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창문: 도서관의 그 남자, 어느 시대 사람일까

아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by마봉

《도서관 창문》의 삽화

《도서관 창문》은 지금까지 수많은 출판사에서 바카라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그 바카라들에는 삽화가 있었을까? 대부분 삽화는 없고 그림이 있다 해도 표지에만 있었다. 그림을 곁들인 표지조차 창 밖을 바라보며 바카라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나 창문이 있는 건물의 모습, 혹은 에딘버러 같은 도시의 거리 모습 등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이미지는 정말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마거릿 올리펀트가 살아 있었다면 인스타 찾아 DM이라도 보내서 죄송한데 언니 작품 한국어로 번역 연재 중인데 이미지 자문 좀 구하겠다고 물어라도 보련만, 죽은 지 129년이나 되었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삽화는 왜 없었을까? 1865년에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삽화로도 유명한 바카라이 아닌 이상 그 당시의 성인 독자용 바카라들은 삽화가 없었다. 그리고 《도서관 창문》처럼 분위기와 상상이 중요하고 '도서관의 남자가 진짜인가 환상인가?' 자체가 내용인 경우는 더더욱 삽화가 없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 그러면 나도 그냥 이미지 넣지 말고 올려버릴걸.


아니다. 회차 단위로 1-3개의 이미지를 넣어서 올라오는 연재물들의 천국이자 3줄 요약 없으면 1초 만에 뒤로 가기를 누르는 독자들이 난무하는 2026년에는 아무리 엄숙한 19세기 후반의 작품일지라도 비주얼로 뭔가를 좀 남겨 주는 것이 유리하다(더구나 인기 없는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그 작품을 올리고 있다면 더더욱).


도서관의 그 남자, 대체 어떻게 생겼나

그렇다면 도서관의 그 남자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까? 다. 행. 히. 그 남자는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보니 아주 자세한 묘사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직접 가져다 놓았거나, 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밤중에 누군가 그를 위해 가져다 놓았을 그 의자에 앉아 에스크리투아르 바카라상을 마주하고 글을 쓰고 있었다. 빛은 그의 왼쪽에서 흘러 들어와 어깨와 머리 옆부분을 비추고 있었지만, 고개를 너무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바카라상에 앉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창문을 마주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가끔 그가 손이나 발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일 때면, 나는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온갖 애를 써보아도 그의 얼굴을 확실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이 나쁜 지니 양처럼 눈살을 찌푸려 보기도 하고, 빛을 집중시키려 양손으로 얼굴 옆을 가려보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동안 얼굴의 형상이 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빛이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카락은 밝은 색 같았다. 아주 어두운 색이었다면 머리 주변에 짙은 윤곽선이 생겼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뒤쪽 벽에 걸린 낡은 금박 액자와 겹쳐 보일 때의 모습으로 보아 금발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턱수염은 없다고 거의 확신한다. 아니, 얼굴 윤곽이 꽤 뚜렷하게 보였으니 수염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좋아, 금발에 수염만 없으면 되겟꾼!


선명하게 보이면 안 되는 그 남자

그런데 지금 주인공은 에스크리투아르 바카라상이며 벽에 걸린 그림과 액자까지 다 보이고 남자의 얼굴 윤곽까지 뚜렷하게 보이는데 얼굴만 마치 카메라 초점 흐려진 것처럼 잘 안 보이는 상황이다. 아이고 차라리 선명하게 보인다고 묘사해 주지ㅠㅠ 이 AI 저 AI 다 돌려 보았으나 다 망하고 차라리 포토샵으로 얼굴만 블러처리하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그리고 살짝 사심이라면 나도 그 남자 얼굴이 보고 싶었다).


마치 다가가도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꿈속의 장소처럼 다른 건 다 보이는데 이상하게 얼굴만 잘 안 보이는 그 남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원작에서는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창문 쪽(Viewer 즉 소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얼굴 1/2가 넘게 보이는 순간 AI는 바로 "앗! 얼굴이다! 제가 선명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자 이쪽을 보세요 김~치~"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에 내가 직접 블러처리를 한 것들도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차피 AI 이미지 생성이란 어느 선에서 이 새끼들과 합의를 보느냐의 문제인 것. 이 정도 선에서 챗순, 젬순, 미순, 포순과 노사협의보다 더 어려운 합의를 보았다. 젠장 너네는 그냥 우주선에서 스파게티 먹는 고양이나 처 그려라 이놈의 AI 들아. 데이터센터 우주에 세워지면 너넨 주거써(타격없음).

저기요 고개 조금만 더 돌려주세요... 네 이쪽을 봐주세요... 좀만 더... 아 역광이라 잘 안 보이네 젠장쓰


도서관 남자, 어느 시대 사람인가?

사실, 이 남자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남자의 옷차림.


이 남자가 귀신(?)이라는 사실을 독자가 금방 눈치채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나노 단위로 묘사하기 좋아하는 올리펀트도 이 남자의 옷차림을 묘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말까지 다 읽었으니 알지 않는가? 이 사람은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남자가 대강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계산을 해보도록 하자. 일단 올리펀트가 이 소설의 배경이 어느 시대라는 언급이 없었으므로 동시대(1895년쯤)라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가정 1: 칸비 대부인 70세

배경이 1895년쯤이라면

→ 칸비 대부인 출생: 1825년 전후


가정 2: 남자가 칸비 대부인 어머니 세대 사람

즉 칸비 대부인의 어머니, 이모, 고모와 관련된 사람

어머니가 25세에 딸을 낳았다고 치면

→ 어머니 출생: 1800년 전후

그 남자도 비슷한 연배라면

→ 1790~1805년생


가정 3: 남자가 칸비 대부인 할머니 세대 사람

원문 분위기로는 사실 이쪽도 가능하다. "아주 오래전 집안의 비극"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차라리 할머니 세대가 더 어울리기도 한다.

그러면

→ 할머니 출생: 1770년 전후

→ 남자 출생도 대충: 1765~1785년

→ 남자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글 쓰던 것이 20세~35세 사이라고 가정하면 해당 시기는 1790~1815년으로 추정.


결론: 남자는 조지 3세 시대(Georgian Era)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

프랑스혁명 전후

나폴레옹 시대

제인 오스틴(1775년생)이 살던 시대

즉 대충 미스터 다아시랑 복장 비슷하게 가면 된다(아 다행이다 그나마 좀 아는 시대(?)라서...).

도서관의 남자가 부두에 나타나 손을 흔들어준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해서 아래와 같이 그려졌다. 물론 50%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남자를 보는데, 그 장면을 그리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 대형 증기선의 갑판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는 OTS(Over the shoulder) 샷으로 깨알 같은 군중 속에 금발에 리젠시 시대 옷차림 한 남자 하나를 심어놓자니 AI들이 작작 좀 하라고 지랄했다. 결국 배에서 바라보는 군중이 아닌 부두에 내린 다음 남자가 나타나 손을 흔드는 장면으로 극적 합의가 타결되었다.

부두에 내린 주인공과 아이들 앞에 나타나 손을 흔들어 주는 도서관의 남자
도서관의 남자를 그리며 고통받는 마봉


죽은 후에도 소명을 다하기 위해 계속 돌아오는 영혼

나는 도서관의 남자를 군중들 사이에 있어도 '이 사람만 다른 시대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나길 바라면서 그렸다. 모자를 쓰지 않고, 넥타이 대신 크라바트를 착용하고, 테일코트를 입은 남자. 그리고 주인공에게 마치 기운 내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고 사라져 버린 도서관의 남자.


나 역시 이 글을 번역하면서 주인공과 함께 "대체 그게 누군데!" 하고 외치며 함께해 왔다. 그러니 나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 나에게 만약 이 도서관의 남자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 문장인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오랫동안 다시 돌아오는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알겠는가?
But who can tell what happens in a heart that often, often, and so long as that, comes back to do its errand?
***
errand: 심부름, 사명

학자였던 그는 죽임을 당한 후에도 그는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시간 계산은 내 추론이다) 계속 도서관 창문 뒤의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왔다. 주인공의 집안 여자들은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그 남자를 목격해 왔고, 그는 똑같은 모습으로 그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주인공의 집안 여자들이 그를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단 한 가지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단 두 번이다. 주인공이 뭐라고 말 좀 해달라고 외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었을 때, 그리고 부두에서 군중 속에 섞여 있다가 주인공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을 때.

"제게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외롭고 저 또한 그래요. 저는 그저… 당신의 마음을 느낄 뿐이에요. 제발 말 좀 해주세요!"
"say something to me! I don't know who you are, or what you are: but you're lonely and so am I; and I only—feel for you. Say something to me!"

부두에서 손을 흔들어 준 후 그가 또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있을지, 혹은 이제 소명을 완수했다고 여기며 성불(?)하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계속해서 그 공간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주인공의 가문의 다른 여자가 또 창문을 바라보다가 그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학문에 끝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그 공간 안에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도서관의 그 남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작가 올리펀트 본인과 더불어 도서관의 남자에게 경외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인 것 같다.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도서관 창문’ 번역/삽화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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