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유절(有節)

25부

by김경훈

먹고 마심에 절도가 있고 일어나고 눕는 데 일정함이 있으며 함부로 몸을 쓰지 않았다. — 《황제내경》 소문 상고천진론


0킬로미터 — 맥 76


12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1시였다.


칠성동 골목에 엔진 소리가 들어왔다. 낮게 울었다. 셔터들이 같이 떨렸다. 철판이 웅웅거렸다.


2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왔나."


쉰 목소리였다. 3주 전보다 덜 쉬었다. 말 사이에 끼던 가르랑 소리가 없었다.


"왔습니더."


"올라와서 기다리라. 옷 입는다."


철제 계단 소리가 났다. 텅. 텅. 텅. 한 칸씩 내려왔다. 멈추지 않았다. 14칸을 내려오는 데 40초가 걸렸다. 박나리가 폰 스톱워치로 쟀다.


"40초요."


"지난번에 3분이었다."


김원효가 말했다.


노인이 쪽문으로 나왔다. 슬리퍼가 아니었다. 구두였다. 가죽 밑창이 시멘트를 밟는 소리가 또박또박 났다. 구두약 냄새가 났다. 아침에 닦은 냄새였다.


"구두 신으셨네예."


"핸들 잡는 날 아이가."


차봉수가 우루스 앞에 섰다. 보닛에 손을 얹었다. 엔진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오는 걸 한참 들었다.


"그대로네."


"오일은 아직 안 갈았습니더. 어르신이 갈아준다 캐서예."


"오늘 갈 끼다. 갔다 와서."


김원효가 노인 앞에 섰다.


"어르신 손 주시이소."


"또 맥이가."


"출발 전에 한 번입니더."


차봉수가 손목을 내밀었다. 김원효가 세 손가락을 얹었다.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김원효가 손가락 밑에서 세었다. 박나리는 숫자를 기다렸다.


"19."


"76이요."


박나리가 곱했다.


"박자는예."


김원효가 손을 놓지 않고 한참 더 짚었다. 둥 둥 둥 둥. 비는 자리가 없었다. 30초를 더 짚었다. 한 번도 안 비었다.


"고릅니더."


김원효가 손을 놓았다.


"규칙 말씀드리겠습니더."


"규칙은 무슨."


"병원 선생님이 운전은 해도 된다 카셨지예. 근데 무리하지 말라꼬."


"했다."


"그라모 규칙이 있어야 됩니더."


차봉수가 팔짱을 꼈다. 점퍼가 바스락거렸다.


"말해봐라."


"제가 조수석에 앉습니더. 중간중간 신호 걸리면 맥 짚습니더. 100 넘으면 그날은 끝입니더. 박자가 한 번이라도 비면 그것도 끝입니더."


"100 넘으면 끝이라꼬."


"예."


"그라모 밟을 수가 없다 아이가. 밟으면 맥이 뛰는데."


"그러니까 맥 안 뛰게 밟으이소."


차봉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웃었다. 소리를 내고 웃었다. 기침이 안 섞였다.


"니 진짜 미친놈이네."


"자주 듣습니더."


"맥으로 속도 제한하는 놈은 40년 만에 처음 본다."


차봉수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무거운 문이었다. 열리는 소리가 묵직했다. 시트에 앉는 소리가 났다. 가죽이 눌리는 소리였다. 차봉수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네."


"뭐가예."


"앉는 자리가."


박나리가 뒷자리에 탔다. 김원효가 조수석에 탔다. 조수석이 김원효 무게에 한 번 가라앉았다.


"어디 갑니꺼."


"팔공산."


차봉수가 말했다.


"순환도로 돌고 동화사 앞에서 돌아온다. 우리 집사람하고 처음 데이트한 길이다."


시동이 걸렸다.


12킬로미터 — 맥 84


차가 신천대로를 탔다.


차봉수는 천천히 몰았다. 김원효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천천히였다. 차선을 한 번도 안 바꿨다. 깜빡이를 켤 때는 3초 전에 켰다. 똑딱똑딱.


"어르신 밟으신다면서예."


"아직 아이다."


"언제예."


"차가 몸 풀고 나서. 엔진이 다 데워지기 전에 밟으면 안 된다. 사람도 그렇고."


김원효가 웃었다.


"그거 제가 환자한테 하는 말인데예."


"니도 정비사 하면 되겠다."


신호에 걸렸다. 김원효가 노인 손목을 잡았다.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21."


"84요."


"올랐네예."


"신이 나서 그렇다."


"박자는 고릅니더."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굴렀다.


뒷자리에서 박나리가 물었다.


"어르신 엔진 소리로 뭘 알아요?"


"다 안다."


"다요?"


"엔진은 거짓말을 못 한다. 사람은 괜찮다 캐도 엔진은 아프면 아프다꼬 소리를 낸다."


차봉수가 말했다.


"손님이 차를 끌고 오면 나는 먼저 시동을 걸어보라 칸다. 그 소리를 듣는다. 그다음에 냄새를 맡는다. 배기구 냄새. 오일 타는 냄새. 냉각수 단내. 그다음에 손님한테 묻는다. 언제부터 그랬는교. 어디서 그랬는교. 그다음에 손으로 만진다. 엔진룸에 손을 넣어서 떨림을 잡는다."


김원효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거 사진(四診)입니더."


"뭐라꼬."


"한의사가 진찰하는 네 가지라예. 듣고 맡고 묻고 짚는 거예. 순서까지 똑같습니더."


차봉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40년 동안 내가 한의사 짓을 했나."


"정비사가 한의사 짓을 한 게 아이라예."


김원효가 말했다.


"한의사가 정비사 짓을 하는 깁니더."


차봉수가 웃었다. 핸들에 손을 얹은 채로 어깨가 흔들렸다.


"사람 고치는 거나 차 고치는 거나 똑같네."


"하나 다른 거 있습니더."


"뭐."


"차는 부품을 갈 수 있습니더. 사람은 못 갑니더."


차봉수가 웃음을 멈췄다.


"그래서 사람은 살살 써야 된다."


"예."


"알았다."


차가 동구로 넘어갔다. 길이 넓어졌다. 차들이 줄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흙 냄새가 섞였다.


23킬로미터 — 맥 96


팔공산 순환도로 입구였다.


길이 굽기 시작했다. 오르막이었다. 엔진이 한 단 낮게 울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소리가 바뀌었다. 커브에서 차가 기울었다. 박나리가 뒷자리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서부터다."


차봉수가 말했다.


오른발이 내려갔다.


엔진이 울었다. 낮은 데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갔다. 배 속에서 가슴으로 올라오는 소리였다. 등이 시트에 붙었다. 박나리 귀가 먹먹해졌다.


커브가 왔다. 차봉수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부드럽게 밟았다. 차가 휘었다. 다시 밟았다. 엔진이 울었다.


"와."


박나리가 말했다.


"와."


차봉수가 따라 말했다. 목소리가 젊었다.


다음 커브 앞에서 차봉수가 속도를 줄였다. 갓길에 섰다. 비상등을 켰다. 똑딱똑딱.


"맥 짚어라."


김원효가 손목을 잡았다. 15초.


"24."


"96이요."


박나리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100 안 넘었다."


"안 넘었습니더."


"박자는."


김원효가 더 짚었다. 둥 둥 둥 둥. 빨랐다. 그런데 고왔다. 비지 않았다.


"고릅니더."


"그라모 한 번 더."


"2분 쉬고예."


"2분?"


"맥이 80 밑으로 내려올 때까지예."


차봉수가 핸들에서 손을 뗐다. 숨을 쉬었다. 길게 쉬었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소나무 냄새가 났다. 송진 냄새였다. 날카롭고 맑았다.


"집사람하고 왔을 때도 이 냄새였다."


차봉수가 말했다.


"1977년이었다. 내가 23살이었고 집사람이 21살이었다. 내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서 왔다. 대림 혼다. 125cc. 이 오르막을 2명 태우고 못 올라가서 집사람이 내려서 걸었다."


"걸어서요?"


"저 커브부터 저 커브까지. 내가 오토바이 끌고 집사람이 옆에서 걸었다. 그게 데이트였다."


박나리가 웃었다.


"그다음에 3년 일해서 내 오토바이 샀다. 그다음에 10년 일해서 카센터 냈다. 그다음에 동민이 낳고."


차봉수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찬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집사람 병원 들어갈 때 내가 차로 데려다줬다. 감기인 줄 알고. 가면서 집사람이 그랬다. 당신 운전 살살 하소. 내 가슴이 울렁거린다."


차 안이 조용했다. 비상등만 똑딱거렸다.


"그게 마지막으로 탄 내 차였다."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2분이 지났다.


김원효가 다시 손목을 잡았다. 15초.


"19."


"76이요."


"내려왔습니더."


차봉수가 창문을 올렸다. 비상등을 껐다.


"그라모 이번엔 살살 갈란다."


"밟으셔도 됩니더."


"아이다."


차봉수가 말했다.


"집사람이 살살 하라 캤다."


31킬로미터 — 맥 80


차가 다시 굴렀다. 천천히 굴렀다.


커브를 돌 때마다 차봉수가 브레이크를 아주 조금씩 밟았다. 차가 출렁이지 않았다. 박나리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어르신."


차봉수가 대답했다.


"와."


"지난번에 이 차 원래 주인이 험하게 탔다고 하셨잖아요."


조수석에서 김원효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했다."


"그거 진짜 소리로 알아요?"


"알지."


"어떻게요?"


차봉수가 커브를 돌았다.


"새 엔진은 처음 1만 킬로가 중요하다. 그때 안에 쇠들이 서로 맞춰진다. 피스톤하고 실린더하고 서로 깎이면서 자리를 잡는다. 그때 살살 타면 부드럽게 맞물리고 그때 밟으면 거칠게 맞물린다. 한 번 그렇게 맞물리면 평생 간다. 소리에 남는다."


"어떤 소리요?"


"높은 데서 떨림이 하나 더 있다. 아주 작다. 보통 사람은 못 듣는다."


박나리가 귀를 기울였다. 엔진 소리 위에 다른 소리가 있는지 들었다. 몰랐다.


"원장님."


차봉수가 말했다.


"니 그때 왜 그렇게 밟았노."


차 안이 조용해졌다. 엔진만 낮게 울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김원효가 한참 대답을 안 했다.


박나리는 뒷자리에서 숨을 참았다. 자기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봐.


"그때 서울에서 일했습니더."


김원효가 말했다.


사투리였다. 그런데 평소보다 느렸다. 단어를 하나씩 고르는 소리였다.


"매일 새벽 5시에 이 차 타고 출근했습니더. 회사 차였습니더. 아침에는 숫자를 봤습니더. 어느 회사가 얼마짜리인지. 어디를 줄이면 얼마가 남는지예."


"……"


"오후에는 그 회사 사람들을 만났습니더. 아침에 본 숫자를 그 사람들한테 말했습니더."


"무슨 숫자."


"몇 명이 나가야 되는지예."


차봉수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주 조금. 차가 조금 느려졌다.


"그라고 저녁에 이 차를 밟았습니더."


김원효가 말했다.


"올림픽대로 끝에서 끝까지예. 매일."


"화가 나서."


"화가 났지예."


김원효가 말했다.


"근데 누구한테 화가 났는지 몰랐습니더."


차봉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박나리는 뒷자리에서 자기 손을 쥐었다. 손바닥이 젖었다.


"그 사람들한테 화가 난 거는 아이었습니더.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으니까예. 회사한테 화가 난 것도 아이었고예. 회사는 그냥 숫자니까예. 그라모 남는 건 하나밖에 없었는데."


김원효가 말을 멈췄다.


"그거를 그때는 몰랐습니더."


커브가 왔다. 차봉수가 아주 천천히 돌았다.


"그래서 화를 어디다 냈노."


"이 차한테예."


김원효가 말했다.


"엔진이 거칠게 맞물린 거는 제 탓입니더."


차봉수가 커브를 다 돌았다. 직선이 나왔다. 밟지 않았다.


"그라고."


"그라고는예."


김원효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찬 유리에 이마가 닿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더."


차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


"엔진도 한 번에 다 뜯는 거 아이다. 한 번에 다 뜯으면 다시 못 맞춘다."


차가 동화사 앞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자갈이 타이어 밑에서 자글자글 울었다.


박나리는 뒷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숫자로 사람 값 매기는 일. 몇 명이 나가야 되는지 말하는 일. 강남의 무슨 파트너스. 처음 1만 킬로.


조각들이 맞춰지는 소리는 안 났다. 그냥 조각이 하나 더 생겼다.


38킬로미터 — 맥 72


동화사 주차장에서 차를 세웠다.


셋이 내렸다. 찬바람이 확 왔다. 산바람이었다. 귀가 시렸다. 소나무 냄새가 진했다. 어디선가 낙엽이 바람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마른 잎이 자갈 위를 긁었다.


주차장 끝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엔진오일 냄새가 아니었다. 달군 철판 위에서 설탕이 녹는 냄새였다. 찹쌀 반죽이 눌리는 소리가 치익 났다.


호떡 노점이었다.


김원효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빨랐다. 자갈 밟는 소리가 박나리보다 먼저 멀어졌다.


"선생님 방금 맥 얘기하던 중이었잖아요."


"호떡 식는다."


"아직 안 사셨잖아요."


"사면 식는다."


차봉수가 웃었다. 자갈 위에서 구두가 미끄러지지 않게 천천히 따라 걸었다.


"사장님 6개 주이소."


"6개요?"


노점 주인 목소리였다. 나이 든 여자였다.


"3명인데 6개요?"


"예."


"원장님 저 1개면 돼요."


"압니더."


"어르신도 1개면 되시죠."


차봉수가 대답했다.


"나는 의사가 단 거 줄이라 캤다. 반 개."


"그라모 4개 반은 제가 먹습니더."


노점 주인이 철판 위에서 호떡을 뒤집었다. 치익. 누르개가 반죽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이 양반 덩치 보니까 4개 반 맞네."


"자주 듣습니더."


차봉수가 반 개를 받아서 손바닥에 올렸다. 종이컵 바닥이 뜨거웠다. 후후 불었다. 한 입 먹었다. 꿀이 흘렀다. 혀가 데었다.


"앗 뜨거."


"맥 올라갑니더 어르신."


"호떡 때문에 올라간 거는 안 친다."


"칩니더."


"니는 4개 반 먹으면서."


"저는 맥 안 짚습니더."


차봉수가 혀를 식히면서 웃었다.


"그게 문제다."


박나리가 호떡을 반으로 갈랐다. 김이 손가락에 닿았다. 계피 냄새가 났다. 설탕 녹은 냄새가 났다.


"어르신 이거 사모님하고도 드셨어요?"


"그때는 없었다. 그때는 번데기 팔았다."


"번데기요?"


"집사람이 번데기를 좋아했다. 나는 못 먹었다. 집사람이 나 먹으라고 하나 입에 넣어줬는데 내가 도로 뱉었다. 그게 첫 싸움이었다."


노점 주인이 웃었다.


"번데기는 요새도 저쪽에 있어요."


차봉수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한참 그대로 있었다.


"됐다. 오늘은 호떡이다."


절 쪽에서 종소리가 났다.


둥.


낮고 길었다. 소리가 산에 부딪혀서 돌아왔다. 한참 울렸다. 박나리 가슴 안쪽까지 울렸다.


차봉수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서 있었다.


"맥 짚어봐라."


김원효가 손목을 잡았다.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18."


"72요."


"출발할 때보다 낮네예."


"그렇나."


"예. 오늘 제일 낮습니더."


차봉수가 웃었다.


"절 앞이라 그렇다."


"종소리 때문이겠지예."


둥.


2번째 종이 울렸다. 셋이 그 소리가 다 잦아들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차봉수가 먼저 말했다.


"니 오늘 내 맥을 몇 번 짚었노."


"6번입니더."


"6번 짚으면서 니 맥은 몇 번 짚었노."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차봉수가 김원효 손목을 잡았다. 투박한 손이었다. 기름때가 손톱 밑에 박혀서 40년 동안 안 빠진 손이었다. 손가락 셋을 얹었다. 엉터리로 얹었다. 자리가 맞지 않았다.


"어르신 거기 아입니더. 조금 위로예."


"여기가."


"예."


"나리야 니 시계 눌러라."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차봉수가 입속으로 세었다. 중간에 몇 번 틀렸다. 다시 셌다.


"22."


"88이요."


박나리가 말했다.


"니가 나보다 빠르네."


차봉수가 김원효 손목을 놓지 않았다.


"아까 그 얘기 하고 나서 빨라졌제."


김원효가 대답하지 않았다.


"엔진은 거짓말을 못 한다 캤지."


차봉수가 말했다.


"사람 맥도 그렇네."


둥.


3번째 종이 울렸다.


김원효가 손목을 빼지 않았다. 차봉수가 그 손목을 쥔 채로 종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다 잦아들었다.


차봉수가 손을 놓았다.


"내려가자. 내가 몰고 간다. 살살."


45킬로미터 — 맥 74


내려가는 길은 해가 지고 있었다.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창문에 김이 서리는지 차봉수가 히터를 앞유리 쪽으로 돌렸다. 바람 소리가 바뀌었다.


박나리가 뒷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르신."


"와."


"저도 오늘 재본 거 있어요."


"뭐."


"제 계단이요."


김원효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침산동에 계단이 하나 있거든요. 14칸이요. 시멘트라서 소리가 안 나요."


"그래서."


"지난주에 4칸까지 올라갔어요."


차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14칸 중에 4칸."


"네."


"내 14칸 내려오는 데 3분 걸렸다가 오늘 40초 걸렸다."


차봉수가 말했다.


"니는 몇 분 걸리노."


박나리가 잠깐 생각했다.


"4칸 올라가는 데 1분이요. 그러고 3분 서 있다가 내려와요."


"그라모 다음엔 5칸."


"네."


"그다음엔 6칸."


"네."


"계단은 도망 안 간다."


차봉수가 말했다.


"엔진처럼 살살 길들이면 된다."


박나리가 등을 기댔다. 시트가 따뜻했다. 열선이었다.


조수석에서 김원효가 아주 작게 말했다.


"4칸이가."


"네."


"언제부터."


"한 달 됐어요. 일요일마다요."


김원효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잘했다."


박나리는 그 말을 들었다. 지난달 큰길 끝에서 들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같은 목소리였다. 조금 더 낮았다.


57킬로미터 — 맥 70


칠성동 골목에 다시 들어왔다. 저녁 6시였다. 시장이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셔터 내리는 소리. 리어카 바퀴. 생선 상자를 정리하는 물소리.


차봉수가 카센터 앞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껐다. 엔진 소리가 줄어들었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차봉수가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한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맥 짚어라."


"예."


김원효가 손목을 잡았다. 15초.


"17하고 반."


"70이요."


"오늘 끝입니더. 다 고릅니더."


차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핸들에서 손을 뗐다.


"57킬로."


"예."


"6년 만에 57킬로 몰았다."


차봉수가 문을 열었다. 내렸다. 구두가 시멘트를 밟았다. 또박또박.


쪽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원장님."


"예."


"오일은 내일 아침에 갈아주께. 9시에 차 갖고 온나."


"예."


"그라고 하나 더."


"예."


"높은 데 떨림 하나 더 있다 캤제. 처음 1만 킬로 때문에."


"예."


"그거 못 없앤다."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근데 오늘 들어보니까 작아졌다."


차봉수가 말했다.


"6년 전에 이 차를 처음 들었으면 크게 들렸을 끼다. 오늘은 작더라. 그사이에 살살 탔다는 거다."


"……"


"그거면 된다. 다 없애려고 하지 마라. 작게 해서 데리고 살면 된다."


차봉수가 쪽문을 열었다. 철제 계단 소리가 났다. 텅. 텅. 텅. 멈추지 않고 올라갔다.


김원효가 조수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박나리가 뒷자리에서 말했다.


"선생님."


"응."


"운전석으로 옮기셔야죠."


"응."


김원효가 안 움직였다.


"선생님."


"알았다."


김원효가 내렸다. 운전석 쪽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었다. 앉았다. 시트가 아직 따뜻했다. 차봉수 체온이었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울었다.


박나리가 귀를 기울였다. 높은 데 떨림이 하나 더 있는지 들었다.


몰랐다.


"선생님은 들려요?"


"뭐가."


"높은 데 떨림이요."


김원효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들린다."


"커요?"


"작다."


차가 골목을 나섰다.


에필로그


명음사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밤 8시 반이었다.


12월 감상회는 벌써 판 3장째였다. 석유난로 냄새와 찐빵 냄새가 났다. 의자 7개가 아니라 9개였다. 최기태가 2개를 더 폈다.


"늦었네요 원장님."


"팔공산 다녀왔습니더."


"팔공산이요?"


"카센터 어르신이 핸들 잡으셨습니더."


의자 하나에서 오유진 목소리가 났다. 서울에서 어제 내려왔다고 했다.


"원장님 저 환약 다 먹었어요. 편의점 도시락 먹고 나서요."


"잠은예."


"새벽 3시에 안 깬 날이 일주일에 4일이요."


"많이 늘었네예."


"아직 3일은 깨요."


"그라모 3일만 남은 깁니더."


유진이 웃었다.


박나리가 빈 의자에 앉았다. 목도리를 풀었다. 털실이 귀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최기태가 다음 판을 들고 물었다.


"원장님 오늘은 원장님 차례인데요. 지난달에 빼드렸으니까요."


가게가 조용해졌다. 난로만 웅웅거렸다.


카운터 아래 칸에 그 판이 있었다. 지난달에 끝까지 안 들은 판이었다.


김원효가 찐빵 봉투를 내려놓았다.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오늘은 다른 거 틀겠습니더."


"뭘요?"


김원효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판이 아니었다. 폰이었다.


"사장님 이거 스피커에 연결되지예."


"되긴 하는데요. 감상회는 판인데."


"오늘만예."


최기태가 선을 연결했다. 김원효가 폰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


엔진 소리였다.


낮게 울다가 위로 올라가는 소리였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소리. 커브에서 브레이크 밟는 소리. 그리고 사람 목소리가 섞였다.


와.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와.


쉰 남자 목소리였다. 그런데 젊게 들렸다.


가게 안 사람들이 다 조용히 들었다. 이진수가 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소리가 2분쯤 이어졌다. 엔진이 다시 낮아졌다. 비상등 소리가 났다. 똑딱똑딱.


그리고 목소리가 났다.


맥 짚어라.


녹음이 끝났다.


박나리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그거 언제 녹음했어요?"


"출발할 때 켜놨다."


"왜요?"


김원효가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르신 아드님 드릴라꼬."


가게 안이 조용했다.


"6년 동안 아버지 목소리가 그렇게 젊은 거 못 들었을 끼라."


김원효가 말했다.


"오늘 제 차례는 이걸로 하겠습니더. 판은 다음에예."


최기태가 선을 뽑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다음 달엔 그 판 트세요."


"……예."


"끝까지요."


김원효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찐빵 봉투를 다시 집었다. 하나씩 돌렸다. 박나리 손에 하나가 왔다. 뜨거웠다.


박나리가 그 찐빵을 손바닥에서 굴리면서 조수석에서 들은 목소리를 생각했다. 단어를 하나씩 고르던 소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던 소리였다.


그게 자기한테 한 말인지 카센터 어르신한테 한 말인지 박나리는 몰랐다.


가게를 나서면서 박나리가 물었다. 계단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내려갔다.


"선생님."


"응."


"아까 차에서 하신 얘기요. 그거 저한테 한 말이에요?"


김원효가 계단 한 칸 아래에서 멈췄다.


"반은."


"나머지 반은요?"


"어르신한테."


박나리가 목도리를 다시 감았다.


"그럼 저는 아직 반만 들은 거네요."


"반만 들은 기 아이라."


김원효가 말했다.


"아직 반만 한 기라."


김원효가 계단을 내려갔다. 무거운 발소리가 한 칸씩 내려갔다.


박나리가 그 소리를 세었다.


다 내려가는 데 몇 칸인지 세었다.


나머지 반이 몇 칸쯤 남았는지는 세지 않았다. 계단은 도망 안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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