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비토요 사요나라 (恋人よ さようなら)

사요나라가 뭔지도 모르고, 사요나라를 불렀었지

by자크슈타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던 노래가 있다.

정확히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틀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언어를 알기 전에 멜로디가 먼저 가슴에 울린다. 그런 곡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하지만, 오늘 얘기하고 싶은 노래로 나에겐 ’고이비토요(恋人よ)’가 그랬다.


라디오였을까. 텔레비전도 아니었을 텐데. 아마 어딘가에서 누군가 녹음해 온 카세트테이프로 흘러나온 노래를 우연히 들었던 것이었을까.


‘고이비토요~ 소바니이떼~~

고이비토요~ 사요나라~~‘


처음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아주 어렸을 적, 뜻도 모르는 말을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들었었고, 그 후렴구 ”고이비토요, 사요나라~“는 그대로 내 몸 어딘가에 각인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그게 연인이라는 뜻인 줄도, 작별의 인사인 줄도 몰랐다. 다만 그 선율이 너무 슬프다는 것만은 느낌으로 알았다. 슬픔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였다.


‘恋人よ’.


우리말로 옮기면 ‘연인이여’,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여’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오래 기억하고 있던 그 후렴구는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는 안녕..”


이츠와 마유미(五輪真弓), 그녀가 1980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일본에서만 사랑받은 것이 아니었다. 바다를 건너, 당시 공식적으로는 닫혀 있던 이 땅의 담장을 넘어, 어느 골목의 전축과 어느 다방의 스피커와 누군가의 흥얼거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일본 대중문화가 법과 제도로 막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노래는 세관을 통과하지 않고, 검열을 거치지 않고, 그냥 사람의 귀에서 귀로 옮겨 다녔을 것이다. 금지된 것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스며든다.


이츠와 마유미의 낮고 굵고 어두운 목소리는 천천히 내려앉으며, 곡 전체에 늦가을 같은 공기를 풍겼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불고, 사람은 떠난다.


어른이 되어 가사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내가 흥얼거리던 그 구절이 실은 떠나간 사람을 부르는 말이었다는 것.

‘연인이여, 잘 가요‘ 라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을, 그런 오래된 종류의 말이었다는 것. 나는 이별을 겪기도 전에 이별의 노래를 먼저 배운 셈이었다. 선행학습이랄까.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아직 겪지도 않은 슬픔의 마음을 노래로 미리 체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에는, 한국 사람으로서 어떤 주저함이 늘 따라다녔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향한 우리의 감정은 아주 복잡 미묘하다. 그것은 오래된 역사이고,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또한 그 모든 것 위에 이 노래도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과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이 내 속에서 갈등하며 부딪히는 일. 그것은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이 두 마음을 합리화하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굳이 화해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노래를 사랑한다고 역사를 잊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기억하려 노래를 미워해야 하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츠와 마유미의 목소리에 실려 온 그 슬픔은 일본의 슬픔이기 이전에 인간의 슬픔이다. 누군가를 잃는 일, 계절이 무심히 돌아오는 일, 그럼에도 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일. 그런 것들에 국적이 있을 리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도쿄의 맛집을 검색하고, 오사카행 비행기표의 가격을 비교하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OTT로 보고, 일본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다.


한국 가수가 일본에서 노래하고 일본 가수가 한국에서 공연한다.


지금의 MZ세대에게 이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공식적으로 우리 곁에 들어올 수 없었다. 일본 영화도, 일본 노래도, 일본의 방송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일본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법과 제도가 허용했다고 그제야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기 스며들어 있었다고. ‘고이비토요’는 개방을 기다리지 않아도 금지의 시대에 이미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아와 있었고, 그렇게 수십 년을 보내왔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렇게 스며들었던 것이었다.


이제 나는 반백의 나이가 되어 다시금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 어릴 적 각인된 그 후렴구가 흘러나오면, 이상하게도 이별의 노래이지만 무언가가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시절의 골목, 그 시절의 공기,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의 나. 사요나라는 작별의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자꾸 불러 세운다. 떠나보내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사실 계속 붙잡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지나간 시간, 지나간 사람, 지나간 나 자신을 말이다.


난 일제의 침략의 역사,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경멸한다.

식민의 역사, 가혹한 수탈, 전쟁의 참화, 강제 징집, 전장에서의 성 착취, 필사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에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


하지만 난 일본 문화 특유의 어떤 정서도 좋아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

완전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태도,

말하지 않은 것을 한 구석에 남겨두는 마음..


봄날의 벚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가장 화려한 순간에 이미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감각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일본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자리가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단순하지 않다. 앞으로도 단순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복잡 미묘함을 그대로 안고 가려한다. 복잡한 채로 좋아하고, 복잡한 채로 기억하고, 복잡한 채로 흥얼거리는 것. 그것이 멀지만 이웃한 두 나라 사이에서 한 세기를 걸쳐온 노래를 대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 아닐까.


좋아한다는 것과 용서한다는 것이 서로 배치되는 일이 아니고, 기억한다는 것과 미워한다는 것 역시 함께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


난 일본의 어떤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치욕의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일본의 문학을 읽으면서도 식민지의 역사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오사카의 골목을 좋아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다 스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성숙이라는 것은 한쪽의 감정을 선택해 다른 한쪽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두 마음을 끝까지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동안 한국 문화도 일본으로 건너갔다. 욘사마의 겨울연가가 있었고, 보아가 있었고, 동방신기가 있었고, 지금의 BTS까지. 그리고 어느새 K-POP과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생각하면 묘하다.


한때 우리는 일본의 노래 한 곡을 듣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일본의 젊은이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른다.


문화는 결국 그렇게 국경을 넘어간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과 헤어진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친구와 헤어지고, 부모와 헤어지고, 한 시절과 헤어지고, 젊었던 시절의 나 자신과도 헤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이 오래 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이비토요를 들었던 어린 시절의 그 아이는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지 몰랐을 것이다. 사랑하게 될 사람도, 떠나보내야 할 사람도, 잃어버리게 될 것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어느 늦은 밤에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그 후렴이 들려오면,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출 것 같다. 그 뜻을 몰랐던 어린 날처럼, 다만 슬프고 아름다운 그 선율에 잠시 몸을 맡기고 싶기에.

사요나라를 배우기 전에 사요나라를 불렀던 어린아이는,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알면서도 여전히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さようなら (사요나라, 안녕)​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많은 사랑은, 언젠가 결국은 닥쳐올 이 말 앞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안녕…


그래도 한때 당신이 내 삶에 있어 주어 고마왔다고.

그것만은 잊지 않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