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니꺼잖아?

Alfons Maria Mucha. 따라 해도 무하가 되는 이유

by한이람



대학 5년을 메이플스토리에 헌납했다.

소위 룩덕*이었다. 비싼 캐시템을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몇 달 전이었나. 사진을 주면 메이플스토리풍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준다는 AI 프롬프트를 발견했다. (아니 이걸 나보고 어떻게 참으라고.)


메이플에선 이렇게 대충 입고 있는 애들이 고인물입니다.


오, 첫 시도부터 그럴듯하다.


단순한 도트 그래픽이라 구현하기 쉬웠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브리풍 가족사진, 고흐풍 풍경사진, 르누아르풍 일러스트... 익숙한 이름 뒤에 '풍' 하나만 붙이면, 순식간에 그 사람의 스타일을 불러올 수 있는 시대 아닌가.


그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여러분이 방금까지 읽은 문장들, 전부 AI가 썼다. 그동안의 내 글을 주고 '한이람풍'으로 써달라고 했다.




어딘가 익숙한 그림


여기서부터 한이람이 쓴다. (이대로 초고를 다 넘겼다간 직접 쓰기 싫어질 것만 같다) 이젠 데이터만 충분히 주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글도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인가 보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아니, 그것보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 '자기 스타일'이라는 것도 별 의미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


사실 어떤 스타일을 흉내 내는 일은 이미 역사가 길다. 19세기 말 미술계에서도 요란하게 일어난 일이다.



알폰스 무하(Alfons Mucha)라는 이름을 몰라도 이 화풍은 한 번쯤 봤을 거다. 일러스트에서, 만화에서, 타로카드나 패키지에서.


그의 그림에는 늘 비슷한 것들이 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식물과 꽃, 세로로 긴 화면, 촘촘한 테두리와 섬세한 패턴. 아름다운 여자가 화면 한가운데 있고, 주변의 장식은 하나의 무대처럼 인물을 감싼다.


이런 스타일을 보면 굳이 작가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도 어딘가 익숙하다. 무하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하 같다'라고 느끼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거 어디서 본 느낌인데?' 싶다.


무하의 화풍은 그리 신비한 비법이 아니다. 몇 가지만 짚어도 금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하다. 알아보기 쉬운 만큼 흉내 낼 단서도 많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무하의 스타일을 따라 했고, 변주한다. 지금도 계속. 그런데 비슷한 이미지가 아무리 늘어나도 '무하 같다'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이미지가 무하만을 가리킬 뿐이다.




포스터 한 장으로 생긴 이름


알폰스 무하는 지금의 체코 땅인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빈과 뮌헨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 이방인이었다. 초기 파리에서 그는 삽화와 광고 도안을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던 평범한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런 그의 화가 인생은 1894년 크리스마스 무렵 바뀌었다. 당대 파리 연극계의 스타, 사라 베르나르의 신작 《지스몽다(Gismonda)》의 포스터에 펑크가 난 것이다. 연휴 직전이라 일손이 빠진 인쇄소에서 혼자 교정을 보던 무하에게 그 일감이 돌아갔다.


당시 파리의 길거리는 요란한 원색의 포스터로 포화 상태였다. 그 한가운데 무하가 내놓은 포스터는 이질적이었다. 유난히 길고 좁은 세로형이었고, 그 안에 선 베르나르는 배우라기보단 중세 성당 벽화 속 성녀처럼 보였다. 머리 뒤에는 후광을 연상시키는 둥근 아치가 둘러져 있고, 색감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었다. 옷자락과 꽃무늬는 자수를 놓은 듯 촘촘했다.


(좌) Gismonda (1895), (우) La Dame aux Camélias (1896) ©Mucha Foundation


눈에 띄었다. 잘 팔렸다. 정확히 말하면 잘 사라졌다. 밤마다 이 포스터를 몰래 뜯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해 도저히 잡아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사라 베르나르 본인이 매료됐다. 그녀는 무하와 6년 독점 계약을 맺고, 포스터를 넘어 무대 미술, 의상, 주얼리 디자인까지 통째로 맡겼다.


포스터 한 장으로 알려진 스타일은 곧 반복되기 시작했다. 여자, 꽃, 원형 장식, 유려한 곡선. 사람들이 무하에게 기대하는 것도 점점 분명해졌다. 비슷한 작업이 쌓이자 어느새 파리에서는 이 스타일을 아예 '르 스타일 무하(Le Style Mucha)', 무하 스타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화가의 이름이 화풍의 이름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성공담이다.

하지만 무하는 여기서 기묘한 선택을 한다.


무하는 자기를 따라 하는 법을 공개했다.




따라 하세요. 자유롭게

From Documents Décoratifs (1902), Alfons Mucha


1902년, 무하는 『장식 자료집(Documents Décoratifs)』이라는 바카라 한 권을 덜컥 내놓는다.


대놓고 '무하 따라잡기 101'이라고 적어두진 않았지만, 자기 작업실을 통째로 뒤집어 보여준 수준이었다. 인물의 얼굴과 포즈부터 식물 문양, 주얼리 세공 디자인, 글자와 장식 패턴까지. 자신의 화풍을 이루던 모든 시각적 부품들을 잘게 나눠 늘어놓은 레퍼런스 북이었다. 몇 년 뒤에는 인체 드로잉을 중심으로 한 『장식 인체(Figures Décoratives)』까지 얹어줬다. 미대생과 공예가들이 참고하라고 만든, 말하자면 "다 갖다 쓰세요!" 종합선물세트였다.


아니 왜 그러시는 건데요 대체. 보통 이런 짓을 하면 주변에서 뜯어말리기 마련이다. 독창성이 밥줄인 업계에서 자기 레시피를 온 동네에 풀어버리면 몸값이 떨어지는 게 상식 아닌가.


사정을 들어보면 좀 짠하다. 밀려드는 의뢰를 도저히 다 감당할 수가 없었단다. 필요한 걸 각자 알아서 찾아 쓰게 해두면, 이제 좀 조용해지겠거니 했다는 것.** (지금으로 치면 자동응답 챗봇을 세워둔 셈이다)


역시나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공예가들이 무하의 꽃과 둥근 후광을 따라 하고, 프레임을 가져다 쓰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신나게 변주했다.


그래서 무하는 조용해졌을까?
무하라는 이름도 점점 희미해졌을까?

땡. 둘 다 반대다.


무하는 훗날 그게 완전한 착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의뢰는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 그것도 남들이 아직 갖지 못한 무하의 무언가를 원하는 주문들이.


따라 하는 손이 늘어날수록 무하의 이름은 더 단단해졌다. 따라 하라고 만든 바카라이 무하를 희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무하답다는 건 이런 것'의 범위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베끼기는 쉬워졌는데, 무엇을 베끼고 있는지는 더 분명해진 것이다.




무하가 없어도 무하


나중엔 그가 즐겨 쓰던 구도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도 생겼다. 'Q 구도(Q-formula)'. 인물 뒤에 원이 있고, 그 아래로 옷자락이나 장식이 길게 늘어지는 윤곽선이 알파벳 Q를 닮았기 때문이다.


이 구도는 20세기 후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둥근 프레임 안에 캐릭터를 두고, 여백엔 꽃잎과 덩굴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 방식이다. CLAMP의 만화바카라이나 화집을 펼쳤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면 정체는 여기에 있다. 그 화려한 선 뒤로 무하가 숨어 있었던 것.


무하를 따라 그리는 작가들은 애초에 숨길 생각도 별로 없다. 메카닉 디자이너 이즈부치 유타카는 한국 강연에서 무하의 영향을 받은 자신의 일러스트를 두고 '파쿠리(パクリ: 표절, 도용, 훔치기를 뜻하는 속어)'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단다.


이런 후대 만화가들이 무하의 그림을 그대로 트레이싱하는 건 아니다. 어떤 작가는 Q 구도를 가져오고, 어떤 작가는 찰랑거리는 곡선을, 어떤 작가는 꽃장식의 밀도를 빌려온다. 그런데 몇 가지 선택이 비슷하게 겹치기만 해도 무하가 보인다.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조금씩 다르게 조합돼도 여전히 무하를 가리킨다.


《지스몽다》가 거리에 걸린 순간, 게임은 이미 끝났다.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말이 괜히 있겠나. 그 사람이 제일 대단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보는 기준 하나를 처음 만들어놓고 갔기 때문이다. 그 뒤로 비슷한 얼굴은 전부 그 사람을 닮은 걸로만 보인다. 더 예쁜 꽃, 더 화려한 프레임이 쏟아져도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다.




가져와서 내 걸로 만드는 건?

Look Mickey (1961), Roy Lichtenstein


무하에게 '처음 보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오리지널리티였다. 그런데 미술에서 '처음'이 꼭 처음 보는 모양을 뜻하는 걸까? 현대미술로 들어오면 이 말이 엉뚱한 데 붙기 시작한다.


이 사람을 한번 보자.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그의 그림은 무하와 달리 처음부터 너무 익숙했다. 굵은 윤곽선, 말풍선, 원색, 점점이 찍힌 벤데이 도트(Ben-Day dots). 모두 당시 미국의 대중 만화와 상업 인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양식이었다. 다만 리히텐슈타인은 그 흔한 만화 한 칸을 큰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기행(?)을 저지른다.


그런데 그 짓을 계속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만화바카라에 있던 선과 점인데, 캔버스 위에서 마주치면 이 이름이 먼저 나온다.


리히텐슈타인 같네.


그림체는 빌려왔다. 만화바카라을 넘기다 리히텐슈타인을 떠올리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 이름이 나오는 건 만화가 미술관 벽에 걸려 있을 때뿐이다. 미키마우스를 만든 사람은 따로 있지만, 거기 건 사람은 그였으니까.


Fountain (1917), Marcel Duchamp


뒤샹을 보면 '처음'은 더 희한한 곳으로 간다. 이 사람은 아예 새로 만든 것도, 따라 그린 것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기성품 하나—그것도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해 놓고, 이게 왜 미술이 아니냐고 물은 사람이다. (심지어 이 변기는 결국 전시장에 놓이지도 못했다.)


미키마우스도, 변기도 원래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걸 미술이라고 들이미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까 창작에서 '처음'이 꼭 새로운 형태나 재료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있던 것들을 전에 없던 관계에 놓는 것도 하나의 처음이다.




틀림없이 그 사람의 것


무하는 처음 보는 그림을 내놨다. 리히텐슈타인은 다들 아는 그림을 옮겨 걸었다. 뒤샹은... 그리지도 않았다.


방법은 제각각이다. 재료의 공통분모도 없다. 그런데 똑같이 한 게 하나 있다. 그 사람 이후로 무언가를 예전처럼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이야기하다가 신문 기사 한 줄을 꺼내 온다. 뉴욕 타임스가 데뷔 무렵의 비틀스를 두고 쓴 문장이다.


They produced a sound that was fresh, energetic and unmistakably their own.
그들이 창조해낸 사운드는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분명 그 사람의 것.

그러니까, 누가 봐도 니꺼라는 말이다.


하루키는 여기에 조건을 몇 가지 붙인다. 그중 하나가 이거다. 그 스타일이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기준 속으로 스며들거나, 다음 세대가 가져다 쓰는 레퍼런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그랬다. 비틀스 이후의 밴드들에겐 자기 노래를 직접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됐고, 무하의 곡선은 바다를 건너 만화바카라 속으로 흘러들었다. 뒤샹 이후로는 '어디까지 미술로 쳐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예전 같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무하를 보면 하나가 더 보인다. 스며들고도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 꽃장식 하나, 둥근 프레임 하나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하를 떠올린다.


오리지널리티를 말로 정의하기는 몹시 어렵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나라고 될 리가.


다만 어떤 것의 전과 후로 우리가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 뒤에 태어난 것들이 한참 뒤에도 같은 이름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거기서 '오리지널'이라는 말을 꺼낸다.



Langage des Fleurs (1900), Alfons Mucha






요즘은 뭐든 '풍'을 붙이면 불러올 수 있다. 지브리풍, 고흐풍, 그리고 이제는 무려(?) 한이람풍까지. 그런데 '풍'이 붙으려면, 그 앞에 이름이 먼저 있어야 한다.



아. 그 메이플풍 캐릭터는 아직 내 사진첩에 있다.

캐시템 하나 안 걸쳤는데도, 누가 봐도 메이플이다.





* 게임 등에서 캐릭터의 외형(look)을 꾸미는 것에 집중하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사람.

** 아들 이르지 무하(Jiří Mucha)가 쓴 무하 전기에 실린 회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