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천국 보화: 더 큰 가치에 전부를 투자하라」
예수님의 비유는 짧지만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은 밭에서 우연히 보화를 발견한다.
또 한 사람은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가장 귀한 진주 하나를 발견한다.
두 사람의 과정은 다르다.
한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보화를 만났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찾고 또 찾다가 진주를 발견했다.
그러나 결론은 같다.
둘 다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았다.
왜 그랬을까.
억지로 희생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이 너무 귀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장을 읽으며 구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꾸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부터 생각한다.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얼마나 내려놓아야 하는가.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 질문보다 먼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의 가치를 발견했는가.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 밭은 그냥 밭이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진주는 그냥 반짝이는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전에는 중요했던 것들이 갑자기 작아진다.
이전에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던 것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왜냐하면 더 큰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힘 아닐까.
복음은 나에게 무조건 모든 것을 버리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한 분인지 보게 한다.
그리고 정말 그분의 가치를 알게 되면, 포기는 억지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가 된다.
나는 여기서 내 신앙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내 삶의 여러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로 두고 있는가.
가족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고,
일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고,
사람들의 인정도 중요하고,
나의 계획과 자존심과 안정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옆에 예수님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내 삶의 한 항목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내 삶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내 인생에 종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가치 체계가 다시 배열되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잃어도 되는지,
무엇만은 놓칠 수 없는지를 다시 정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게 된 뒤 이전에 자신이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한다.
이 말은 세상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더럽고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핵심은 비교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과 비교했을 때,
이전에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고백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나 역시 세상에서 붙들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안정되고 싶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
가족이 잘되기를 바란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싶다.
건강하고 싶다.
이런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내 마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다.
그 순간부터 예수님은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주님,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
“주님, 이것을 지켜 주세요.”
“주님, 이것만은 잃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질문이 뒤집힌다.
나는 주님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지켜줄 주님을 원하는 것인가.
밭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진주 상인은 계산했다.
무엇이 더 큰 가치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과 발견한 보화 가운데 무엇이 더 귀한가.
답은 분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쁨으로 팔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얼굴이 슬프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횡재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이 참 중요하다.
신앙을 희생과 포기의 언어로만 말하면 복음은 무거워진다.
“이것도 버려야 한다.”
“저것도 내려놓아야 한다.”
“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덜 귀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손에 쥔 낡은 장난감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부모가 더 좋은 선물을 주려고 해도 아이는 자기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본다.
놓으면 잃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을 본 순간 손이 열린다.
억지로 손가락을 펴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이미 더 좋은 것을 향했기 때문이다.
신앙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그리스도의 가치를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이 포기하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 같다.
“주님, 주님의 가치를 더 깊이 보게 하소서.”
그분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알게 되면,
내 손은 조금씩 열린다.
내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고,
내 계획도 내려놓을 수 있고,
내가 꼭 붙들고 있던 것들도 상대화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이 모든 신자가 재산을 문자 그대로 다 팔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말하는 것은 더 깊은 문제다.
내 마음의 최종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내 돈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시간도 내 것,
내 인생도 내 것,
내 재능도 내 것,
내 미래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주재권의 문제는 결국 소유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입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내 삶의 실제 영역에서
“이 부분만큼은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라고 붙들고 있다면,
나는 여전히 그 부분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부인은 단순히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자기부인은 내가 내 삶의 최종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도 고통 자체를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손해와 불편과 포기가 필요할 때,
그분보다 다른 것을 더 위에 두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중요한 균형이 있다.
내가 많이 포기해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위해 값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선물이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셨다.
내가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셨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포기는 거래가 아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치의 재정렬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또 다른 공로가 된다.
“나는 이것을 버렸으니 좋은 신자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많이 희생했다.”
그 순간 포기조차 자기의가 된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한다.
“내가 무엇을 드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받은 것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지위도 잃고,
안전도 잃고,
편안한 삶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손해를 본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잃는 것만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말만 들어도 불안해하고,
주님보다 내 계획을 더 믿고,
내 안전을 더 붙들고,
내 소유를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믿음의 문제는 가치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가.
내 마음은 거짓말을 잘하지만,
내 시간과 돈과 관심과 선택은 비교적 솔직하다.
내가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지,
무엇을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지,
무엇이 흔들릴 때 가장 불안한지,
무엇을 얻기 위해 가장 열심히 움직이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지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래서 이번 장은 내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은 정말 내게 보화인가.
말로만 가장 귀한 분인가.
아니면 실제 선택에서도 가장 귀한 분인가.
그리고 나는 다시 깨닫는다.
좋은 신앙은 억지로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이 아니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바뀌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보게 되면,
세상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는다.
돈은 돈의 자리로 내려간다.
명예도 명예의 자리로 내려간다.
건강도,
가족도,
성공도,
내 계획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나는 그런 신앙을 원한다.
억지로 포기하며 이를 악무는 신앙이 아니라,
더 귀한 것을 보았기에 기쁨으로 손을 펴는 신앙.
주님을 섬기는 것이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는 신앙.
세상의 것을 조금 잃어도
내가 더 큰 보화를 얻었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가 무엇을 버렸는지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것들을 미워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제자리에 둘 수 있게 하소서.
돈과 성공과 건강과 가족과 인정이
제 마음의 왕좌에 앉지 않게 하소서.
제가 제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쁨으로 인정하게 하소서.
그리고 언젠가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억울함보다 기쁨이 먼저 나오게 하소서.
왜냐하면 제가 얻은 보화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끊임없이 묻게 하소서.
나는 무엇을 포기했는가가 아니라,
나는 정말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분으로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내 삶의 가치가 다시 정렬되게 하소서.
가장 귀한 보화를 이미 발견한 사람답게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