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은 칼 대신 방망이로

호박 새우젓볶음, 그리고 폴란드 텃밭의 기억

by굳데이


요리를 배우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지만, 막상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것은 오래전부터 먹어 온 평범한 반찬들이다. 호박볶음도 그중 하나다.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요리학원에서 호박 새우젓볶음을 배운다고 했을 때도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요리는 시작부터 예상과 달랐다. 선생님은 호박을 칼로 썰지 말고 방망이로 두드려 쪼개라고 하셨다. 예전 시골 할머니들이 이렇게 호박을 손질해 요리하셨다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반듯하게 썰면 될 것을 굳이 방망이로 두드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배운 대로 호박을 적당히 두드리고, 크게 떨어져 나온 조각은 손으로 다시 나누었다.


수강생마다 힘 조절이 달라서 어떤 분은 살살 톡톡 두드렸고, 나는 남자라서 그런지 제법 세게 내리쳤다. 그러다 보니 호박이 갈라지는 모습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크기도 모양도 들쭉날쭉한 조각들은 칼로 반듯하게 썰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완성된 음식을 맛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호박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고, 적당히 익은 호박은 무르지 않아 씹는 맛이 좋았다. 방망이로 쪼개어 단면이 불규칙해진 덕분에 새우젓의 짭조름한 감칠맛이 호박 내부로 더 깊고 고르게 배어들었다.


칼로 썰면 매끈하게 잘리지만 두드려 쪼개면 결대로 거칠게 갈라지는데, 그 넓어진 거친 면으로 양념이 더 잘 스며들기 때문인 듯하다. 여러 번 먹어 본 호박볶음인데도 그날은 유난히 맛있더라. 칼 대신 방망이를 쓰는 낯선 손질법보다, 익숙한 재료에서 이런 맛이 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호박의 단맛이 입안에 남아 있던 그때, 문득 폴란드 텃밭이 떠올랐다. 주재원으로 지내던 시절, 집주인이 사용하던 텃밭을 우리 부부가 가꾸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호박씨를 비롯해 마늘과 양파, 가지, 청양고추 등을 심었다. 바람결에 씨앗이 날아왔는지 부추도 저절로 자랐다. 작은 텃밭이었지만 직접 키운 채소를 수확해 식탁에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호박은 꽃이 시들고 나면 그 밑에 달린 작은 열매가 맺히는데, 그것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느새 손에 잡힐 만큼 자란 호박을 하나씩 따서 식탁에 올렸다. 아내는 그 호박으로 볶음을 만들고, 된장찌개에도 넣고, 때로는 호박전까지 부쳐 주곤 했다. 먼 외국에서 직접 키운 호박으로 익숙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즐거움은 남달랐다. 지금도 호박을 떠올리면 텃밭의 풍경과 함께 아내가 차려 주던 그때의 식탁이 생각난다.


농사에 재미가 붙자 텃밭을 조금 더 넓혔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배추씨를 뿌렸다. 며칠 뒤 새순이 올라와 흐뭇했는데, 다음 날 아침 텃밭에 나가 보니 새순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밤사이 민달팽이들이 모조리 먹어 치운 것이다. 다시 씨를 뿌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배추 농사는 포기했지만,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다.


학원에서 배운 호박볶음도 집에서 다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수업에서는 길쭉하면서 끝이 굵은 노지 호박을 사용했다. 같은 호박을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아, 시장에서 둥근 호박을 사 왔다. 모양은 달라도 배운 방법으로 호박 새우젓 볶음을 요리해 보기로 했다.


호박을 방망이로 두드려 먹기 좋은 크기로 쪼갠 뒤, 채소와 새우젓을 넣고 들기름에 볶았다. 이어서 다시마 우린 물과 양념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 마무리했다.






# 재료


둥근 호박 1개(570g), 양파 1/2개, 대파 1/2개, 청양고추 2개. 홍고추 1개, 새우젓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시마 우린 물 200ml, 양념(고춧가루 2큰술, 진간장 1큰술), 들기름 3큰술, 통깨 1큰술



# 요리 과정


호박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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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큼직하게 토막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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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로 호박을 적당히 두드려 거칠게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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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로 쪼갠 호박은 큰 조각을 손으로 다시 나누어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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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는 채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썰며, 마늘은 다지고 고추는 송송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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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을 분량대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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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와 진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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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를 우린 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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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에 호박, 들기름(2큰술), 채 썬 양파, 대파, 다진 마늘, 새우젓을 넣고 중불에서 약 3분간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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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 우린 물과 양념을 넣고 뚜껑을 덮어 센 불에서 약 10분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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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1큰술)과 통깨를 넣고 가볍게 섞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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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호박 새우젓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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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본 호박 새우젓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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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호박볶음은 모양이 투박했지만, 은은한 단맛과 새우젓의 감칠맛이 잘 어울렸다. 큼직하게 쪼갠 호박을 씹을 때마다 촉촉한 수분이 느껴졌고,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늘 먹던 평범한 반찬이지만, 손질하는 방법 하나만 달리해도 새로운 음식처럼 느껴졌다.


폴란드에서는 호박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직접 호박을 손질하고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호박은 여전히 우리 식탁에 오르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이번에는 아내가 한 입 먹어 보더니 "너무 맛있네" 하며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오늘 만든 호박 새우젓볶음에는 폴란드 텃밭의 추억과 요리학원에서 새롭게 배운 맛이 함께 담겨 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