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들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

초록을 물리고 비로소 마주하는 내 안의 고요

by숨결biroso나


덜어냄의 들머리에서
나를 온전히 품어 안는 시간

"Life starts all over again when it gets crisp in the fall." (가을 공기가 선선해지면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요)

- 조던 베이커의 대사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바람의 결이 바뀌는 새벽의 문턱에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인생은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던 문장을 나지막이 읊조리는 아침. 창가에 서서 조던의 말을 떠올린다.

계절이 허물을 벗는 것일까.

창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어제와는 다른 결을 지녔다. 한여름의 끈적한 열기는 사라지고, 맑게 씻긴 서늘함이 가슴속 빈자리를 채운다. 하늘은 손끝으로 건드리면 금세 깨질 듯 아득히 높고 푸르다. 달력의 얇은 종이 한 장이 소리 없이 넘어가며 10월의 첫 문이 열리는 순간,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르며 길어진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가을의 시작은 언제나 조용하다. 바람이 바뀌는 순간, 나뭇잎의 색이 조금씩 옅어지는 순간, 저녁이 서서히 길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 고요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사람만이 계절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빛을 향해 내달리던 뜨거운 날들의 그림자

여름날의 나는 왜 그토록 눈부신 볕만을 쫓았을까.

더 붉게 피어나기 위해, 더 무성한 잎을 드리우기 위해, 그늘조차 마음에 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애태웠다.

볕이 강할수록 등 뒤의 그림자는 짙어졌지만, 나는 그 서늘한 그늘을 안아줄 여유가 없었다. 더 높이 자라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았고, 푸르름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이 발목을 잡았다.


숲의 초록처럼 나 역시 숨 가쁘게 자신을 소진시키며 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여름은 언제나 치열하다. 햇살은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사람들은 그 빛을 향해 달려간다.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열매, 더 많은 환희를 갈망하며 앞만 보고 달린다. 그 치열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는다. 그림자를 외면한 채 빛만을 좇는 삶은 결국 균형을 잃고, 내면의 고요를 잊게 만든다.


개츠비의 파티를 떠올려본다.

화려한 불빛과 음악, 끝없이 흐르는 샴페인, 춤추는 사람들. 모두가 빛을 향해 몰려들지만, 그 속에서 개츠비는 오직 데이지만을 기다린다.

그 화려함은 허망한 꿈을 가리기 위한 장막일 뿐이었다. 여름의 치열함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오듯, 화려한 파티가 끝난 뒤 남는 것은 고요와 허무다.



몸을 굽혀 스스로의 무게를 품어 안는 나무처럼

가을의 들머리에 선 나무들은 그 조급했던 마음을 다독인다. 붉고 노란 물결로 몸을 바꾸어가는 숲은 멈춤이 아니라 내면으로 기운을 끌어들이는 침묵의 시간이다.

길가의 감나무는 붉게 익은 열매를 매단 채 땅을 향해 몸을 낮춘다. 부러질 듯 버티는 대신, 맺은 무게를 거스르지 않고 유연하게 굽어내린다.

채우고 뻗어나가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겉의 푸르름을 기꺼이 바래야만 속이 꽉 찬 열매가 된다는 것을 나무는 말없이 보여준다.

손을 펴는 순간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내려놓음 속에서 비로소 온기가 깃든다.


낮에는 여전히 더워서 열매는 단단히 매달려 있지만, 밤과 새벽의 선선한 기운이 조금씩 색을 바꾼다. 그 중간의 시간, 아직 덜 익은 열매는 삶의 과정과 닮아 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불안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성숙이 자라난다.


도시의 화려함 속에서 고향의 단단한 땅을 그리워하듯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화려한 여름을 지나온 뒤, 우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무가 잎을 거두어들이듯, 사람도 마음을 안으로 끌어당긴다.



비워낸 빈터에 고요히 차오르는 온기

해는 능선 너머로 조금 더 서둘러 기울고, 저녁은 길게 드리운다. 사람들은 차가워지는 바람 앞에서 쓸쓸함을 떠올리지만, 어둠은 잃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밖으로 흩어지던 마음을 내 안의 고요한 방으로 데려오는 시간이다. 저녁의 품속에서 결핍과 생채기는 모서리를 둥글게 지워내며 안식을 얻는다. 치열하게 타오르던 계절을 뒤로하고, 마음은 고요의 편으로 기울어진다.

더 화려해야 한다는 불안을 내려놓을 때, 비워낸 자리만큼 깊어질 수 있다.

빛이 물러난 빈터에 차오르는 것은 차가운 적막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이에게만 허락되는 넉넉한 온기다.


가을은 우리에게 쉼을 건넨다. 멈춤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또 다른 삶을. 덜어냄 속에서 차오르는 더 깊은 온기를. 조던의 말처럼 가을은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요란하지 않고, 고요 속에서 은밀히 자라난다.


오래 들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


10월의 첫 모퉁이, 한 해가 여기까지 왔다.

아직 석 달이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벌써 아홉 달을 건너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와 있을까.

잘 왔는지를 묻기보다 무엇을 여기까지 들고 왔는지 한번 살펴보고 싶다.


끝까지 가져갈 것.
이쯤에서 내려놓아도 될 것.
그리고 너무 오래 남의 몫까지 들고 있었던 것.

그 셋을 조금씩 구별해보고 싶다.


나무가 모든 잎을 데리고 겨울로 가지 않듯 우리도 모든 마음을 끝까지 품고 갈 필요는 없을 테니까.



바람이 또한 번 불었다.

잎 하나가 가지를 떠나 천천히 내려왔다.

나무는 붙잡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계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잎을 밀어 올렸고, 햇빛을 받았고, 비를 견뎠고, 뜨거운 여름을 건넜다.

그리고 때가 오자 놓았다.

그것으로 한 계절을 다 살아냈다.

조금 덜 가진 채 다음 모퉁이를 돌아가 보려 한다. 그곳에서 무엇을 더 얻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빈손이 된 만큼 새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절은 날짜보다 먼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도착합니다. 바람 한 줄기, 익어가는 열매, 일찍 찾아온 저녁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이야기. 지금 마주하는 계절에서 무엇을 발견하시나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겠다는 다짐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들고 왔는지 한번 내려다보고 싶습니다. 오래 들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번 가을에는 무엇을 더 채울지보다 무엇을 조금 덜어도 괜찮을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나무가 잎을 놓으면서도 제 안의 것을 잃지 않듯, 사람도 내려놓으며 깊어질 수 있다고 믿어보면서요.




덜어내고 내려앉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고 깊은 곳으로 가만히 스며드는 일. 가을의 서늘한 바람은 우리에게 멈춤을 건네지만,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내면의 온기를 발견한다.


10월의 문을 열며 서늘해진 바람에 마음을 얹어봅니다. 뜨거운 계절을 지나 쉬지 못했던 마음들이 길어진 저녁의 품 안에서 편안한 숨을 고르는 시간, 저마다의 계절을 묵묵히 건너온 우리에게 고요한 평온이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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