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연한 것에는 대개 물음표가 없었다

너무 오래 믿어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

by숨결biroso나


너무 오래 믿어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면 더 묻지 않게 된 것이. 어릴 때는 그렇게 많은 것을 물었는데.


우리를 오래 붙잡는 것은 틀린 생각보다,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생각인지 모른다.

너무 오래 믿어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
삶의 오래된 문장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물음표가 많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은 질문을 참 많이 한다. 왜 달은 따라와? 왜 비가 오면 흙냄새가 나? 왜 어른들은 늦게 자도 돼? 대답을 해주어도 금세 다음 질문이 돌아온다.

“그런데 왜?”

어른에게는 조금 귀찮은 그 질문을 아이는 좀처럼 놓지 않는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질문이 줄어든다. 예전에는 세상을 많이 알게 되어서라고 생각했다. 알아야 할 것을 충분히 배웠으니 더는 묻지 않는 것이라고. 그런데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알아서 묻지 않는 것과 너무 익숙해져서 묻지 않는 것은 달랐다. 내게는 후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어느 날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원래 다 그렇지, 뭐.”

말은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누구도 되묻지 않았고 나 역시 금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한참 뒤 그 문장이 생각났다.

원래?

무엇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답을 찾으려 했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정확히 들은 기억도 없었고, 직접 확인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익숙한 생각 하나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알고 있던 것들

살면서 배운 것 가운데는 배운 날을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글자를 배웠고, 구구단을 외웠고, 신호등의 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익혔다. 처음에는 몰랐고 나중에는 알게 되었다는 경계가 분명하다.

그런데 언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인지. 어느 정도는 해내야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어른다운지. 무엇을 가져야 뒤처지지 않은 것인지.

누가 칠판에 적어준 적은 없는데 어느새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안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꼭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칭찬받는 모습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반대로 눈총 받는 모습을 보며 익히기도 한다.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에서 배우고, 학교와 온라인 게임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기준을 보며 익힌다.

“그 정도는 해야지.”
“다들 그렇게 살아.”
“세상은 원래 그래.”

짧은 말들이 여러 해 쌓이면 어느 순간 생각의 뼈대가 된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 품고 살다 보면 누가 처음 말했는지 사라진다. 출처가 사라진 문장은 조금씩 내 말투를 닮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말한다.

“원래 그런 거야.”

그 순간 궁금해졌다.

내가 믿는 것들 가운데 정말 내가 선택한 생각은 얼마나 될까.




내 필체로 쓰인 남의 문장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는 오래된 공바카라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은 문장들이 한 줄씩 적힌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쯤에서는 이 정도를 이루어야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문장을 오래 베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씨체가 달라진다. 남의 문장이 내 필체로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내용은 오래전에 건너왔는데 글씨가 내 것이라, 생각까지 내 것이라고 믿게 된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오래된 기준을 의심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의심했던 것은.

내가 부족한가. 내가 잘못 살고 있나. 왜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이럴까.

그러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보았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오래된 문장이라면?

그 문장을 다시 읽어봐도 되지 않을까.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 문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마침표를 하나 지워보았다

그 뒤로 마음속에 오래 자리 잡은 문장들을 가끔 꺼내보기 시작했다. 곧바로 버리지는 않았다. 반대로 뒤집지도 않았다. 그저 문장 끝에 붙어 있던 마침표를 잠시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물음표를 놓았다.

정말 그런가?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다. 당연하다고 믿을 때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질문하기 시작하면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왜 그렇게 믿게 되었는지 돌아봐야 했고,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사람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어제까지 확신했던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정답이라고 믿을 때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던 길이 질문이 되는 순간 조금 넓어졌다. 당장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길이 하나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질문 하나로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다. 아침이면 같은 자리에서 눈을 뜨고, 익숙한 일을 하고, 어제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하루를 산다. 그런데 같은 하루를 바라보는 눈에는 아주 작은 틈이 생긴다.

질문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오래 닫혀 있던 생각에 작은 창문 하나를 낸다.




정답 대신 서른 개의 질문

이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한 것이 있다. 오래된 정답을 끌어내린 자리에 또 다른 정답을 앉히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보고 얻은 생각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에도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남는 것이 다르고, 같은 질문도 어느 시절에 만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그러니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은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잠시 멈춰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생각이라고조차 여기지 않았던 것들, 오랫동안 정답처럼 사용해 온 문장들. 그 앞에 서른 개의 물음표를 놓아보려 한다.

어떤 문장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을 것이다. 어떤 것은 조금 고쳐 쓰고 싶어질 수도 있다. 어떤 문장은 더는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좋은 질문은 사람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늦추게 하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한번 돌아보게 한다.

나는 어디에서 이 생각을 배웠을까. 이것은 지금도 나에게 맞을까.

그리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오래 살아온 만큼 답이 많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하게 된 것은 대답보다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몰라서 물었다면, 지금은 너무 쉽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묻게 된다.


그 질문에서 글이 시작되었다. 삶을 뒤집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한 질문. 누군가에게서 건너와 어느새 내 목소리가 되어버린 생각의 출처를 찾아보는 질문.

정답을 서둘러 정하지 않고, 그 물음 곁에 잠시 앉아보려 한다.


삶의 오래된 문장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는 문장 끝에 물음표가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마침표로 바뀌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마침표도 필요했을 것이다. 매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의심하며 살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너무 오래된 마침표 하나쯤은 가끔 다시 들여다봐도 좋겠다. 그것이 아직도 나의 문장인지, 지금의 삶에도 여전히 맞는지.

아니라면 모두 지울 필요는 없다.

오래된 문장 끝에서 마침표 하나만 살짝 걷어내고 그 자리에 물음표 하나를 놓아보는 것이다.

생각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삶은 가끔 우리가 믿어온 문장의 날짜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은 언제부터 내 것이었을까


너무 오래 믿어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

당연한 것에는 대개 물음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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