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희 왔어요."
어휴.. 도아 들어오는 거 보니까
젊었을 때 네 엄마가 들어오는 줄 알고
그냥 깜짝 놀랐네...
녀석이 아빠를 설레게 하는 재주가 있어.
어제 늦게 들어가더니 어떻게 또 빨리 왔어.
일도 고될 텐데 매일 오는 거 힘들지 않니?
"아빠한테 오는건데요 뭐..."
"나 아빠 옛날이야기 듣는 거 완전 중독됐잖아.
신랑도 궁금해해.
직접 와서 들으면 안 되냐고 매번 물어본다니까?"
그래. 도아야 아빠 물 좀 줄래?
저번엔 어디까지 했더라...
그리고 도아는 말 좀 천천히...
지 고모 닮아서 말도 많은데 속도가 너무 빨라.
"잠깐! 나 온 다음에 시작해. 먼저 시작하면 안 돼~
나 금방 갔다 올 거니까 기다려!"
쟤는 참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정신이 없니...
동생 오면 시작할까?
"도아는 제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주면 돼요."
물 떠달랬더니 우물 파러 갔나...
물 길어 오다 길을 잃었나...
네가 한번 가봐야 되는 거 아니니?
"빨리요. 궁금해서 잠도 못 잤어요.
엄마가 도아 가지신 것까지 하셨어요.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그래그래 도아.
그러니까 네 동생은 그렇게 외롭게 우리에게 찾아왔지...
"뭐? 니네들 정신이 있는 거니?"
임신 사실을 알리러 외할머니댁에 간 날.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던 그 날.
너를 임신한 채로 임신 사실을 알리러 갔던 그 날처럼
우리는 무릎을 꿇고 있었어.
"지금 하나도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한가득인데.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입을 꾹 다문 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 엄마.
그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빠.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상황이 안 좋을 걸 아는지
그렇게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던 너...
"야 이년아 지워!
애 키우는 게 쉬운 줄 알아?
키워보면서 아직도 몰라?"
찢어질 듯한 비명과 같은 목소리로 화를 내는 이모할머니였지.
"죄송합니다..."
"죄송해야지!
그리고 조심했어야지!
니들이 어린애야?"
노려보며 죽일 듯이 소리지르는 이모할머니의 눈을 피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내뱉는 외할머니의 한숨 소리를
억지로 외면하면서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는데
"애! 애 봐? 입덧하는 거야 지금? 아 몇 개월인데!"
갑자기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엄마.
울면서 변기에 쏟아내던 건 비단 음식물 만이 아니었어...
"이모... 엄마... 그만하자...
미진이 죽겠네... 둘째도 가졌는데..."
활짝 열린 화장실 문으로 보인 건.
변기를 붙잡고 토를 하는 엄마와.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한마디 건네는 이모였지.
"으아앙! 압하 안하~ 음마! 안하!"
설상가상으로 너까지 울음이 터져버리고.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돼버렸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걸까?
"어구 그래... 우리 도윤이 놀랐어?"
"어머어머 도윤이 밥 먹였나?
배고픈 거 아니야?
우리 도윤이 과일 먹을까? 까까?"
네 울음소리에 외할머니가 너를 안고 일어나시고
이모할머니가 주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황은 일단락 돼버렸어.
"담배... 피우러 갈래?"
"미진이는..."
"미진이 방에 감금시켰어. 문 잠그고 나오지 말랬지."
"아... 그럼 도윤이는..."
"저기요? 도윤이 볼 사람 여기 넘치거든요?
... 갈 거야 말 거야? 담배 피우러..."
그렇게 도망치다시피 나온 아파트 근처 공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켜는데
/틱.. 틱.. 틱.../
그날따라 몇 번을 해도 불이 잘 붙지 않는 거야.
"아~ 줘봐!"
그런 아빠 모습을 계속 보고 있다 이내 답답했는지
아빠 손에 든 라이터를 뺏어 불을 붙여주는 이모였어.
'스으읍... 후...... 하아...'
금요일 11시... 늦은 저녁 시간.
아파트에 불도 드문드문 켜져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는 그 공터에는
아빠의 담배 빨아들이는 소리와 한숨 내뱉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어.
"도리 대단한데?"
"하아..."
"이제 두 아이 아빠네?"
"하아..."
"... 이게 뒤질라고. 너 자꾸 한숨만 쉴래?
내 질문이 하찮냐?"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이모였지만.
아빠는 한숨 섞인 담배 연기만 뱉어내고 있었어.
"힘내. 우리 집안 여자들이 좀 그런 거 알잖아."
"하아..."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야. 소중하니까 걱정하는 거고... 근데 뭐... 너도 걱정되는 건 사실이잖아?"
"흐아아아..."
담배를 필터 위까지 태운 아빠는 담배를 집어 던져 끄면서
쪼그려 앉은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어.
"..."
한동안 서로 말이 없던 우리.
잠시 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빠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담배를 내밀던 이모.
"담배 하나 더 피울래?"
그렇게 받아든 두 번째 담배.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었지.
"하아..."
"뭐가 제일 걱정되는데?"
다시 한숨을 길게 내뱉는 아빠를 보며 이모가 물었어.
"... 이모님하고 어머니 말씀이 틀린 게 없어요.
전 돈도 없고, 당장 산부인과 갈 돈도 없고요."
"산부인과? 그래도 나라에서 조금 지원해주지 않나?"
"하아..."
"도리 웃긴다~ 결국 돈이 걱정이라는 거네?"
"돈이 걱정이죠..."
"애는 잘 키울 자신 있나 봐?"
"돈만 있다면... 넉넉하게 있다면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담배 곽 종이를 뜯어서 뭔가 꼬깃꼬깃 접고 있던 이모.
손은 계속 움직이면서 고개는 아빠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맞아. 돈만 있으면 다 키워.
학원 보내고, 운동 보내고 요즘은 뭐 도우미도 있다더라.
돈만 많으면 내가 안 키워도 알아서 잘 크는 거지 뭐."
"그렇죠. 근데 전 없어요, 돈이..."
"맞아, 너 너무 없어...
그래도 키우고 있잖아, 도윤이."
"..."
"다 됐다."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담배 곽에 붙은 종이를 잘라 종이학을 만든 이모.
두리번거리면서 어디다 놓을지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결국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더라고.
"부모가 왜 부모야? 어려울게 있나?
안 버리고, 포기 안 하고,
최선을 다해서 키우면 그게 부모지?"
"..."
"종이학은 내가 도저히 못 키우겠다...
나름 잠깐 열심히 만든 건데...
내가 버린 순간 의미가 없어졌네? 다시 주워올까?
그러면 버렸던 사실이 없어지려나?"
"위로하시는 거예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짓던 이모.
"뭔 소리야. 버리지 말까 물어보는 건데.
난 어려운 말, 돌려서 말하는 거 그런 거 못 해."
"지금 하시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요..."
아빠가 뱉은 말에 뭐가 그렇게 웃긴지
그 조용한 공터에 메아리칠 정도로 크게 웃던 이모.
"헤헤 미진이도, 너도 지금 잘 하고 있잖아?
도윤이도 잘 키우고 있잖아?
계속해봐~ 지금은 다들 걱정에 저러잖아?
나중에 거봐, 우리가 해냈잖아! 한마디만 해줘."
하지만 말야.
그때 아빠는
이모의 위로섞인 말에 담긴 진심 조차
들을 준비도, 여유도 없었던것같아.
"후우~"
입밖에서 흩어지는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말이지...
"왜 이렇게 늦게 와? 언니랑 나갔다 왔어?"
"미안..."
"아저씨 안 미안해도 돼... 당신이 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아빠를 조용히 꼭 껴안은 채 엄
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
잠시 후 엄마는 애써 웃는 얼굴로
그리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을 건넸어.
"헤헤... 미안해... 말고 축하해~ 라고 해줘."
"..."
살짝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는 불이 꺼진 방안에
어둠도 가리지 못했던것 같아.
"정신없어서 말도 못 했네~
둘째 가진 거 축하해!
돌아가면 우리 가족끼리 파티할까?"
"..."
그렇게 엄마는 그날 밤 돌아누운 채
한동안 아빠 쪽을 쳐다보지 못했어.
그날 밤은 왜 그리 길던지.
창문 밖이 환해지는 걸 보고도
한참 후에야 잠이 들었던 것 같아.
"얘! 미진아, 도윤이 밥 안 주니?
도리도 일어나라 밥 안 먹을 거니?"
할머니의 목소리에 잠이 깬 우리.
정신은 들었건만 일어나기가 쉽지는 않았어.
"... 아침 안 먹는다고 하면 안 되겠지?"
"엄마가 더 화낼걸? 내가 먼저 나갈게."
방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 서있던 할머니를 본 순간
아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버렸지.
"아이고 이년아. 이런 게 무슨 애 둘이나 키우겠다고
어휴 진짜... 빨리 가서 도윤이 기저귀나 갈아!"
엄마를 보자마자 등짝을 때리며 잔소리를 하시던 할머니.
엄마가 후다닥 나가자. 그 눈길은 아빠를 향해버렸지.
"일... 일어났습니다."
"얘! 밥 먹어. 애 키우는 것도 아프지나 말아야지.
너네 둘 보면.. 아주그냥 니들 때문에 내가 병나지... 병나!."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향한 거실.
쇼파 앞에서 박스를 뜯고 있는 이모할머니가 보였어.
"언니 이거 봐, 이 옷 어때? 도윤이한테 너무 작나?
아 저번에 주문한 게 이제야 왔어!"
언제 샀는지 택배 상자에서 아기옷을 꺼내 들으며
중얼거리는 이모할머니였어.
"미진아! 아들이래? 딸이래? 아직 안 나왔나?
딸이면 물려주지도 못하잖아? 도윤아~ 동생 남자야? 여자야?"
"마?"
"여동생이야?"
"응!"
"얘 좀 봐? 지 동생 여동생이라네?
에고.. 또 사야겠네.. 언니! 우리 뭐 먹어?"
마치 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박스에서 꺼낸 옷을
너에게 이리저리 대보며 아침 메뉴를 묻는 이모할머니였지.
/삐비비빅삑
따르릉
철컥/
"뭐야? 왜 다들 모여있는데 나만 안 불렀어?
도 씨 아저씨! 나 서운해?"
그때 문 밖에서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는가 싶더니
큰삼촌이 들어오시는 거야.
전날 일 끝나고 출발하는 바람에 늦게 도착해서
삼촌에겐 연락을 못 했던 게 서운하신 모양이더라고.
"어제 늦게 와서... 주무시는데 방해될까 봐..."
"아니 이 사람아. 잠은 죽으면 평생 잘 걸.
잠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하지?"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돌리며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시던 삼촌의 눈이
엄마에게 고정된 채 물었어.
"미진이 눈이 왜 개구리가 됐어? 너 울었냐?"
삼촌의 물음에 조용히 삼촌에게 다가가시던 외할머니.
"오빠, 얘네 둘째 생겼대."
"뭐어?"
깜짝 놀란 듯 눈이 커지시던 삼촌.
그 상태로 아빠를 향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다가오셨어.
"손!"
"... 네?"
"아 이 사람아, 손!"
한 손을 내밀며 다짜고짜 손을 달라던 삼촌.
아빠가 손을 내밀자 삼촌은 악수를 하며 껄껄 웃으셨지.
"경사네! 아니 이 사람아, 그런 게 있으면
어제 도착하자마자 깨우러 왔어야지.
야, 니들 밥 먹었냐? 소고기 먹으러 갈까?"
삼촌의 말에 한숨을 팍 내쉬던 외할머니.
"아휴... 속 뒤집어놓는 데는 진짜..."
"뭐가 또 속이 뒤집어져? 도 씨 아저씨? 축하해?
미진아 축하한다!"
"가... 감사... 감사합니..."
큰 웃음과 함께 삼촌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우리가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그렇게도 바라던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였음에도
아빠는 감사하다는 말조차 끝까지 하지 못했어.
"야! 얘 왜 우냐? 그렇게 좋나?
아, 아침 먹었어 안 먹었어? 니X 점심시간 다 됐네...
점심들 안먹었지? 나가자."
그렇게 네 동생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어찌 보면 평범하지 않게 우리 곁으로 찾아왔지...
"누가 찾아와? 아빠 누가 또 와?"
"하아... 넌 물 뜨러 어디까지 갔다 와?"
"아니~ 뭐? 왜? 1년밖에 차이 안 나는 게?
너 자꾸 그러면 고모한테 이른다?"
그만들 싸우고... 아빠 물부터 줄래?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목이 말린 나뭇가지처럼
쩍쩍 갈라지는 것 같네.
"아, 맞다 물. 기다려봐,
내가 다른 거 신경 쓴다고 물을 뜨고 그대로 놓고 왔네."
"저... 저... 아빠 얘 봐요, 얘가 저런다니까요?"
"아직 이야기 시작하지 말고 있어. 나 금방 갔다 올게.
아빠! 저번에 엄마가 나 임신한 이야기 그다음부터 해야 되는 거 알지?"
"그 얘기 방금 다 해주셨는데?"
"... 나 없이... 내 이야기가 벌써 끝났어?"
도아야 그러는 거 아니야...
일어나...
여기서 이러는 거 아니야...
"나 안 가... 나 안 해... 아! 나 안 해!"
도아야...
다 큰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참...
그래도...
고맙다, 잘 자라줘서...
그때는 아빠도 참 막막하고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면서 고개를 저었는데.
이제는 아빠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
거보세요. 우리가 해냈잖아요.
라고 말이야.
이제... 다들 만나면 꼭 얘기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