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스물셋, 첫 출근
스물셋이라는 숫자는 항상 ‘아직’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아직 어리고,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그날 아침도 그 ‘아직’에 기대서 눈을 떴다.
낙엽 익는 향이 느껴지는 가을이었다.
창밖은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시간에 걸려 있었다.
밤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방 안 구석에 조금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주방에서는 물 끓는 소리와 그릇이 닿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엄마였다.
예전보다 느려진 동작으로 냄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쪽 손은 습관처럼 허리를 짚고 있었고,
한쪽 손은 여전히 정확하게 움직였다.
암 투병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침처럼 보였다.
식탁 위에는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놓였다.
나는 앉아서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입에 넣는 순간,
“밥 먹으면 배 아파.”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던졌을 투정이 떠올랐다.
진짜로 아픈 것도 아니면서 괜히 찡그리던 말.
엄마가 “그럼 먹지 마” 하면 웃으면서 넘기던 말.
말은 하지 않았고, 그날에 따스함과 당연한 일상에
감사함으로 밥을 삼켰다.
은색 갈치 정장을 꺼내 입었다.
빛을 받으면 아주 미세하게 반짝이는 옷이었다.
회사라는 공간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어깨는 어색하게 맞았다.
정확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비어 있었다.
셔츠 깃은 목을 천천히 조였다.
숨이 막히는 건 아니었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거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머리를 한 번 매만졌다.
단정해 보이려는 손인데,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괜찮겠지....
그 생각이 말로 나오지 않은 채 계속 머물렀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뒤따라 나왔다.
안방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 나와 있었다.
“차 조심해.”
늘 듣던 말이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 가던 날마다 따라오던 말.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길게 남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계속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탔다.
출근 시간의 버스는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묘하게 눌린 공기가 있었다.
말은 없는데 모두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창가에 앉았다.
가을 아침의 도시가 천천히 지나갔다.
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카페,
막 문을 여는 슈퍼마켓,
그리고 점점 하얀 시야를 가르키는 하늘.
그렇지만 나는 계속 귀를 세우고 있었다.
정류장 안내 방송을 놓칠까 봐.
혹시라도 지나쳐 버릴까 봐.
이어폰은 끼지 않았다.
작은 소리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안내 음성이 울릴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직 아닐 거야.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야.'
그 생각이 반복되는 동안
손은 가만히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앞쪽에 붙어 있었다.
버스는 멈췄다가 다시 갔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람의 냄새가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계속 내릴 타이밍만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회사 앞에서 내렸다.
신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또각또각, 걸음의 속도는 빠르고 일정했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 들었다.
모르는 이에 뒤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말이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같은 규칙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어느 순간, 내가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도 애매해졌다.
그냥 그 안에 있었다.
걷다보니 청사에 잘 도착할수 있었다
임용장을 받았다.
종이 한 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손에서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게가 진짜인지, 내가 그렇게 느낀 건지는 잘 모르겠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안내를 따라 걸었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었다.
임용장은 여전히 손에 있었다.
잊어버리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았다.
부서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안쪽에서는 키보드 소리와 낮은 말소리가 섞여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도, 이미 들어가야 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소리가 한 번에 줄어들었다.
키보드 치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그리고 낮게 섞인 목소리들이 일정한 리듬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모니터를 보면서 고개만 조금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들 바쁘면서도 서로를 아주 조금씩은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 새로 오신 분이죠?”
눈은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공간을 조금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팀장들과 팀원들에게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팀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시선만 잠깐씩 스쳤다.
자리로 돌아왔다.
의자는 분명 앉으라고 만들어진 것인데,
막상 앉으니 어색하게 몸이 남아 있었다.
모니터는 켜져 있었지만, 어디를 눌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우스를 잡았다가 내려놓고,
다시 손가락을 바카라상 위에 두었다.
옆자리 사람은 계속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일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리듬 안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신입이야?”
누군가 낮게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 말은 정확히 들린 것도 같고, 그냥 지나간 것도 같았다.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였다.
파일 하나를 열었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닫았다.
첫날, 가장 먼저 배운 건 일이 아니었다.
“눈치”였다.
사수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정돈된 셔츠, 단정한 머리, 그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표정.
딱 보면 공무원 스러운 사람이었다.
오래 이 일을 해온 사람이라는 느낌.
사무실 안에는 말이 많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만 일정하게 쌓였다.
사수는 그 안에서 거의 같은 리듬으로 움직였다.
모니터를 보고, 문서를 확인하고,
결재를 넘기고, 다시 키보드를 치는 식으로.
나는 옆에 서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거… 복사해서 드리면 되나요?”
사수는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짧은 대답이었다.
설명은 없었다.
나는 서류를 들고 복사기로 갔다.
화면에는 비밀번호 입력창이 떠 있었다.
잠겨 있었다.
잠깐 그 앞에 서 있었다.
이게 원래 있는 상황인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결국 다시 돌아갔다.
“저… 복사기 비밀번호가 뭐예요?”
사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걸 내가 그런 거까지 알려줘야 해?”
말끝이 특별히 날카로운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다시 알수 없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복사기 앞에 다시 섰다.
시간이 조금 늘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잠깐 깜깜해졌다.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조용히 누군가가 다가와 버튼을 눌렀다.
잠금이 풀리는 소리.
1,2,3,4 비밀번호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건 배우는 게 아니라 끼어드는 거구나.
그리고 돌아서는 길, 아주 천천히 그런 생각이 따라왔다.
그 사람도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아직 서툴고,
그도 어렸던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들의 말투, 시선의 방향,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키보드 소리까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첫날의 공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서 있던 나와,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던 그들을 함께 떠올린다.
지워지지 않는다기보다,
이미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것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