 밥을 반 공기도 못 먹어요. 그런데 몸무게는 늘었어요. 이상하죠. 한 달에 3킬로요."


"언제부터예."


"한 석 달 됐어요."


김원효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의자가 길게 삐걱였다.


"설명을 참 잘하시네예."


"제가 말로 먹고사니까요."


"그렇지예."


김원효가 말했다.


"너무 잘하십니더."


문(聞) — 듣고 맡아서 아는 것


"숨 한번 크게 쉬어보시겠습니꺼."


남자가 숨을 들이쉬었다. 길게 들어갔다. 끝까지 들어갔다. 내쉬었다. 길고 고르게 나왔다.


쌕 하는 소리가 없었다. 가래 끓는 소리도 없었다. 바람이 빈 통로를 지나가는 소리였다.


"한 번 더예."


또 깨끗했다.


"기침 한번 해보시겠습니꺼."


남자가 기침을 했다. 콜록. 마른 소리였다. 목에서 만든 소리였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김원효가 귀를 남자 등 쪽으로 가져갔다. 셔츠 너머로 숨소리를 들었다.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래. 등뼈 옆.


깨끗했다.


"아까 계단 몇 칸씩 올라오셨습니꺼."


"네?"


"계단요. 여기 올라오실 때예."


"아 그냥 올라왔는데요."


대기실에서 박나리 목소리가 났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2칸씩이요."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5번째 칸은 안 밟고 넘으셨어요. 그 칸 소리가 낮거든요. 거기서 다들 한 번씩 멈칫하는데 안 멈추셨어요. 쉬지도 않으셨고요."


진찰실이 조용했다.


"10칸에 숨차서 한 번 쉰다는 사람이 14칸을 2칸씩 쉬지 않고 올라오면예."


김원효가 말했다.


"계단이 거짓말을 하는 거든지 허준 씨가 하는 거든지 둘 중에 하나라예."


남자가 아무 말도 안 했다.


김원효가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냄새가 납니더."


"무슨 냄새요."


"커피 냄새하고 새 차 냄새하고예. 숨찬 사람은 커피를 그렇게 많이 못 마십니더. 가슴이 뛰어서예. 그리고 새 차 냄새가 몸에 밸 만큼 하루 종일 차 안에 계시는 사람이 밤에 2번 3번 소변 보러 깨면 낮에 운전을 못 합니더. 졸려서예."


"……"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더."


김원효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자가 삐걱였다.


"자기 몸 얘기를 하는 사람은예. 그렇게 정확하게 말 못 합니더."


남자가 숨을 멈췄다.


"자기 몸은 안에서 느끼는 거라서 말로 하기 어렵습니더. 다들 더듬습니더. 여기가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언제부턴지도 잘 모르고예.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데를 설명 못 합니더."


김원효가 말했다.


"근데 남의 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정확합니더. 밖에서 지켜봤으니까예. 베개가 몇 개인지 새벽 몇 시에 깨는지 창문을 여는지 양말 자국이 몇 분 만에 올라오는지. 그거는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 압니더."


대기실 화롯불 물 끓는 소리만 났다.


"허준 씨."


"……네."


"이거 누구 몸입니꺼."


절(切) — 짚어서 아는 것


남자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웃었다. 아까하고 다른 웃음이었다. 끊기는 웃음이었다.


"와. 원장님 진짜. 사람 장사 해도 되겠네요."


"손 주시겠습니꺼."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김원효가 맥을 짚었다. 세 손가락이 손목에 얹혔다.


힘이 있었다. 고르게 뛰었다. 손가락 밑에서 둥 둥 둥 일정하게 왔다. 38살 남자의 맥이었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 조금 빨랐다. 그게 다였다.


"발 좀 보겠습니더."


김원효가 남자 바지 밑단을 걷었다. 양말을 내렸다. 발목 안쪽 뼈 위를 엄지로 눌렀다. 5초를 눌렀다. 뗐다.


살이 바로 올라왔다. 손가락 아래 자국이 남지 않았다.


"허준 씨 몸은 아주 좋습니더. 제가 올해 짚은 맥 중에 손가락 안에 듭니더."


남자가 손을 거뒀다.


"차동민이에요."


목소리가 작았다.


"이름이요. 허준 아니고요."


"예."


"죄송해요."


"괜찮습니더. 거짓말하러 오는 분 많습니더. 진단서 받으러 오시는 분도 있고 휴가 받으러 오시는 분도 있고예. 남의 증상 들고 오시는 분은 처음입니더."


차동민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의자가 아까보다 크게 울었다. 무게가 다 실린 소리였다.


"아버지예요."


"예."


"72살이요. 칠성동에서 카센터 40년 하셨어요. 지금은 셔터 내리고 2층에 사세요."


"병원은예."


"안 가세요."


차동민이 말했다.


"절대 안 가세요. 6년 전에 엄마가 병원 들어가서 못 나왔거든요. 감기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폐렴이었고 3주 만에요. 그 뒤로 아버지는 병원 근처도 안 가세요. 병원 들어가면 못 나온다고요."


"석 달 동안 저 증상이셨습니꺼."


"네. 점점 심해져요. 지난주엔 계단 중간에서 주저앉으셨어요."


차동민이 손을 비볐다. 손바닥이 마른 소리를 냈다.


"제가 병원 가자고 하면 화내세요. 니도 엄마처럼 나를 거기 넣을라 카나 하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내가 대신 가서 약을 받아오자. 한약은 그냥 몸에 좋은 거라고 하면 드실 거니까요. 커피에 타서라도요."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증상을 다 외웠어요. 일주일 동안 아버지 옆에서 적었어요. 몇 시에 깨시는지 베개가 몇 개인지 발목 누르면 몇 초 만에 올라오는지요."


"몇 초 걸립니꺼."


"1분 넘게요. 손가락 자국이 1분 넘게 안 없어져요."


김원효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민 씨."


"네."


"이거는 제가 고치면 안 되는 겁니더."


차동민이 고개를 들었다.


"누우면 숨차고 일어나 앉으면 나아지고 발목이 그렇게 붓고 밥을 못 먹는데 몸무게가 늘면예. 심장이 물을 못 돌리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더. 물이 몸에 고이는 겁니더. 폐에도 고이고 다리에도 고이고예."


"……"


"이거는 한약 커피에 타서 될 일이 아입니더. 오늘 병원 가셔야 됩니더. 늦어도 내일요."


"안 가신다니까요."


차동민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원장님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거예요. 병원 말고 다른 데요. 아버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데요."


김원효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붕어빵이 식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라모 제가 가겠습니더."


"네?"


"아버님한테예. 지금요."


망(望) — 바라는 것


칠성동 골목은 기름 냄새가 났다.


엔진오일 냄새였다. 오래 바닥에 스며서 빠지지 않는 냄새였다. 그 위로 고무 냄새가 있었고 쇳가루 냄새가 있었다. 시장 쪽에서 생선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김원효가 우루스를 가져왔다.


차동민이 그러자고 했다.


"아버지는 저 차 소리 들으면 내려오세요. 무조건이요. 카센터 하는 사람은 그 소리를 못 참아요."


골목 입구에서 엔진이 낮게 울었다. 배 속까지 내려가는 소리였다. 셔터 내린 가게들 사이로 그 소리가 퍼졌다. 셔터가 같이 떨렸다. 철판이 작게 웅웅거렸다.


2층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오래된 알루미늄 창틀이었다.


"동민아 니 뭐 끌고 왔노."


쉰 목소리였다. 말 사이에 숨이 끼었다. 한 문장을 다 못 하고 중간에 숨을 쉬었다.


"내려와 봐요 아버지."


창문이 닫혔다. 한참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러다가 계단 소리가 났다. 철제 계단이었다. 텅 텅 울렸다. 한 칸 내려오고 멈췄다. 숨소리가 났다. 또 한 칸 내려오고 멈췄다.


14칸쯤 되는 계단을 내려오는 데 3분이 걸렸다.


김원효는 차 옆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칸마다 쉬는 숨이었다. 숨 끝에 물소리가 섞여 있었다. 가르랑. 젖은 종이를 구기는 것 같은 소리였다.


노인이 셔터 옆 쪽문으로 나왔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났다. 발이 무거웠다.


"이거 우루스 아이가."


"예."


"4리터 트윈터보."


"예."


"시동 다시 걸어봐라."


김원효가 차에 손을 넣어서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울었다.


노인이 차 앞쪽으로 갔다. 보닛 위에 손을 얹었다. 엔진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오는 걸 듣는 자세였다. 한참 그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르랑 소리가 났다.


"이 차 원래 주인이 험하게 탔다."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처음 1만 키로를 길들이지도 않고 밟았다. 소리에 다 남아 있다. 그 뒤로 주인이 바뀌었는가. 요 몇 년은 살살 탔네. 근데 처음에 버릇을 그렇게 들이놓으면 안 빠진다."


"……그거를 소리로 압니꺼."


"40년 했다."


노인이 보닛에서 손을 뗐다. 기침을 했다. 젖은 기침이었다. 가슴 깊은 데서 올라왔다. 한참 했다. 차동민이 아버지 등을 잡았다.


"원래 주인이 화가 많은 사람이었는갑다. 차를 그렇게 밟는 거 보면."


김원효가 시동을 껐다. 엔진 소리가 줄어들었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셔터 떨림도 멈췄다.


"……그랬는갑습니더."


노인이 그 대답에 고개를 김원효 쪽으로 돌렸다.


"니가 누고."


"약령시에서 한의원 하는 사람입니더. 김원효라 캅니더."


"한의사가 우루스 타나."


"예."


"미친놈이네."


"자주 듣습니더."


노인이 웃었다. 웃다가 또 기침을 했다.


김원효가 노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어르신 발목 좀 만져봐도 되겠습니꺼."


"와."


"그냥예."


노인이 대답을 안 했다. 김원효가 바짓단을 걷었다. 발목이 차가웠다. 그리고 단단하게 부어 있었다. 피부가 팽팽했다. 엄지로 눌렀다. 5초. 뗐다.


들어간 자리가 안 올라왔다. 손가락 끝으로 그 자리를 더듬었다. 움푹했다. 10초가 지나도 움푹했다. 30초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김원효가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었다.


가늘었다. 그리고 고르지 않았다. 둥 둥 하다가 한 박자가 비었다. 다시 둥 둥 둥 하다가 또 비었다. 비는 자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손가락 밑에서 박자가 자꾸 넘어졌다.


김원효가 손을 놓지 않고 한참 있었다.


"어르신."


"와."


"이거는 제가 못 고칩니더."


노인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심장이 지금 힘이 많이 빠져 있습니더. 박자도 자꾸 놓칩니더. 물이 다리에도 차 있고 아까 숨소리 들어보니까 폐에도 차 있습니더. 이거는 한약으로 하면 안 됩니더. 오늘 병원 가셔야 됩니더."


"안 간다."


노인이 바로 말했다.


"병원 가면 못 나온다. 우리 집사람이 그랬다."


"예."


"니 동민이가 데리고 왔제. 니도 한통속이제."


"아드님이 오늘 저한테 허준이라 카고 왔습니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뭐라꼬."


"이름을 허준이라 캤습니더. 그라고 어르신 증상을 자기 증상이라 캤습니더. 베개 3개 베고 주무시는 거. 새벽 2시에 깨서 창문 여시는 거. 발목 누르면 1분 넘게 자국 안 없어지는 거. 계단 중간에 주저앉으신 거. 그거를 일주일 동안 옆에서 적어서 다 외워 왔습니더."


골목이 조용했다. 시장 쪽에서 리어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한약 받아서 어르신 커피에 몰래 타드릴라꼬예."


노인이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동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르신 오늘 안 가시면예."


김원효가 말했다.


"아드님은 다음 주에 다른 한의원 가서 또 다른 이름을 댈 겁니더. 그다음 주에는 또 다른 데 가고예. 저는 거짓말인 거 알았는데 다른 데는 모를 수도 있습니더. 그라모 아드님 손으로 어르신한테 엉뚱한 약을 타드리게 됩니더."


"……"


"어르신 아드님이 거짓말 참 잘합니더. 저도 처음엔 속을 뻔했습니더."


노인이 한참 숨을 쉬었다. 가르랑 소리가 났다.


"그놈이 거짓말을 잘한다."


노인이 말했다.


"중고차 판다꼬."


"아버지한테 배웠잖아."


차동민이 말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아버지가 손님한테 이 엔진 10년은 끄떡없다꼬 했잖아. 3년 만에 퍼졌잖아."


노인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어깨가 떨리는 소리가 셔츠 너머로 났다.


"그거는 손님이 오일을 안 갈아서 그렇다."


"오일 갈 때 오라고 했어야지."


"했다."


"안 했다."


둘이 한참 그랬다. 김원효가 쭈그려 앉은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노인이 먼저 멈췄다.


"동민아."


"응."


"니 진짜 허준이라 캤나."


"응."


"……미친놈."


노인이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걸렸다.


"가는 건 가는데."


노인이 우루스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이 차체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이었다.


"이거 타고 간다."


김원효가 일어섰다. 무릎이 또 뚝 소리를 냈다.


"모시겠습니더."


경북대병원 응급실까지는 15분이었다.


노인이 조수석에 앉았다. 등받이를 세웠다. 누우면 숨이 막혔다. 차동민이 뒷자리에서 아버지 어깨를 잡고 있었다.


김원효가 천천히 몰았다. 엔진이 낮게만 울었다.


"밟아봐라."


"안 됩니더."


"한 번만."


"응급실 가는 길입니더."


"그러니까. 마지막일 수도 있다 아이가."


"마지막 아입니더. 나오시면 제가 다시 태워드리겠습니더. 그때 밟으이소."


노인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니 그거 약속이가."


"약속입니더."


"한의사가 우루스 핸들을 남한테 맡기나."


"어르신은 남이 아입니더. 40년 하셨다면서예."


노인이 숨을 쉬었다. 가르랑.


"원래 주인이 니가."


차 안이 조용해졌다. 엔진만 낮게 울었다. 깜빡이 소리가 똑딱똑딱 났다.


김원효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 험하게 밟은 놈 말이다."


"……"


"요새 살살 타는 놈하고 같은 놈이가."


신호가 바뀌었다. 김원효가 천천히 출발했다.


"같은 놈입니더."


노인이 그 대답을 들었다.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찬 유리에 이마를 댔다.


"사람이 바뀌네."


"바뀌는 데 오래 걸렸습니더."


"차도 그렇다. 버릇 빼는 데 오래 걸린다."


노인이 말했다.


"근데 빠지기는 빠진다."


응급실은 소리가 많았다.


모니터가 삐 삐 울렸다. 침대마다 박자가 달랐다. 바퀴 달린 침대가 복도를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커튼 고리가 쇠막대를 긁는 소리가 났다. 소독약 냄새가 진했다. 그 밑에 누군가 토한 냄새가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노인이 들어가자마자 몸에 선이 붙었다. 산소 줄이 코에 걸렸다. 쉭 쉭 하는 소리가 났다. 노인 옆 모니터가 울기 시작했다. 박자가 고르지 않았다. 삐 삐 하다가 한 박자가 비었다.


김원효는 그 소리를 커튼 밖 플라스틱 의자에서 들었다. 의자가 작았다. 엉덩이가 반쯤 밖으로 나갔다.


차동민이 옆에 앉았다.


"원장님 가셔도 돼요."


"좀 있다 가겠습니더."


"한의사가 응급실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이상하지예."


김원효가 말했다.


"근데 어르신이 나 나갈 때까지 있으라 카셨습니더. 핸들 약속 때문에예."


차동민이 웃었다. 웃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눌렀다. 숨이 손 사이로 빠졌다.


"원장님."


"예."


"저 거짓말 참 많이 했어요. 12년 동안요. 차 팔면서요. 근데 오늘 거는요."


"예."


"오늘 거는 처음으로 저 좋자고 한 거 아니었어요."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커튼 너머에서 의사 목소리가 났다. 젊은 목소리였다. 숫자를 불렀다. 산소 포화도 몇. 혈압 몇. 이뇨제 몇 밀리그램. 김원효는 그 숫자들을 들었다.


"동민 씨."


"네."


"거짓말이 다 나쁜 거는 아입니더."


"……"


"근데 오늘 거는 오래 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더. 남 대신 아파주는 거짓말은예. 오래 하면 진짜 아픈 사람이 안 보입니더. 아버님이 오늘 계단을 14칸 내려오는 데 3분 걸렸습니더. 그거는 거짓말로 대신 못 해줍니더."


차동민이 손바닥을 얼굴에서 뗐다.


"그럼 뭘 해줄 수 있어요."


"옆에 있어주는 거는 됩니더. 거짓말 없이예."


커튼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쇠고리가 촤르륵 긁혔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차동민이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들어가기 전에 돌아섰다.


"원장님 진짜 기다리실 거예요?"


"핸들 약속했다 아입니꺼."


커튼 안에서 노인 목소리가 났다. 산소 줄 소리 사이로 쉰 목소리였다.


"그 미친 한의사 아직 있나."


"있어요 아버지."


"있으라 캐라."


김원효가 플라스틱 의자에서 몸을 고쳐 앉았다. 의자가 삐걱였다.


모니터가 울었다. 삐 삐 삐. 아까보다 박자가 조금 고왔다.


에필로그


다음 주 수요일 오후였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한 칸씩이었다. 5번째 칸에서 한 번 멈칫했다. 낮은 소리를 밟았다.


유리문이 열렸다. 커피 냄새가 들어왔다. 새 차 냄새는 안 났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박나리가 접수 카드를 내밀었다. 볼펜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느렸다. 한 글자씩 눌러 쓰는 소리였다.


차동민.


박나리가 카드를 받아서 이름 칸을 손끝으로 쓸었다. 볼펜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아버님은요?"


"입원하셨어요. 심부전이래요. 물 빼는 약 들어가니까 하루에 2킬로씩 빠지더래요. 어제는 베개 1개로 주무셨어요."


"다행이다."


"원장님 계세요?"


진찰실에서 의자 소리가 났다. 무거운 발소리가 나왔다. 귤 냄새가 같이 나왔다. 오늘은 귤이었다.


"오셨습니꺼."


"원장님 아버지가 이거 전해드리래요."


종이 소리가 났다. 접힌 종이였다. 기름 묻은 손으로 접은 것 같았다. 엔진오일 냄새가 종이에서 났다.


김원효가 받았다.


"뭡니꺼."


"정비 예약증이요. 아버지가 손으로 쓰셨어요. 원장님 차 엔진오일 갈 때 됐다고요. 퇴원하면 직접 갈아주시겠대요. 공임은 안 받는대요."


김원효가 종이를 손끝으로 쓸었다. 볼펜이 종이를 뚫을 듯이 눌러 쓴 글씨였다.


"그리고 하나 더요."


"예."


"그날 밟으라고 하신 거요. 약속하신 거요."


"예."


"아버지가 그거 꼭 받아낸대요. 그래서 퇴원해야 된대요."


김원효가 웃었다. 숨이 코로 빠지는 웃음이었다.


"받으셔야지예."


차동민이 진료를 받았다. 이번엔 진짜 자기 증상이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자서 허리가 아팠다. 김원효가 허리를 눌렀다. 차동민이 아 했다.


"이거는 진짜 아프네예."


"진짜 아파요."


"설명이 아까보다 서툽니더."


"네?"


"진짜 아픈 사람은 원래 그렇습니더."


차동민이 웃었다. 이번엔 끊기는 데가 있는 웃음이었다.


약침을 맞고 탕약을 기다리는 동안 차동민이 대기실에 앉았다. 박나리 옆이었다. 화롯불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저기요."


차동민이 작게 말했다.


"네."


"그날 제가 원장님 차 얘기한 거요. 서울 법인 어쩌고."


박나리가 폰을 내려놓았다.


"그거 괜히 했나 싶어서요. 직업병이라서 막 나와요. 차 얘기만 나오면요."


"……그거 진짜예요?"


차동민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최초 등록이 법인인 건 진짜예요. 이력 조회 하면 나와요. 소유자 변경 1번. 법인에서 개인으로요."


"서울 강남은요."


"그건 서울 딜러 형님이 한 말이고요. 그 색으로 나간 우루스가 몇 대 없어서 기억한대요. 무슨 파트너스라는 회사였대요. 영어 이름이요."


박나리가 아무 말도 안 했다.


"근데 저 그거 원장님한테 다시 안 물어볼 거예요."


"왜요?"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차동민이 말했다.


"버릇 빼는 데 오래 걸린다고. 근데 빠지기는 빠진다고. 원장님이 그날 차에서 같은 놈이라고 했어요. 처음에 험하게 탄 놈하고 요새 살살 타는 놈하고요."


차동민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종이컵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얘기를 저 같은 사람이 이력 조회로 꺼내면 안 될 것 같아요. 본인이 말할 때 들어야죠."


박나리가 그 말을 들었다.


탕약이 나왔다. 차동민이 받아서 갔다. 계단 소리가 한 칸씩 내려갔다.


진찰실에서 김원효가 귤 까는 소리가 났다. 껍질이 손톱에 찢어지는 소리였다. 새콤한 냄새가 대기실까지 퍼졌다.


박나리가 일어섰다.


진찰실 문 앞을 지나서 바카라장 쪽으로 갔다. 진찰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김원효는 창가 쪽이었다. 귤 까는 소리가 그쪽에서 났다.


바카라장 가운데 칸이었다.


박나리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 바카라등이 닿았다. 딱딱했다. 두꺼웠다. 천으로 싼 표지였다. 손가락으로 쓸면 금박 글자가 오돌토돌하게 만져졌다. 한글이 아니었다. 알파벳 모양이었다.


박나리가 그 바카라등에 손가락을 걸었다. 반쯤 당겼다. 바카라이 무거웠다. 오래 안 빠진 바카라이 옆 바카라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스윽.


3년 동안 한 번도 안 낸 소리였다.


진찰실 쪽에서 귤 까는 소리가 멈췄다.


박나리가 그 자리에 섰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화롯불 물 끓는 소리만 났다.


박나리가 바카라을 도로 밀어 넣었다. 끝까지 밀었다. 바카라등이 옆 바카라들과 나란해지는 소리가 났다. 툭.


"나리야."


진찰실에서 목소리가 났다.


"네."


"그 칸 먼지 많제."


"……네. 많아요."


"닦아줄라꼬 했나."


박나리가 손끝을 비볐다. 먼지가 손가락에 묻어 있었다. 마른 종이 먼지였다. 오래된 냄새가 났다.


"아니요."


박나리가 말했다.


"안 닦을게요. 선생님이 꺼낼 때까지요."


진찰실이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가 귤 까는 소리가 다시 났다. 아까보다 느렸다.


"반 무라."


박나리가 진찰실로 들어갔다. 귤 반쪽이 손바닥에 놓였다. 차가웠다. 새콤했다.


"선생님."


"응."


"차동민 씨가 그러던데요. 버릇 빼는 데 오래 걸린대요. 근데 빠지긴 빠진대요."


김원효가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씹는 소리가 났다.


"그 집 아버님 말씀이라."


"알아요."


박나리가 귤을 먹었다. 신맛이 먼저 오고 단맛이 나중에 왔다.


"선생님은 다 빠졌어요?"


김원효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노만수가 셔터 올리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12월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왔다.


"아직이라."


김원효가 말했다.


"근데 빠지는 중이라."


박나리가 귤 껍질을 손안에 쥐었다. 껍질에서 향이 났다. 손바닥이 따뜻해서 향이 더 셌다.


그거면 오늘은 됐다고 박나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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