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요! 오하이오~
“오하요 고자이마스.”
일본 쪽 일을 하는 사무실에서는 아침마다 이런 인사가 오간다. 특별할 것 없는 출근길의 인사. 나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어떤 때는 똑같이 “오하요 고자이마스~” 하고,
어떤 때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을 건넨다.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저 인사말이 들릴 때마다 난 꼭 노래 한곡이 떠오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Ohio〉. 청량하게 늘어지는 그녀의 "오하이오~" 하는 부분 말이다.
이 노래를 처음 만난 곳은 프랑스도 미국도 아닌 우리 집 거실, TV앞이었다. SBS에서 1995년부터 2016년 초까지 무려 20년 넘게 방송되었던 연예정보 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
여자 진행자는 자주 바뀌었지만 남자 진행자는 후일 국회의원도 한번 하게 된 유정현 씨가 꽤나 오랜 시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정현&이소라 콤비로 진행을 할 때, 신동엽 씨 인터뷰가 나와서 서로 난처해 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기억도 잠시 스친다 (그때는 신동엽&이소라 커플이 헤어진 뒤였는지라).
〈Ohio〉는 바로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흐르던 배경음악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이자벨 아자니가 부른 노래인 줄 몰랐었다. 그냥 늦은 밤 시작하는 연예 보도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던 소리였으니. 뜻에는 관심 없이 소리만 있는 채로, 그렇게 기억에 눌러앉은 곡이다.
이 노래는 그녀가 1983년에 발표한 샹송으로 그녀의 유일한 정규 앨범인 《Pull Marine》의 수록곡이며 프랑스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세르주 갱스부르가 작사, 작곡을 했다고 한다. 《한밤의 TV연예》의 시그널(오프닝) 음악으로 쓰인 독특하고 신비로운 도입부 때문에 마성의 BGM으로 꼽혔으니,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나는 익숙한 곡일 것이다.
밝은 멜로디와 청량한 이자벨 아자니의 보컬이 인상적인 이 곡은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국내 청취자의 특성상 곡 자체로서는 회자되거나 평가받기 힘들겠지만, 이 곡 역시 내용 자체는 세르쥬 갱스부르 특유의 암울한 가사로 구성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절망적인 상태로 미국 오하이오주로 가고 있는 화자가 별의별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오하이오', '네바다', '콜로라도' 등을 언급하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싶은 공허하고 지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본어 인사와 영어 지명과 프랑스 여배우의 노래,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세 가지가 내 머릿속에서는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오하요"라고 누가 말하면 "오하이오"가 따라 나오고, 그 뒤로 그 프로그램의 오프닝 화면이, 그 시절의 밤이 딸려오는 것이다. 아침 인사 한마디가 오래 전의 한밤을 불러오는 셈이랄까.
일본어 인사와 미국의 지명과 프랑스어 노래와 한국의 밤. 지도 위에 얹어 놓으면 멀기만 한 것들이 내 귓속에서는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오하요’와 ‘오하이오’ 사이, 그 짧은소리의 틈만큼.
사실 의미를 따지자면 새롭게 맞은 아침에 상대를 맞이하며 “안녕, 오늘도 화이팅!” 하듯이 반갑게 인사하는 “오하요”와, 절망적인 상태의 일상에서 도망치며 지친 마음을 표현하는 ’오하이오‘는 오히려 매칭이 되지 않는 정 반대의 맥락이자 상황인 것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말을 뜻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소리로도 기억한다. 소리로만 저장된 기억은 언어를 가리지 않는다. 뜻과 의미의 국경은 너무나 엄밀한데, 소리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손쉬이 넘어 다닌다.
그렇기에 우리가 의미를 모르는 다른 언어의 음악도 그 노래가 발산하는 감성에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일 게다. 가사의 뜻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어떤 발음들은 먼저 귓가에 머무니 말이다. 목소리가 둥글게 감기는 부분, 한 음절을 길게 끌다가 내려놓는 부분, 마법의 주문같이 리듬감이 심장을 뛰게 하는 부분,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이상하게 따라 하고 싶은 부분.. 뜻을 모르던 시절에도 우리는 그 노래를 좋아했다. 나중에 가사를 알고 나서, 내가 이렇게 쓸쓸하고 슬픈 노래를 흥겹게 흥얼거리고 있었구나 놀라기도 했더랬다.
남의 말이나 노래를 듣다가 엉뚱한 내용이 들리는 ‘몬더그린 효과(Mondegreen Effect)’라는 것도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소리의 일부나 전부가 전혀 다른 의미의 친숙한 말로 들리는 청각적 착각은 우리의 뇌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리 정보를 익숙한 정보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셀린 디옹의 'All by Myself'를 '오빠 만세'로 듣거나, 'Who let the dogs out'을 '우울할 때 똥 싸'로 듣거나 말이다.
외국어에 대한 이해 부족, 연음, 부정확한 발음, 좋지 않은 음질 등으로 인해 본인이 알고 있는 다른 발음으로 들리는 경우는 특히 외국어 발음의 일부 또는 전부가, 듣는 이의 모국어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일종의 현상을 일컫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민요의 가사 "and laid him on the green(그를 풀밭에 눕혔네)"을 "and Lady Mondegreen(몬더그린 아가씨)"으로 잘못 들었다고 밝힌 미국의 작가 실비아 라이트(Sylvia Wright)의 에세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리는 굳이 뜻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때로는 아주 오래 머문다. 이처럼 뜻이 닿지 않아도 소리가 닿으면 이어지는, 아니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하는 우리의 뇌는 참 약아빠졌으면서도 어찌 보면 순진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야바위꾼에게 잘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한 구경꾼이랄까.
우리 뇌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해 왔을 터, 난 그 순진함이 마음에 든다.
뜻은 늘 따지고 가른다. 이건 일본어고 저건 영어이고, 이건 인사말이고 저건 지명이다.. 그렇지만 소리는 까탈스럽게 묻고 따지지 않는다. 대충 비슷하면 그냥 손을 잡는다. 그래서 어떤 노래는 가사를 하나도 모른 채로도 평생 우리의 곁에 남고, 어떤 외국어 단어는 뜻보다 먼저 어떤 저녁을 데려온다.
일본 쪽 일을 하게 되면서 일본어를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은근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지도 못한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는 중이다.
나 빼고는 모두 일본어를 잘하기에 꼭 일본에 가 있지 않더라도 종종 느낀다. 언어가 바뀌고, 억양이나 존댓말의 결이 바뀌고, 어딘가 다른 시공간이 흐르는 듯한 감각을.
그 사이에서 "오하요"란 인사말은 이상하게 나를 붙든다. 그 한마디를 들으면 잠깐, 아주 잠깐, 파리의 노래를 지나 한국의 어느 밤으로 다녀오게 된다. 아침에 다녀오는 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번역기를 돌린다.
발음의 유사성이란 게 이렇게나 힘이 세다. 아무런 관계없는 세 나라와 시간대를 한 줄에 꿰어서, 사무실 바카라상 앞에 앉은 사람을 잠시 다른 곳에 데려다 놓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붙들고 있는 기억의 상당수가 이런 식일지도 모르겠다. 정합한 논리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비슷한 소리로, 비슷한 냄새로, 비슷한 느낌으로 이어진 것들. 뜻이 사라진 뒤에도 소리는 남아서, 어느 날 아침 문득 우리를 부른다.
내일 아침에도 누군가 "오하요 고자이마스" 하고 인사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속으로 "오하이오" 하고 답할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잠깐,
과거의 한 밤으로 다녀오면서.
난 오하이오 주 근처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바닥이야
난 오하이오 주 근처에 있는 것 같아
서서히 네바다 주에 다가가고 있어
도망치고 싶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어
난 오하이오 주 근처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바닥이야
난 오하이오 근처 주에 있어
콜로라도에서 길을 잃었어
나를 뗏목에 태워두고 떠났어
엘도라도를 찾을 줄 알았는데
난 오하이오 근처 주에 있어
기분이 바닥이야
난 오하이오 근처 주에 있어
매사추세츠에서 억지로 걷고 있어
양말 옆으로
머릿속에 작은 황금 딱정벌레가 있어
난 오하이오 근처 주에 있어
기분이 바닥이야
난 오하이오 근처 주에 있어
유타에 가면 어떤 상태가 될까
그건 말하지 않을 거야
멍한 상태, 난 온통 뒤죽박죽이야
난 오하이오 근처에 있는 상태야
기분이 바닥이야
난 오하이오 근처에 있는 상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