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한여름의 덥고 습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계절이었다.
예정된 교육 시각까지는 두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근처 눈에 보이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은은한 커피 향이 밀려왔다. 얼음이 쨍그랑거리는 아이스 티 한 잔을 앞에 두고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으니, 비로소 세차게 달리던 하루의 태엽이 조금씩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바쁘다. 퇴직을 하고 나면 매일이 여유롭고 한가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온라인 게임에 다닐 때보다 하루가 훨씬 조급하게 흘러간다. 글을 쓰고, 원고를 다듬으며 새로운 공부를 이어가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미뤄 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창밖에 노을이 내린다.
원래 나는 하루를 시간표처럼 촘촘하게 쪼개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그날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삶에 더 익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할 일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날이 늘어났다. 바쁨은 삶의 활력이기도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바쁨은 피로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똑같은 무게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오늘 해결해야 할 긴급한 일이 있는가 하면, 조금 천천히 해도 되는 일도 있다. 삶에서 진정 필요한 능력은 눈앞의 모든 일을 한꺼번에 움켜쥐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손에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미뤄둘지 가려내는 안목이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일을 정돈하듯, 오늘 반드시 마침표를 찍을 일과 잠시 가볍게 비워둘 일을 하나씩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흩어져 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며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조용한 질서가 차올랐다.
돌아보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시간을 빽빽하게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남은 시간을 '정리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날 카페에서 보낸 두 시간은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간 시간이 아니라, 바쁜 삶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삶의 우선 순위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