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에 대한 거부, 영원에 대한 갈구

<지구 최후의 밤> 리뷰 및 해석 下

by조종인

2부: 욕망이 현현된 영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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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기억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는 가짜라는 것이다.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가짜세계. 하지만 기억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채 수시로 눈앞에 떠오른다.


<지구 최후의 밤>의 1부가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을 흩뿌려 놓는 파트였다면, 2부는 그 파편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조합되는 공간이다. 1부에서 2부로 이어지는 흐름은, 창작자들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현실 혹은 꿈의 세계에서 겪은 경험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주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그렇기에, 2부에서는 등장하는 몇몇 새로운 인물들에게, 관객들은 기시감을 느낀다. 1부에서 언급되었던 몇몇 대사들,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보았던 몇 가지 이미지들이 그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뤄홍우가 갱도에서 만나 탁구를 친 소년. 뤄홍우는 그 소년을 '꼬마 백묘'라 부른다. 그는 완치원과 뤄홍우의 사이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연상시킨다. 그 아이가 성장하여 뤄홍우에게 탁구를 배웠다면, 그 소년처럼 되지 않았을까? 뤄홍우가 '자몽 가라오케' 근처에서 만난 카이전이라는 여자는 완치원과 똑 닮은 외견을 가지고 있다. 완치원의 바카라에 나와있던 '방의 회전' 또한, 극의 마지막에서 카이전과 함께 나타난다. 그녀가 완치원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카이전의 머리색은 빨간색이라는 것, 그리고 그 머리색 때문에 더더욱 뤄홍우의 어머니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극의 후반부에서 뤄홍우가 만난 '미친 여자'도, 여러모로 뤄홍우의 어머니와 비슷한 점이 많다. 빨간색 머리에, 횃불을 들고 있고, 어린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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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2부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뤄홍우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과 닮아있다. 1부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영화 속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곳은 그의 욕망이 현현된 하나의 '비현실'이다. 이 욕망은 인물뿐 아니라 사물의 형태로도 드러난다. 2부에서 뤄홍우가 먹는 빨간 사과는 그의 기억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심볼이다. 빨간색은 그의 어머니의 머리색이자, 완치원을 닮은 여자 카이전의 머리색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씨앗까지 사과를 삼키는 그의 행위는, 기억을 떼어내지 않고 끝까지 자기 안에 붙잡아 두려는 욕망, 다시 말해 기억과 영원히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충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 비현실의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미지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이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현실을 닮아있으면서도, 결코 현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바로 소년 ‘꼬마 백묘’다. 1부에서 언급되었듯, 완치원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의 세계에서 현실의 제약은 더 이상 결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렇기에 꼬마 백묘는 뤄홍우와 완치원의 아들일지도 모를 모습으로, 아무런 모순 없이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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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치명적인 한계로도 작용한다. 현실과 닮아 있을수록, 이곳이 결국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 비현실의 세계에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이 찾아오고, 뤄홍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곧 끝을 맞이할 이 세계 속에서, 무력한 인간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다가오는 종말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 치는 것이다.



최후에 대한 거부, 영원에 대한 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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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에서 떨어져 깨지기 직전의 유리컵, 정지하기 전에 사라지는 광물 운반차, 구멍 속으로 들어가며 자취를 감추는 당구공, 그리고 도화선이 완전히 점화되어 폭발하기 직전의 폭죽까지. 얼핏 보기에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 장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사물의 정지, 다시 말해 ‘최후’의 순간이 끝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 세계는 뤄홍우의 욕망이 현현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러한 이미지들의 방향성은, 이 세계의 종말을 거부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과 분명하게 맞닿아 있다.


뤄홍우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목시계를 건네주자, 카이전은 시계가 영원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카이전이 뤄홍우에게 꽃이 달린 폭죽을 건네고, 뤄홍우는 폭죽이 잠깐을 의미한다고 답한다. 그는 시계가 상징하는 것처럼 이 세계가 끝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세계는 그의 바람과 달리, 언젠가는 폭발해야만 하는 폭죽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뤄홍우는 발버둥 친다.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세계의 종말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고 그 염원은 이 세계에서 사물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하나의 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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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의 2부는, 1부의 사건들을 모두 통과한 뤄홍우라는 인물이 죽기 직전 떠올리는 주마등과도 같다.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어머니, 백묘, 완치원—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갔다. 반복되는 상실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린 그의 세계, 그의 지구는 마침내 최후의 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뤄홍우는 최후를 거부한다. 살고자 하는 자의 마지막 발버둥,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망가져 가는 세계에 대한 거부의 몸짓, 그 숭고한 움직임이 몽환적인 이미지가 되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었다. 종말을 거부하는 한 남자의 염원이 그대로 담긴 이 영화는, 그 염원대로 우리의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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