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치졸했고, 꽤 즐거웠다
사람은 참을 수 있는 만큼만 참아야 한다.
너무 오래 메마르면 단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못하고 결국 홍수가 난다.
수평적인 문화, 평등한 조직. 요즘 회사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말이다. 영어 이름을 쓰고,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고, 직급 대신 역할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평적인 문화를 강조해도 회사라는 공간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회사의 상하관계는 나이나 경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평가와 승진, 연봉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위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래가 된다. 문제는 그 권력을 가진 사람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실수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때로는 어리석게도 자신의 힘을 과하게 사용한다.
경험이 많이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사실을 근거로 말하고, 감정을 배제하고, 업무로만 설득하는 것.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아니 그런 순간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 안 통하는 벽에게는 ‘균열’이 필요하다. 그럴 때 내 안의 장난꾸러기가 깨어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존을 위한 ‘광기’가 발동된다. 나는 착한 사람보다 미친 척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초대받지 않은 작은 손님들
나의 작은 반격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A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명확히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특정 학교 출신 직원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일을 못해서라면 차라리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할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그 무력감에 사로 잡혀 탕비실에서 죄 없는 녹차티백만 물고문시키고 있었다. 그때 내 눈앞에 작은 초파리들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그 순간 나는 분풀이를 하기로 결심했다.
회사 내 생태계에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들어서.
때는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나는 아침으로 매일 바나나를 먹었다. 그리고 후숙 하여 검은 슈가 스폿이 올라온 바나나 껍질을 그녀의 휴지통, 그녀의 창문 옆에 고이 모셔두었다. 곤충의 본능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즉시 A의 모니터 주변에는 작은 초파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손을 휘저으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사무실 청소를 하는 거야?"
"화분에 뭐 음료 부었니? 왜 이렇게 사무실에 초파리가 많아"
평소 A의 목소리는 까랑까랑하고 신경질적이었으나, 그날만은 청량한 사이다 같은 톡 쏘는 소리로 내게 시원함을 주었다. 나는 1주 넘게 성실히 그녀에게 초파리를 배달시켰고, 그 복수의 끝은 발각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반란에서 찾아왔다.
용서, 화해 같은 거창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미각의 항복이었다. 바나나가 너무 지겨워진 내 미각이 제발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아우성쳤기 때문이다.
향기는 때로 가장 조용한 복수가 된다
A에 대한 복수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이렇게 창의적이고 의욕 넘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복수를 계획하자마자 내 눈은 에스프레소를 마신 듯 번쩍번쩍 뜨였고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신상품 향수 샘플이 도착했던 날이었다. 테스트를 해본 순간 알았다.
'아… 겨울 장사는 망했구나.'
너무도 묵직하고 진한 향이었다. 문제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묵직하고 달큼해서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았다.
이 상품으로 매출로 히트를 칠 수 없다면, 내 심장이라도 두근거리게 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A의 자리에서 테스트했다.
사실 조금 과하게.
솔직히 그냥 들이부었다.
복귀한 A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향이야?”
나는 준비한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부장님, 신상품 나와서 테스트해 봤습니다. 한번 테스트해 보시겠어요?”
친절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장난. 나는 그녀의 외투 주변에도 친히 뿌려주는 불필요한 친절까지 베풀었다.
얼마 뒤 A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이번 거 향이 너무 강한데?”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A 덕분에 여러모로 나도 머리가 아플 일들이 있었는데, A도 아프다니 이것이 정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통으로 진통제를 찾는 A의 모습에 내 가슴은 소화제로 샤워를 한 듯 상쾌해졌다.
한 입만 금지
온라인 게임인들에게 점심시간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점심 한 끼 덕분에 퇴근까지 버틸 수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즐거운 식사 시간마다 꼭 같은 말을 하는 상사 B가 있었다.
"나 한 입만 먹어볼게."
주변에서는 "그만 뺏어 먹으세요."라며 핀잔을 줬지만, B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 친구 양 적어서 다 먹지도 못해요. 맛만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한두 번은 참았지만 반복되니 이 작은 불편들이 곧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볶음밥을 먹던 B가 내 물냉면에 숟가락을 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순간, 내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기름이 둥둥 뜨는 물냉면을 보며, 나는 영화 테이큰의 주인공에 버금가는 분노를 느끼고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다.
나는 20대에 캡사이신 액상을 소분하여 가지고 다닐 정도로 매운맛에 중독되어 있었다. 원래는 여럿이 함께 먹는 점심자리에는 가져가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혹시 내 음식을 지켜 줄 방패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고 주머니에 넣어 나갔다. B는 내가 음식에 캡사이신을 추가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도 한번 먹어볼래.”
나는 조용히 캡사이신을 건넸다.
“이 정도면 돼?”
그가 물었고, 나는 말했다.
“편하신 만큼 넣으세요.”
그는 한 숟가락을 듬뿍 넣었다. 마음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에게 스트레스받았던 나의 미식 세포들이 광복을 맞이한냥 환희의 소리 질렀고, 내 이성은 들썩거리는 어깨를 억누르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한입 먹은 순간.
“악! 너무 매워!! 이거 매운 게 아니라 쓴데?”
"새 거 시키실래요??"
"아니야 점심값 두 번 나가잖아"
그는 음식값을 아끼기 위해 건더기들을 다 비웠고, 식사를 마친 후 우유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내 그는 나 때문에 속 쓰려 죽겠다며 핀잔을 연발했지만 나는 해맑게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차장님이 직접 넣으시고, 돈 아깝다고 다 드셔 놓고 왜 제 탓을 하세요"
오후 내내 위장을 부여잡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그의 위장은 타들어 가고 있을지언정, 스트레스로 뒤틀렸던 내 위장은 이보다 더 편안할 수 없다는 것을.
복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이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유치했고, 어른스럽지도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 시절의 나는 어렸고 약했고 너무 오래 참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고상한 존재가 아니다. 그 작은 장난들은 누군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복수라기보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가뭄이 길수록 홍수는 깊다고 했던가. 사람 마음도 땅과 비슷하다. 너무 오래 메마르면 단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못하고 결국 홍수가 난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메마르고 갈라지기 전에 참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작은 장난. 작은 균열. 작은 반항. 그것들이 나를 나답게 버티게 했다. 착한 사람은 너무 오래 참다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장난꾸러기는 어설픈 방식으로라도 자기 마음을 지켜낸다.
당신은 너무 오래 참고만 있던 사람인가?
그렇다면 당신 안의 장난꾸러기가 깨어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