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DNA - 최종 편

by목인 mokin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잃지 않았을까?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왕조가 바뀌었고, 전쟁과 침략은 반복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36년의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분단과 한국전쟁을 맞았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오늘 우리는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대한민국을 안다.
한국의 음악을 듣고,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한국의 음식을 즐긴다. K팝을 따라 부르고, 한국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BTS를 비롯한 K팝과 K컬처는 더 이상 한국 안에서만 소비되는 문화가 아니다.


나는 궁금해졌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한국인에게만 있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민족에게나 공동체가 있고, 정이 있고, 고통과 기쁨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결합되고 축적되어 왔는가이다.


그래서 나는 논리적인 이론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에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노래 한 곡.
말 한마디.
사람들의 행동 하나.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삶의 방식.


그 속에 어쩌면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과 흥, 그리고 끼


한국인의 정서를 이야기하면서 아리랑을 빼놓을 수 있을까?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별과 기다림, 가난과 고통, 사랑과 원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런데 아리랑은 슬픔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한을 품고 있으면서도 노래한다.
고통을 혼자 삼키지 않고 함께 부른다.
슬픔을 그대로 슬픔으로 남겨두지 않고 노래로 바꾼다.
그리고 그 노래에는 어느 순간 흥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을 품되 한에 머물지 않는 것.
고통을 견디되 고통에 주저앉지 않는 것.
슬픔을 다시 살아갈 힘으로 바꾸는 것.


판소리도 그렇다.


삶의 고단함과 인간의 욕망, 세상의 부조리를 소리와 해학으로 풀어낸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다시 울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뒤집어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하나의 힘이 나온다.


바로 '끼'이다.


소리로 표현하고, 춤으로 표현하고, 웃음으로 표현한다.
한이 흥이 되고, 흥은 다시 끼와 창조성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것이 한국인의 문화에서 반복해서 발견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BTS의 ARIRANG 월드투어를 보면서 나는 이 오래된 노래가 시대를 건너 세계와 만나는 장면을 보았다.
BTS의 「Body to Body」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아리랑의 선율과 가사가 들어 있다.
BTS가 아리랑을 부르자 한국어를 모르는 세계의 관객들이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가사를 세계의 관객들이 한국어 그대로 함께 부르는 것이다. BTS의 멤버들조차 무대에서 관객들이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삶 속에서 태어난 노래이다.
이별과 기다림, 고통과 원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이제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 있다.


한국인의 한이 세계인의 노래가 된 것이다.

이제 아리랑은 더 이상 한에 머물지 않는다.
한을 노래로 만들고, 노래와 함께 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흥은 다시 끼와 창조성으로 이어진다.


전통의 아리랑과 오늘의 BTS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한이 흥이 되고, 흥이 음악이 되고, 음악이 세계와 만나는 것.
나는 바로 그 장면에서 한국인의 한과 흥, 그리고 끼를 본다.



‘우리’라는 말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한다.


“우리가 남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남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바꾸어버린다.
남이었던 사람을 우리 안으로 끌어들인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단순한 복수형이 아니다.
나를 관계 속에서 확인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아내를 ‘내 아내’라고만 하지 않고 ‘우리 집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한 사람조차 ‘우리’라는 말 안에 넣는다.


물론 이것 하나만으로 한국인의 특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범한 언어 속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국인의 관계의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우리’라는 관계 속에 '정'이 흐른다.


정은 계산하기 어렵다.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돕고, 오래된 인연을 쉽게 끊지 않는다. 한번 맺은 관계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이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의리라고 부른다.
‘우리’라는 말속에 정이 있고, 정이 깊어지면 의리가 된다.


의리, 행동이 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의 기질을 이야기하면서 의병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났다.


의병의 배경과 동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그것을 하나의 정신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위기 앞에서 스스로 움직였다는 것.


나는 그 모습을 ‘우리’와 연결해서 바라보고 싶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무너지는데 나만 안전할 수는 없다.
내 가족과 이웃의 삶이 흔들리는데 나 혼자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움직인다.

나는 의병에서 ‘우리’가 행동으로 나타난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 가운데 하나가 의리였다고 생각한다.


광장이라는 문화


한국인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광장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광장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광장을 바라보면 조금 특별한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함께 소리치고, 함께 웃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열광한다.
때로는 정치와 슬롯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고, 때로는 축제의 공간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둘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1일에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뜻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함께 외쳤다.
물론 3·1 운동을 오늘날의 광장문화와 하나의 계보로 연결할 수는 없다.


시대도 다르고 조건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모습을 본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이고, 함께 말하고, 뜻을 모으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광장의 모습은 2002년 월드컵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폭발했다.


붉은 악마들이 거리로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소리치고, 함께 열광했다.
나는 그것을 단순한 축구 응원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흥이 있었고, 끼가 있었고, 우리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광장으로 나와 함께한다는 힘이 있었다.


2002년의 광장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공동체적 참여와 공론의 문화,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온 문화적 토양 위에서 그 모습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광장은 때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었고, 때로 축구를 응원하는 공간이었으며, 때로는 축제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 있지 않고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그 함께함이 때로는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한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의 응원문화와 집단적 열광의 모습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응원 방법 하나가 퍼진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열광하고, 함께 소리치고, 함께 하나가 되는 문화적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은 그렇게 한국인의 또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결국, 선비라는 이름


나는 여기에서 선비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앞에서 이미 선비를 이야기했으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는 선비가 무엇인지는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다.

선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자신을 다스리며, 배움을 추구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며, 공동체에 대한 바카라임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 했던 인간의 이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비를 하나의 신분이 아니라 한국인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인간의 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싶다.


선비의 정신이 시대가 바뀌면서 그대로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뜻도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람의 모습도 달라진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바카라임을 지려는 태도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때로는 의병이 되었고,
때로는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으며,
때로는 광장으로 나온 시민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선비를 한국인의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중심에 놓을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였던 것들


이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보고 싶다.


아리랑에는 한과 흥과 끼가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는 우리와 정과 의리가 있다.
의병에는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모습이 있다.

3·1 운동과 붉은 악마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뜻을 나누고 공론을 만들며 행동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선비에는 그 모든 행동의 바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인간적 이상이 있다.


나는 이것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달랐고, 모습이 달랐을 뿐이다.
그 밑바닥에는 어쩌면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느끼고,
관계를 맺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그 관계를 지키고,
필요할 때 행동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마침내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


나는 이것이 내가 찾아온 한국인의 DNA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특성이 아니다.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한이 있고, 정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끈기가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만 특별하거나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한국인의 역사 속에서 이 여러 요소가 독특하게 결합되고 축적되어 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합된 모습이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인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나는 과거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습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리랑을 부르던 사람들의 한은 이제 새로운 음악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라는 관계의식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곳곳에 남아 있다.
정과 의리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움직인다.
광장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그리고 그 오래된 문화적 힘은 새로운 시대의 기술과 만나 K팝과 K컬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와 만나고 있다.
BTS가 아리랑의 선율을 세계의 무대에 올려놓고, 세계의 관객들이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을 보면 나는 그것을 단순한 K팝의 성공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나는 장면으로 보고 싶다.


아리랑이 한 사람의 슬픔을 모두의 노래로 만들었다면,
오늘의 K팝은 한 나라의 문화가 세계인의 경험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 연결 속에서 한국인의 끼와 창조성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문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인은 한을 품되 한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한을 노래로 만들고, 그 노래 속에서 흥을 만들어낸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우리’를 만든다.
그 우리 안에서 정을 나누고, 그 관계를 지켜야 할 때 의리가 된다.
위기의 순간에는 스스로 움직인다.
어려움 앞에서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함께 뜻을 모으고, 때로는 광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다시 노래와 문화와 새로운 창조로 바꾸어낸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선비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선비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어떤 인간을 이상적으로 생각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떤 시대에는 선비로,
위기의 순간에는 의병으로,
1919년에는 거리로 나온 사람들로,
2002년에는 붉은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세계를 향해 우리의 노래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모습은 달라졌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어쩌면 같은 힘이 흐르고 있다.


한을 흥으로 바꾸고,
관계를 우리로 만들고,
정을 의리로 지키며,
함께 뜻을 모으고,
어려움 앞에서 다시 일어나며,
마침내 우리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


나는 이것을 한국인의 DNA라고 부르고 싶다.
생물학적인 DNA가 아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만들어내고, 반복하고, 다음 세대로 전해온 문화적 기억과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DNA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 모습도 바뀐다.
선비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고,
우리라는 말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한은 새로운 노래가 되고,
흥과 끼는 새로운 문화가 되며,
광장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


나는 처음에 이런 질문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잃지 않았을까.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조금 분명해졌다.
우리는 단지 역사를 견뎌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고통을 노래로 바꾸었고,
관계를 우리로 만들었으며,
그 우리를 정과 의리로 지켰고,
필요할 때 함께 일어섰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경험을 다시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우리다워진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한국인을 하나의 이름으로 말해보고 싶다.


선비.
그리고 그 선비의 정신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한과 흥과 끼,
정과 우리와 의리,
은근과 끈기,
그리고 광장.


나는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온 한국인의 DNA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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