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 <지구 최후의 밤>

<지구 최후의 밤> 리뷰 및 해석 上

by조종인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제목에 대한 단상


당신은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제목을 듣고 무엇을 떠올렸는가? 필자는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투모로우>, (2012)와 같은 지구 멸망 재난물. 두 번째는 종말을 앞둔 마지막 밤, 그 절박한 순간에 모든 것을 불태우듯 사랑하는 뜨거운 로맨스물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최후의 밤>의 스토리는, 이 두 가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맴돌고 있기는 하나 지구가 멸망을 앞둔 상황도 아니고, 로맨스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불을 질러주기는커녕 아리송한 흐름을 통해 전개되다 두통을 앓게 할 뿐이다. 실제로 영화 홍보팀은 작품의 실제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일부 러브스토리 장면만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고수했다. 그 결과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홍보했던 것과 실제 내용이 다르다”라는 불만이 커졌고, 부정적인 입소문이 퍼지면서 흥행 실적도 첫날 이후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 최후의 밤>은 실제로 어떤 영화이고,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까? 일단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제목을 먼저 들여다보자, 이 말은 '지구 최후'라는 수식어와 '밤'이라는 피수식어의 결합이다. 이 영화에서 '밤'이라는 명사는 곧 '꿈'과 직결된다. 또한, '지구 최후'라는 수식어는 '끝', 혹은' 종말'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이 조합을 그대로 따라가면, 제목이 말하는 바는 결국 ‘종말의 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종말’이 가리키는 것이 꿈의 내용이 아니라 꿈이라는 상태 자체라는 것이다. 즉, ‘세상이 멸망하는 내용의 꿈’이 아니라,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에 놓인 꿈'을 지칭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구 최후의 밤>은 위태로운 꿈의 세계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다. '뤄홍우'라는 남성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1부는 이 남자의 꿈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인 세계, 2부는 1부의 설정과 이야기들이 변주되어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다.



1부) 꿈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


그 여자만 나타나면 난 알 수 있다. 또 꿈속이라는 걸.
사람은 그게 꿈인걸 알면 유체 이탈처럼 영혼이 떠다니는 걸 경험한다.


1부에서는 뤄홍우라는 남자의 기억 파편들이 산발적으로 떠오른다. 이 파트에서는 그 기억 파편 중 중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이 파편들은 서로 맞물려 어떠한 의미를 창출해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혀 맞물리지 못하고 따로 놀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파편들 간의 연결성 혹은 관계가 아니라, 이 파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 당장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 파편들은, 2부에 들어가면서 의미를 부여받은 뒤 새롭게 태어난다.


*작품 전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거나, 2부에서 다시 나타나는 키워드들은 진하게 표시하도록 하겠다.


[1]

뤄홍우(황각)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고향인 카이리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를 떠나간 어머니, 조직의 보스 '줘홍위안', 그리고 그와 연루되어 죽음을 맞이한 옛 친구 '백묘' 등, 기억의 파편들이 끝내 맞춰지지 않은 채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노름빛을 피해 도망 다녔던 뤄홍우의 친구 백묘, 그는 줘홍위안에게 사과를 팔 생각이었다. 백묘의 시체는 갱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뤄홍우는 부패한 사과더미를 치우다 총을 발견한다.



[2]

낡은 건물 속에 있는 뤄홍우, 전등을 켠다. 건물 안에 있는 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뒤를 열어봤더니 사진이 하나 있다. 구멍 난 사진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여있다.


[3]

기차에서 백묘의 영혼을 보게 된 뤄홍우는 환각에 시달리고, 그날부터 백묘의 흔적을 뒤쫓게 된다. 그는 단서를 잡기 위해, 줘홍위안의 애인 '완치원(탕웨이)'을 미행하게 된다.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채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여자를 보면서, 뤄홍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녀가 화장한 모습이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뤄홍우는 그녀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줘홍위안이 있는 곳을 캐묻지만, 그녀는 모른다고 답한다. 완치원에게서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뤄홍우는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니고, 일전에 있었던 난폭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자 한다. 그러자 완치원은 사과하고자 한다면 '자몽'을 가져다 달라고 말한다.



[4]

영화는 느닷없이 뤄홍우와 완치원의 키스 장면으로 전환된다. 뤄홍우는 사진에 쓰여 있던 전화번호의 주인을 알아낸다. 그 전화번호는 현재 교도소에 있는, 완치원의 옛 친구의 것이었다. 뤄홍우는 완치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완치원이 준 초록색 바카라을 들고 교도소에 있는 그녀의 옛 친구를 찾아간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둘은 15살 때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다고 한다. 밤이 되어 오랫동안 엿보던 집에 들어갔는데, 집을 뒤지던 중 느닷없이 주인이 돌아왔다. 둘은 허겁지겁 가장 값비싼 물건만 집어 들고 도망쳤고, 그때 완치원이 챙긴 것이 바로 그 초록색 바카라이었다. 바카라은 내용이 반쯤 비어 있는 연애소설이었고, 완치원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 했다고 한다. 장면은 다시 전환되고, 완치원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이어진다. 그녀는 그 바카라에 적힌 주문을 외우면 애인의 집이 회전한다고 말한다.



[5]

다시 만난 완치원과 뤄홍우. 잠깐 점화했다가 다시 꺼지는 라이터, 창문 속에서 흐릿하게 비췄다가 다시 선명하게 나타나는 뤄홍우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완치원은 사내아이를 임신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운동선수가 될 것 같다고 말하고, 뤄홍우는 '아이에게 탁구는 내가 가르쳐줄 수도 있다'라고 답한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완치원은 아기를 지워버렸다고 말한다. 줘홍위안이 카이리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에, 아기를 가진 채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어서 그녀는 "우주가 아닌 이상 우리는 함께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뤄홍우는 "친구 한 명이 미얀마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으니, 밤새 짐만 정리하고 나면 바로 출발하자"라고 답하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시끄럽게 기차 소리가 들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앞에 놓인 식탁을 비춘다. 물컵이 진동하면서 바카라상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물컵이 가장자리까지 이동해 낙하하기 직전, 갑작스러운 컷 전환으로 인해, 물컵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6]

뤄홍우의 두 손이 묶인 채로 천장에 매달려 있다. 흰 셔츠와 흰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자가 애절하게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남자는 갑자기 뤄홍우에게 마이크를 내민다. 그리고 남자는 같은 공간에 있는 완치원에게 걸어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는다. 그 후, 그녀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댄다.


>> 너무나 뜬금없이 삽입된 이 장면은 1부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순간이다. 앞뒤 장면과의 연결 고리가 거의 없고, 2부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기에 혼란은 더 커진다. 다만 흰 셔츠와 흰 중절모를 쓴 남자를 조직의 보스이자 완치원의 연인이었던 ‘줘홍위안’으로 본다면, 이 장면은 뤄홍우의 심리에서 비롯된 환상 혹은 악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줘홍위안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완치원이 갑자기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만들어낸 심리적 이미지인 것이다.


[7]

다른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벌어졌던 두 가지 일을 번갈아 보여준다. 먼저, 한 여관 주인에게 완치원에 해 물어보는 뤄홍우가 나타난다. 이 여관주인은 완치원의 전 남편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완치원의 교묘한 화술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의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이 남자는 완치원이 자신에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다른 시간대, 또 다른 장소에서 잠수해 있던 뤄홍우가 물 밖으로 올라온다. 그는 치원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상담한다. 실패를 걱정하는 뤄홍우에게, 치원은 "극장 안이 어두컴컴해서, 당신이 영화 속 살인자와 동시에 총을 쏘면, 사람들이 영화라고 착각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 꿈과 무의식, 현실이 마구 뒤섞여있는 이 영화의 특징을 고려할 때, 뤄홍우가 잠수해 있던 '물'은 그의 꿈 혹은 무의식을 나타내는 장치로 보인다.


[8]

한 남자가 광물 운반차를 몰고 있다. 운반차 안에는 한 남자가 이마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고, 철로에는 스페이드 A 카드가 떨어져 있다. 철로의 끝에 다다르자, 화물차는 저편으로 떨어진다. 추락한 화물차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은 채, 영화는 다음 장면으로 전환된다.


[9]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뤄홍우. 그녀는 '치원의 주위에 남자가 엄청 많으니 조심해'라는 경고를 날린다. 그 이야기를 들은 뤄홍우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가 그러는데, 횃불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우면 꿀벌들이 흩어진대.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 마음이 허전했는지, 사과를 먹더라고. 엄마가 그랬지.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과의 가운데 부분까지 통째로 다 먹는다고.

이 대사와 함께, 한 남자가 사과를 통째로 다 먹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여성은 "네 엄마라면 어떤 색으로 염색했을까?"라고 뤄홍우에게 물어보고, 뤄홍우는 '빨간색'이라고 답한다.


[10]

그 영화 제목이 뭔지 모르겠다. 그 초록색 바카라을 그 여자가 줬는지, 벽 위에서 잊은 건지, 그것도 가물가물하다. 확실한 건 내가 누수된 방에 들어갔을 때, 그 여자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방을 회전시킨다는 그 주문을 가슴속 깊이 기억했다. 하지만, 방이 진짜 회전한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영화관. 앞 좌석의 뒤에서 총을 장전한 뤄홍우. 그가 방아쇠를 당겼는지는 나오지 않은 채, 벽화에 난 구멍을 들여다보는 뤄홍우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11]

다시 영화관이다. 3D 안경을 쓰는 뤄홍우. 영화관 내부가 암전되고,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이제 1부는 막을 내리고, 2부의 막이 오른다.


2부의 해석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참조 : https://kr.people.com.cn/n3/2019/0104/c414430-9534853.html


해당 글은 '씨네필카지노 게임'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746)


이미지 출처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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