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보다 운동화 끈을 먼저 묶는 이유
“신체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의무다.
그러지 못하면 마음을 건강하고 맑게 할 수 없다.”
- 붓다
재테크는 결국 멘탈 싸움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 봤을 거다. 그런데 그 멘탈이라는 게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해야 멘탈도 단단해진다.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눈이 떠진다. 창밖은 아직 어슴푸레하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현관에 쪼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조인다. 문을 열면 푹신한 바닷바람이 훅 끼쳐 온다. 동이 트려는 하늘은 부지런히 색을 바꿔 가며 오묘한 빛을 낸다.
바닷가 초입에 도착하면, 이미 몇몇이 모여 몸을 풀고 있다.
“좋은 아침! 오늘도 하늘이 장난 아니게 예뻐요.” 크루원 한 명이 팔을 휘휘 돌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나온 지 5분 만에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나도 웃으며 발목을 돌렸다.
“자, 몸풀기 체조 시작하겠습니다!”
“천천히 출발할게요. 오늘도 기록보다는 즐겁게 달리는 게 목표!”
누군가 먼저 걸음을 떼면, 나머지도 하나둘 그 뒤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파도 소리와 발소리가 뒤섞이는 순간이다.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2킬로 지점의 돌하르방 두 개를 지나고, 3.5킬로 지점의 빨간 등대를 지나, 컨디션이 좋은 날은 5킬로 지점 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숨이 조금씩 가빠질수록 머릿속은 서서히 맑아진다. 뛰는 동안엔 어제 걱정했던 일도, 오늘 해야 할 일도 잠시 뒤로 밀려난다. 발이 땅에 닿았다 떨어지는 감각,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만 남는다.
또 하나의 명상이다.
크루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1년이 됐다. 새벽 정기 모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처음엔 5킬로도 헉헉대며 겨우 뛰었는데, 어느새 대회에 나가 10킬로를 세 번, 하프코스를 세 번 완주했다. 결승선이 눈앞에 다가오던 순간의 그 벅찬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년엔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매주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고 있다.
달리기를 나가지 않는 아침이면, 휴대폰 화면 너머로 온라인 근력 운동 모임 사람들과 만난다. 거실 한쪽에 매트를 깔고, 화면 속 리더의 구령에 맞춰 스쿼트를 세고 플랭크를 버틴다. 팔이 후들거리고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도,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몸을 쓰는 데 온전히 집중하는 그 순간이 좋다.
짬이 나는 날엔 요가원으로 향한다. 매트 위에서 천천히 몸을 늘이다 보면, 이리저리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쌓이면서, 신기하게도 마음이 달라졌다. 예전엔 뉴스에 금리 얘기 하나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요즘은 그 소식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 육지에서 친한 친구가 놀러 왔다. 카페에 마주 앉자마자, 친구는 한숨부터 쉬었다.
“너 요즘 무슨 경제 스터디 같은 거 한다며? 나 요즘 진짜 답답해. 재테크를 뭐부터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 좀 어떻게 해 줘봐.”
“얘는, 다짜고짜 무슨 말이야?”
“다들 이것저것 해서 돈도 벌었다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그래서 뭐라도 시작은 했어?”
“아는 언니가 주식을 좀 하는데, 어떤 종목이 좋다길래 얼떨결에 따라 샀거든. 근데 솔직히 그게 무슨 회사인지도 잘 몰라. 가격이 떨어지면 괜히 그 언니가 원망스럽고… 이게 맞나 싶어.”
친구가 씁쓸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 마음, 너무 잘 안다. 남의 판단으로 시작한 투자는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까지 흔든다. 오르면 내 덕이지만 떨어지면 그 사람 탓. 그러는 사이 정작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너는 뭐부터 했어?” 친구가 물었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가계부, 연금저축, 적립식 투자… 떠오르는 게 여럿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눈앞에 그려진 건, 새벽의 그 바닷길이었다.
“음… 나는 운동부터 했어.”
“뭐? 재테크 얘기하다가 웬 운동?”
친구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야. 재테크보다 먼저 챙길 게 있더라. 체력!”
친구는 어이없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몸이 지치면 마음이 먼저 조급해진다. 마음이 단단해야 생각이 유연해지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도 생긴다. 시장이 흔들릴 때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는 여유도, 결국 그 단단한 마음에서 나온다. 유연한 생각, 나를 다스리는 힘,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 투자에 꼭 필요한 이것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몸에 닿는다.
언젠가 짧은 영상을 보다가 이런 문구를 만났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가장 먼저 체력을 길러야 한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면, 가장 먼저 체력을 길러야 한다.
생각으로 생각을 잡을 수 없고, 마음으로 마음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둘을 다스릴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마라톤과 투자는 참 닮았다. 처음부터 풀코스를 뛰는 사람은 없다. 5킬로에서 10킬로로, 10킬로에서 하프로,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야 언젠가 완주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큰돈을 만들겠다고 무리하게 뛰어들면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지만, 내 호흡대로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어느새 처음엔 상상도 못 했던 거리까지 와 있다.
내일도 새벽 다섯 시면 알람이 울릴 것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몸을 일으켜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일 것이다. 재테크는 그 다음이다. 통장 잔고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어쩌면 내일 아침에도 나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갈 튼튼한 두 다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