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열렸는데, 우리는 무엇을 닫고 살았을까

붉은 달력 뒤편에 묻어둔 하늘의 기억

by숨결biroso나


개천절에 다시 읽는 홍익인간

붉은 달력 뒤편에 묻어둔 하늘의 기억,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오래된 문장을 오늘의 삶으로 옮겨본다

시월의 첫 문턱, 달력에 찍힌 붉은 숫자는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가을의 품으로 달아나라고 허락된 달콤한 쉼표처럼 다가온다. 무언가에 홀린 듯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서지만, 그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가만히 멈춰 서서 묻는 이들은 드물다.




붉은 달력 뒤편에 묻어둔 하늘의 기억



달력의 10월 3일은 붉다.
쉬는 날이라는 것은 금방 알아본다.

그런데 그 붉은 숫자 옆에 적힌 세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개천절 (開天節)

열 개 開.
하늘 천 天.
마디 절 節.

하늘이 열린 날.

늘 알고 있던 말인데 한자를 한 글자씩 펼쳐놓으니 낯설게 다가온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수천 년 전 하늘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뉴스에서 개천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개천절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러다 질문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얼마나 알고 있었지.

단군왕검.
고조선.
기원전 2333년.
홍익인간.

학교에서 배웠던 단어들은 떠올랐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홍익인간이 지금 우리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의미도 모른 채 단어만을 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홍익인간(弘益人間)

넓을 홍 弘.
더할 익 益.
사람 인 人.
사이 간 間.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에도 나오는 네 글자였다.
칠판에 적히면 공바카라에 받아 적었고, 빈칸이 나오면 홍익인간이라고 쓰면 됐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한 나라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강한 나라는 아니었다. 많이 가진 나라라고도 하지 않았다. 남보다 앞서는 나라라고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빠르게 내리고 빠르게 탄다.

한 사람이 빈자리를 발견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누군가 같은 자리를 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그 장면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하루가 대개 그렇다는 것이다.

먼저 가야 한다.
먼저 잡아야 한다.
내 것을 챙겨야 한다.
놓치면 내 손해다.

학교에서는 한 점이라도 더 받아야 하고, 회사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야 한다. 집값도 연봉도 자산도 끊임없이 비교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잘 사는 것의 문법에는 꽤 익숙해졌다.

그런데 함께 잘 사는 문법은 어디에서 배우고 있을까.

한 사람이 우산을 들고 좁은 길을 걷는다.
맞은편에서도 사람이 온다.
둘 중 한 사람이 우산을 살짝 들어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초 뒤 두 사람은 다시 모르는 사람이 된다.

세상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작은 장면에서 '홍익인간'이라는 거대한 말을 떠올려본다.

홍익은 반드시 위대한 일을 뜻하는 것일까.

의사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기술로 수많은 사람의 불편을 해결하는 일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지나갈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일에도 그 씨앗은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지식으로 모르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힘이 있다고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돈을 많이 가진 것이 사람의 크기까지 결정한다고 믿지 않는 것. 나와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무게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홍익인간은 박물관 안에 놓인 오래된 말이 아니다.

오늘 아침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따라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가고 싶다.

홍익인간을 착한 사람이 되자는 말로만 읽어버리면 이 오래된 사상은 너무 작아진다.

한 사람의 친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건물 앞에서 필요한 것은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의 친절만이 아니다.

아픈 사람이 치료비 때문에 병원 문턱에서 돌아서지 않게 하는 일도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의 출발선이 부모의 형편에 따라 지나치게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일, 나이가 들거나 몸이 불편해져도 인간다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그래서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가 어떤 슬롯를 만들 것인가.

두 질문은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개천절(開天節)
다시 처음의 세 글자로 돌아온다.

하늘이 열린 날. 오래된 신화 속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인간 세상을 향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말을 오늘의 언어로 조금 다르게 읽어본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이 위를 바라보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옆을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것.
내가 먼저 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아는 것


내가 가진 힘이 누군가에게 벽이 아니라 문이 되게 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아도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슬롯를 만드는 것.

그것이 수천 년을 건너온 홍익인간을 오늘 다시 읽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쉼표 너머의 시간, 우리가 잊고 지낸 하늘이 열린 날의 온기


10월 3일. 달력에는 여전히 붉은 숫자가 찍혀 있다. 쉬어도 좋다. 가을볕 좋은 길을 걸어도 좋고, 가족과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다.

다만 하루가 저물기 전에 그 옆에 적힌 세 글자를 한 번쯤 천천히 읽어보았으면 한다.

개천절(開天節)
그리고 그 곁의 네 글자도.

홍익인간 (弘益人間)
너무 오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생각하지 않았던 말.

그 말을 시험지의 정답에서 꺼내 삶의 질문으로 옮겨놓는다.

나는 잘살고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묻는다.
내가 잘 사는 동안 누군가의 삶을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늘이 열린 날,
하늘보다 사람 쪽을 오래 바라본다



달력의 붉은 숫자가 건네는 진짜 의미를 가만히 헤아려보는 저녁, 바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조용히 묻게 된다.


널리 세상을 따스하게 품고자 했던 그 오래된 약속은 찬바람이 스치는 오늘 우리 곁에서 서로의 시린 손을 포근히 감싸 쥐는 작은 온기로 피어나기를. 보이지 않는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 마음의 하늘이 이웃을 향해 더 넓게 열리기를 소망한다.


너무 오래 외운 말은 때때로 그 뜻을 잃기도 한다. 잘 사는 법을 배운 만큼 함께 잘 사는 법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과거의 정답이 아니라 오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마음에서 시작해 우리가 만드는 세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천절을 맞이하여 홍익인간이라는 네 글자 앞에 머물렀습니다. 학교에서 분명 배웠고, 바카라에서도 읽고, 뜻도 외웠는데, 정작 그 말이 지금의 삶에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오래된 사실을 정확히 외우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시대가 남긴 질문을 지금의 삶에 다시 가져와보는 것. 개천절 하루만이라도 그 오래된 네 글자를 천천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오래된 건국이념이면서 동시에 나는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개천절은 한자로 적힌 낯선 단어처럼 우리 기억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날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드물어졌고, 아이들의 손에는 역사 이야기 대신 스마트폰 화면이나 놀이공원 입장권이 먼저 쥐어지곤 한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넘어, 그 옛날 하늘이 열렸다는 선언이 품고 있는 무게를 온전히 아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는 수많은 사연과 켜켜이 쌓인 시간의 온도가 스며 있다. 홍익인간,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그 오래된 화두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서늘한 울림을 건넨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과 바쁜 일상에 쫓겨 우리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졌다. 무엇을 채우고 소비할지만 골몰할 뿐,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만히 멈춰 서서 묻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역사는 고루한 암기 과목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현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의미를 잃어버린 휴일은 화려한 포장지만 남은 빈 상자와 다르지 않다. 이번 연휴만큼은 붉은 달력의 숫자 뒤편에 가만히 시선을 건네보자.

가을볕이 눈부신 이 계절,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나지막이 이야기를 건네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가장 따뜻한 안부가 아닐까 싶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삶에 다시 놓아보는 일.

하늘이 열린 날, 하늘보다 주변을 한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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