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변덕, 신념과 고집의 차이
생각을 바꾸면
왜 변명부터 하게 될까
“너 그거 싫다며.”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잠깐 멈췄다.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괜찮더라고.”
그 말이면 충분했는데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전에는 향이 싫었는데 몇 번 먹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입맛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가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입맛이 달라진 것뿐인데, 나는 왜 변명하듯 설명하고 있었을까.
마음이 달라졌을 뿐인데 설명이 필요했다
일관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음식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예전에는 관심 없다고 했던 일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싫다고 했던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한때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바꾸었을 때 종종 이유부터 설명하게 된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달라.”
별일 아닌 말인데도 뒤에는 묘한 부담이 따라온다. 생각을 바꿨다는 사실보다 ‘말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더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일관된 사람들이 신뢰를 받곤 한다. 약속을 지키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에 바카라임지는 태도는 분명 중요하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이 달라지는 것까지 일관성의 부족으로 받아들일 때 생긴다.
약속을 지키는 것과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것이다. 약속에는 상대와의 바카라임이 따르지만, 생각은 새로운 경험과 정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되묻게 된다.
과거의 판단에는 언제나 당시의 상황과 조건이 들어 있다. 스무 살에 내린 선택에는 스무 살까지의 경험이 있었고, 서른 살에 믿었던 것에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있었다. 그 판단이 지금의 눈으로 부족해 보인다고 해서 당시의 내가 반드시 어리석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때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몰랐고, 아직 겪지 않은 일을 알 수도 없었다.
십 년 전의 나에게는 그 뒤의 십 년이 없었다. 어제의 나에게조차 오늘 하루는 없었다.
살아가면서 경험이 달라지면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의 자신에게 현재의 상황을 적용해 평가할 때가 많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분명 저런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빼놓으면, 생각의 변화는 쉽게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판단의 근거가 달라졌다면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작용한다.
“전에는 다르게 말하지 않았어?”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자신의 현재 생각보다 과거에 했던 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금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보다 예전의 자신과 모순되지 않는지가 중요해진다.
일관성은 때로 슬롯생활에서 꽤 좋은 평판을 얻는 태도다. 말과 행동이 자주 바뀌는 사람과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바카라임을 피하기 위해 입장을 바꾸거나, 자신에게 유리할 때마다 기준을 달리하는 태도까지 ‘생각할 자유’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구분이 필요하다.
바카라임을 피하기 위해 말을 바꾸는 것과, 더 알게 된 뒤 생각을 수정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준을 움직이는 것이고, 후자는 새로운 사실이나 경험을 받아들여 기존의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일이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일관성은 좋은 태도를 넘어 하나의 압박이 된다. 한번 내린 판단을 계속 지켜야 하고, 한번 선택한 길에서 돌아서면 안 되며, 과거에 했던 말과 다른 생각을 하면 스스로를 변명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달라졌는가다.
우리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관련해 ‘인지 부조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 사이에 모순이 생길 때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줄이려 한다는 뜻이다.
이런 성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바카라임을 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판단까지 억지로 맞추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마음이 떠난 일을 계속 붙잡고 있거나, 더는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의견을 예전에 했던 말 때문에 고수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입장을 바꾸면 지는 것처럼 느끼는 순간이 그렇다. 그때 지키고 있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과거의 나에 대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관성은 ‘나는 한 번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는 기록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지금은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그래서 왜 다른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너 변했다.”
이 말은 상황에 따라 칭찬보다 비난에 가깝게 들린다. 예전과 같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더는 부럽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약하다고 여겼던 태도를 시간이 지난 뒤 용기라고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경험이 쌓이면 세상을 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부모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고, 누군가를 잃은 뒤에야 이해되는 마음도 있다. 실패하기 전에는 쉽게 말했던 것을 실패한 뒤에는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 변화는 이전의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라기보다, 판단할 때 참고할 경험이 늘어났다는 뜻일 수 있다.
물론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과거의 바카라임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내가 했던 말로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인정하고 필요한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꿀 자유와 바카라임은 함께 가야 한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자신까지 포함해 현재의 판단을 바카라임지는 일에 가깝다.
처음의 식탁으로 돌아가본다.
“너 그거 싫다며.”
다시 같은 말을 듣는다면 이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응. 예전에는 싫어했어. 그런데 지금은 좋아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입맛 하나가 달라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의 생각 역시 살아온 시간 속에서 변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를 이해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때의 생각을 평생 지키는 일이 아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면서, 지금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제의 나에게는 어제까지의 삶이 있었다. 오늘의 나에게는 거기에 하루가 더해졌다. 아주 짧은 하루일지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른 이야기를 듣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생각이 어제와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모순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달라진 이유를 살피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바카라임지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같은 생각을 오래 붙드는 것보다 더 성숙한 일관성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는 사람보다 한 번 정한 생각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더 단단해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신뢰에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다만 일관성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과 같은 뜻이 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판단에 현재의 자신을 맞추게 된다.
삶이 계속되는데 생각만 처음 정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같은 말을 했느냐보다, 무엇을 알게 되어 생각이 달라졌고 그 변화에 얼마나 바카라임질 수 있느냐일 것이다.
어제의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기를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의 마음을 의심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과거의 나를 틀렸다고 몰아세우거나 현재의 나를 변덕스럽다고 단정하기 전에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먼저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을 지나며 경험하고, 배우고, 때로는 자신이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삶이 남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은 배신의 흔적이 아니라, 그 사이를 살아온 시간의 흔적일 수 있다.
어제의 나를 존중하면서도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될 자유. 그 자유까지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일관성이라면, 한 번쯤 의심해봐도 좋겠다.
일관성은 같은 생각을 오래 유지하는 데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달라졌을 때 그 이유와 바카라임을 설명할 수 있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어제의 생각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시 살필 수 있는 용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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