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켜 준 우산은 오래 남는다
장마가
<월요일의 우산>
비는 밤새
도시의 어깨를 두드렸고,
사람들은 아침이 되자
저마다 작은 지붕 하나씩을 펼쳤다.
월요일은
맑아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젖은 마음을 들고도
다시 길 위에 서는 날이었다.
장마가 시작된 아침, 마음이 먼저 펼친 것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를 들은 것은 며칠 전이었지만, 진짜 장마는 아침 현관문을 여는 순간 시작되었다.
비 냄새가 먼저 스며들었다. 젖은 땅 냄새와 나뭇잎 냄새, 밤새 빗물을 머금은 공기가 조용히 하루를 열고 있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우산을 펴느라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접혀있던 천이 둥글게 부풀고, 각자의 머리 위에 작은 지붕이 하나씩 생겼다.
비 오는 날의 사람들은 조금 닮아 보인다.
평소보다 말이 적고, 걸음은 조심스럽다. 바짓단이 젖지 않도록 보폭을 줄이고, 웅덩이를 피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마음까지 젖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도 우산을 펼쳤다.
손잡이를 쥐고 몇 걸음 걷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빗방울이 쉼 없이 부딪혔다. 소리는 가까웠지만 몸은 젖지 않았다. 겨우 한 뼘 남짓한 천 조각이 하늘과 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우산을 쓰면 비가 그치는 줄 알았다. 작은 천 하나가 하늘을 막아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살아 보니 우산은 비를 멈추게 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먹구름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젖은 길을 마르게 하지도 못한다.
그저 비를 맞으면서도 걸어갈 수 있게 해 줄 뿐이었다. 우산 하나를 펼치면 다시 걸을 수 있다. 비가 사라진 것은 아닌데, 견딜 만한 날씨가 된다.
생각해 보면 삶에도 그런 우산들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건너게 해 준 것들. 사정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잠시 받쳐 준 것들.
힘겨운 날에는 바카라 한 권이, 막막한 날에는 커피 한 잔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날에는 한 줄의 문장이 비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지만, 끝내 비를 지나가게 해 주었다.
그것들은 삶을 바꾸지 않았지만, 삶 속에서 내가 걸음을 멈추지 않게 했다.
출근길 건널목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검은 우산, 투명한 우산, 노란 우산이 나란히 신호를 기다렸다. 작은 우산 아래 두 사람이 바짝 붙어 있었고, 한쪽 어깨를 비에 내어준 사람이 우산을 상대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
그 장면이 오래 눈에 남았다.
우산을 함께 쓴다는 것은 둘 다 젖지 않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조금 더 젖는 쪽을 택하는 일이었다. 함께 걷는다는 말 속에는 언제나 그런 기울기가 숨어 있는지도 몰랐다.
누구나 자기 몫의 비를 맞으며 살아간다.
어떤 비는 잠깐 지나가고, 어떤 비는 계절처럼 오래 머문다. 미리 준비한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날이 있고, 가장 단단하다고 믿었던 마음이 속절없이 젖는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우산을 편다.
살다 보면 완전히 젖지 않는 법보다, 젖은 채로 돌아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옷자락이 축축해져도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계속 내딛는 법.
돌아와 젖은 우산을 털고, 현관 한쪽에 세워두고, 내일을 위해 다시 말리는 법.
그것이 어쩌면 살아가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비가 오지 않는 삶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는 날에도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삶은 비가 그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으면서도 걸어가는 동안 조금씩 단단해진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마 며칠 동안 하늘은 낮게 내려앉고, 빨래는 잘 마르지 않을 것이다. 약속은 미뤄지고, 길은 평소보다 막히고, 마음도 이유 없이 무거워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산을 펼칠 것이다.
대단한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오늘 하루를 건널 만큼의 마음이면 된다. 비를 이기겠다는 다짐보다, 비와 함께 걸어보겠다는 쪽이 오래 간다.
우산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시 소리를 내고는 가장자리로 흘러내렸다.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많은 날도 어쩌면 그렇게 지나갔을 것이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는 머리 위에서 쏟아지지 않는 시간이 되어.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산을 쓰고 길을 건넜다. 나도 그 사이에 섞여 천천히 걸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문장도 우산과 닮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해도, 그 비 속을 조금 덜 외롭게 걸어가게 하는 것.
그 정도면 한 편의 글이 할 수 있는 일로 충분하지 않을까.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의 문장을 펼쳐 들고 걷는다.
비는 그치지만, 오늘을 건너온 마음은 오래 남는다.
비는 누구에게나 같은 하늘에서 내렸지만,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지나간다.
우산을 접는 시간도,
햇빛을 다시 만나는 시간도 모두 달랐다.
그래서 계절은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오늘도
비는 조용히 내리고,
사람들도 조용히 걸어간다.
비는 언젠가 그치겠지만,
오늘 함께 걸어간 마음은
조금 더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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