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은 우리의 바카라임이지만,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12장 「알곡과 가라지: 세상 속 교회를 위한 교훈」

by신아르케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의 이야기는 처음 들으면 매우 단순해 보인다.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렸다.

시간이 지나자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

종들은 주인에게 묻는다.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

그러나 주인은 말한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니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두라.”

이 비유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교회 안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다.

이 한 문장이 비유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이 점을 놓치면 비유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진행될수록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을 구약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인정하기보다 자신들의 권위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존재로 보았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들의 적대도 강해졌다.

심지어 예수님의 능력을 사탄의 힘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 무렵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비유가 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비유는 단순히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교육 방식만은 아니었다.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고, 완고하게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의미가 가려지는 기능도 있었다.

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떤 사람은 더 깊이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말씀을 듣는 귀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밀과 가라지는 한동안 매우 비슷하게 자란다.

처음부터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에게 가라지를 성급하게 뽑지 말라고 한다.

잘못하면 밀까지 함께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한다.

저 사람은 믿음이 없다.

저 사람은 구원받았을 것이다.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몇 가지 행동을 보고 한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우리는 열매를 통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권한까지 가진 것은 아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분별은 우리의 바카라임이지만, 최종 심판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명백한 거짓 가르침과 죄를 그냥 방치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의 영원한 운명까지 우리가 확정해서는 안 된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한다.

마지막 추수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천사들이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심판하신다.

이것은 중요한 균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했으니 교회 안의 모든 죄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밭은 세상이다.

교회에는 교회를 위한 질서가 있다.

명백한 거짓 가르침이 있다면 분별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죄를 고집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성경적인 권면과 권징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동을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는 것이 성경적 사랑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목적 역시 단순한 배척이어서는 안 된다.

권징의 목적에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돕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교회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해야 하니까 다 괜찮다.”

“누구도 판단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진리와 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사람의 최종 운명까지 판결하려는 것이다.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다고,

신앙의 속도가 느리다고,

현재 모습이 부족하다고,

곧바로 가라지라고 선언해 버리는 것이다.

둘 다 위험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별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겸손도 요구한다.

나는 여기서 세상과 교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일하고,

같은 도로를 운전하고,

같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같은 학교와 지역슬롯에서 살아간다.

알곡과 가라지가 같은 밭에서 함께 자라는 것처럼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세상을 힘으로 기독교화하는 것인가.

모든 악을 정치적 권력이나 강제력으로 제거하는 것인가.

예수님의 비유는 오히려 신중한 태도를 요구한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억지로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거룩하게 살아가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수도원처럼 완전히 격리되어 살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서도 안 된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교회의 부르심이다.

나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는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질문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왜 악한 사람이 잘되는가.

왜 거짓이 힘을 얻는가.

왜 교회가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 못하는가.

왜 믿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많고, 왜 악이 계속 존재하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말씀하셨다.

추수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자란다.

지금은 최종 심판의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구별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조급하게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역할을 하면 된다.

복음을 전하고,

정직하게 살고,

진리를 사랑하고,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으며,

내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것.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자유를 준다.

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모든 악을 제거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믿음을 판별할 수도 없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일까지 하나님께 떠넘겨서도 안 된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진리를 지켜야 한다.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다시 11장의 씨 뿌리는 비유를 떠올린다.

좋은 땅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12장에서도 결국 알곡과 가라지는 열매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겉모습은 한동안 비슷할 수 있다.

교회에 다닐 수도 있다.

신앙적인 말을 사용할 수도 있다.

사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삶의 방향과 열매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열매만 들여다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먼저 나 자신을 물어야 한다.

나는 알곡처럼 보이기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실제로 생명과 열매를 가진 사람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데는 빠르고 내 죄를 보는 데는 느린 사람이 아닌가.

나는 교회를 정화해야 한다는 열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사랑을 핑계로 진리를 흐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 비유는 내게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분별하라.

그리고

겸손하라.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되 내가 최종 심판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되 죄인을 하나님보다 먼저 포기하지 말라.

교회를 보호하되 회복과 회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지 말라.

세상 속에서 악을 보며 낙심하지 말되 악과 타협하지도 말라.

결국 마지막 추수는 주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때 알곡과 가라지는 완전히 구별될 것이다.

그날에는 인간의 판단 착오가 없다.

사람의 외모나 평판이나 직분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판단하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심판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고 싶다.

주님,

제가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몇 가지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동시에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신앙인이 되지도 않게 하소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묵인하지 않게 하시고,

진리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게 하소서.

교회 안에서는 거룩함과 질서를 지키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는 복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가 세상을 강제로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제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악을 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를 신뢰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도 기억하게 하소서.

분별은 나의 바카라임이지만, 최종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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