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게 될 마음의 자리

남겨 둔 마음의 방향, 접힌 페이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숨결biroso나


종이는 접힌 곳부터 기억한다



바카라 한 권을 펼치다

모서리가

가만히 접힌 페이지를 만났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조용히

손끝 하나를 남겨 두었을 것이다.



바카라갈피가 없어도,

메모가 없어도,


종이는

접힌 자리만으로 기다릴 줄 알았다.



다 잊었다고 말하면서도,

문득 스치는

노래 하나에,


익숙한 골목 하나에,
비 오는 창가 하나에

오래전 접어 두었던

마음이 천천히 펼쳐진다.



마음에도 접어 둔 페이지가 있다



시간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모서리를

조금씩 둥글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펼쳐진 마음은

예전과

같은 문장이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온도로 읽힌다.


누군가는

흔적을 지우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종이는 접힌 곳을

상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펼쳐질 방향이라고 기억한다.

오늘도 바카라장을 넘기다


접힌 모서리 하나에

손끝이 오래 머물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서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오래전 접어 둔

페이지를 다시 펼치면


그때의 문장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은 이미 달라져 있다.



아팠던 문장에는

조금 덜 아픈 손끝이 닿고,


그리웠던 문장에는

지나온 계절만큼의 온기가 얹힌다.


종이는 아무것도 잊지 않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품고 있었을 뿐이다.



다시 펼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은 그 자리를 기억한다



어쩌면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잊은 것이 아니라
다시 펼쳐도 괜찮아질 때까지
한쪽 모서리를 조용히 접어 두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그 자리를

다시 펼쳤을 때 알게 되는 것.


접힌 것은

마음의 끝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읽게 될
한 사람의 다음 페이지였다는 것을.

남겨 둔 마음의 방향,
접힌 페이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은

오래 접혀 있어야 비로소 읽을 수 있다.

그때는 너무 아파 넘겨버린 문장도,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던 이름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펼치면
전과는 다른 빛 아래 놓여 있다.


접힌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자리를 만지는 손은 예전의 손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잊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펼쳐도 아프지 않을 만큼
조금씩 먼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마음 한쪽에는
아직 펼치지 못한 페이지가 있다.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손끝이 그곳에 닿는 날,


오래 접어 두었던 마음도
제 다음 문장을 가만히 내어줄 테니까.

접힌 마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읽을 수 있는 날을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마음은 끝난 것이 아니라 한쪽 모서리를 접은 채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마음에도 바카라갈피가 있다.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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