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쿵쿵쿵. 쿵쿵쿵.
갑자기 누굴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제수씨는 우산을 접지 않은 채 사무실 문 앞에 망연히 서 있었다. 들어오라고 말하기까지 나도 몇 초간 망설였던 것 같다. 그 몇 초 동안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오늘 여기로 찾아온 것이, 내게 건넬 이야기가 무엇일지.
두어 번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을까. 그녀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후배의 아내다. 그 후배와는 오래 알고 지냈고 종종 함께 술을 마셨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는 말은 때로 이상한 확신을 준다. 저 사람을 나는 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술이 조금 들어가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무슨 이야기에 웃는지. 그 정도쯤 알고 있으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안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법 유쾌한 사람이었다. 선후배를 잘 챙기기도 했고, 먼저 술값을 계산하는 날도 있었고,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평범하게 웃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는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아내와 어디에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줄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남편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그는 그랬다.
그 녀석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그래서 그의 집은 그의 웃음과 같은 온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남편으로 맞이한 제수씨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커피도 음료도 괜찮다는 제수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틀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소음과 함께 들려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았다. 볼륨을 올리자, 내가 아는 목소리가 너무나 낯선 온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안다고 믿어왔지만, 그 말들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 흔하고 뻔한 이별 이야기라면 굳이 나에게까지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은 시작이 아니었고, 중요한 일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우발적 발각에 가까웠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에 보여주기로 선택한 얼굴뿐인지 모른다.
예의바른 후배. 성공한 사람. 괜찮은 남편. 다정한 아버지. 유쾌한 친구..
슬롯라는 무대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자신을 연출한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는 그 연기를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어버린다.
그 사실이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서늘했다.
그녀는 오래 참았다고 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입시만 끝나면, 대학교에 입학하면..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저 멀리에 작은 깃발 하나를 꽂아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가보자. 겨우 그곳에 도착하면 조금 더 먼 곳에 또 하나를 세운다. 그러다 어느 날 돌아보면 십 년이 지나 있고, 또 어느 날 돌아보니 이십 년이 지나 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은 견디는 것일까, 용서하는 것일까. 한 사람을 위해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뒤로 미루는 것이 사랑일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며 너무 쉽게 말한다. 왜 진작 나오지 않았느냐고, 왜 그렇게 오래 참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짧은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아이가 있고, 돈이 있고, 부모가 있고, 두려움이 있고, 체면이 있고, 지나간 시간이 있고, 어쩌면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오래 전의 어떤 얼굴도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있다.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하면 괜찮아지겠지.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두는 것은, 어쩌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 작은 희망 때문에 사람은 때로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문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슬픔을 더 많이 느꼈다. 물론 후배에게 실망했다. 그것도 아주 꽤 많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동안 마음을 어지럽혔다.
함께 마셨던 술자리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웃고 있던 어느 밤, 혹시 누군가는 집에서 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잔을 부딪치며 건배, 하고 말했던 시간에 어떤 집에서는 누군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에게는 슬롯적 가면을 쓴 남이 보는 나의 얼굴과, 남이 보지 않는 나 그대로의 얼굴이 있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한다. 성인이 된 슬롯인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들은 뭐랄까, 술 한잔 하며 남의 이야기를 할 때 너무 흔하게 나와서 그 말의 실제 무게에 비해 현실에선 너무나 가볍게 오가는 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실제로 느껴보았다. 그것은 마치 거신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 감당하기 어려운 당혹감과 함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 쌓인 시간의 무게였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방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서 홀로 숨을 참으며 아이들을 키워낸 한 여인의 삶의 무게였다.
제수씨는 두 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자주 끊겼고, 자주 되돌아갔고, 자주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나는 그것이 두서없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무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순서를 잃는다. 그것은 계속해서 흐르던 강물이 아니라 꽉 막혀 쌓이던 고인 물이 터지는 것과 같아서, 어느 쪽으로 먼저 흐를지 말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는 듯했다.
그녀는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어느 날에도 욕설이 날아들었다고 했다.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자상한 남편이었던 사람이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지인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웃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 앞에서 웃어야 했고, 그 웃음이 자기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자라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기 입으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아픔에 놀람과 당혹스러움, 의혹과 분노, 슬픔과 공감,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파도를 치며 일렁였다. 우선은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어떤 표현도 그 이야기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기엔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었고, 힘내라는 말은 무심한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 사람의 삶을 내가 판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그 집에서 살아본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모든 시간을 목격한 사람도 아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믿는 것과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람이 오랫동안 아팠다는 것. 그것만큼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야기 도중 몇 번이나 물었다.
“믿기 어렵죠?”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정말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요’
‘내가 겪었던 일을 정말 있었던 일이라 믿어줄 수 있나요’
‘내가 아팠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요’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는 세상은 얼마나 고단한가.
왜 떠나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하고, 왜 참았는지 설명해야 하고, 왜 이제 와서 말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사람은 이미 한 번 상처를 입고도 다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증언대 위에 올려놓는다.
결국 내가 한 말은 하나였다.
“제수씨가 저한테 거짓말하실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 말을 하고서 난 이 말이 위로하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사실의 확인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날 그녀가 나에게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위로가 아니라 바로 이것, 누군가 자기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어 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후배를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그가 내게 산 술과 밥과, 그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가 내게 보여 준 얼굴도 그 사람이다. 다만 그 얼굴은 다른 얼굴을 가리는 데 쓰였다. 밖에서의 다정함이 안에서의 잔인함을 덮는 천이 되었다는 사실. 제수씨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폭력 그 자체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남편을 좋은 사람으로만 볼 때마다,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부정된다는 것. 자신이 당한 고통의 시간이 계속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
여태까지 난 누구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한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아는 것일까. 그가 술자리에서 하는 농담, 그가 선배나 후배를 대하는 방식, 그가 사진 속에서 짓는 해맑은 표정. 우리는 그것들을 모아 한 사람의 상을 만들고, 그 상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슬롯 속에서 주변인이 바라보는 그 상은 언제나 그 사람이 보여 주기로 의도한 조각들로만 만들어진다. 보여 주지 않기로 한 조각의 모습은 어떤지, 그 조각들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대게는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어쩌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그 사람의 다른 ‘상‘에 대해 알게 되면, 우리는 잠시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이내 슬롯적 방어선을 긋는다. 이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쪽의 말만 듣고는 알 수가 없는 일이고 양쪽의 사정이 다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먼저 알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그 사람이고, 그 문제가 불편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과 연을 끊어야지,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우린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될 일이라고. 그 사람의 사적인 삶에 깊숙이 개입해서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현실이 실제로 그렇고, 모든 것을 속속들이 모르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관여는 또 다른 오해나 파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서도 여기엔 불편한 것을 피하고 외면하려고 하는 우리의 자기 보호본능 역시 함께 작용한 결과란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굳이 더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부란 무엇일까, 부부라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그날 이후로 난 스스로 이 질문을 자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이십 년 넘게 있었으면서,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밖으로부터 안전하게 문을 잠글 수 있는 방이 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도망칠 수 없는 방이었다면. 그토록 가까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가까움이라는 것이 언제나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무섭다.
사랑은 누군가의 존엄을 부수며 존재할 수 없고, 두려움을 먹으며 자랄 수도 없다. 한 사람을 계속 작아지게 만드는 관계를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녀가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은 결국 아이들이었다. 자신이 버텨온 이유도 아이들이었고, 끝내 무너진 이유도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들만큼은 모르고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숨기는 말을 듣지 않아도 집 안의 공기를 먼저 배운다.
현관문이 열릴 때 달라지는 표정, 술 냄새가 나는 밤의 긴장, 갑자기 낮아지는 목소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날 아침 차려지는 식탁.
어른들은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귀가 아닌 몸으로 이미 많은 것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 자란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했다. 이제는 엄마 인생을 살라고. 더는 우리 때문에 참지 말라고.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자신의 젊은 날을 희생했고,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지켜줄게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가 언제부터 소유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언제부터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되어 버리는지.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넘은 사람이 스스로는 여전히 자기가 사랑하는 쪽에 서 있다고 믿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제수씨는 남편이 자기를 향해 "내가 너한테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 말이 그에겐 진심일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난 그 후배가 잘 따르는 형이었는데, 이제 그의 아내가 내게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한다. 나는 그가 내게 보여 준 것만을 안다. 그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난 판단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판단하지 않는 것과 못 들은 척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제 들었다. 들은 것을 듣지 않은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내가 그 후배를 예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냉정하고 냉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들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제수씨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는 우산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에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바닥을 닦지는 않았다. 그걸 닦으면 그녀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흔적이 사라지면 나도 그날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밀어 넣어 못 들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후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알고 있던 얼굴과 그녀가 들려준 얼굴, 어느 것이 진짜일까. 한참 생각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 다 그 사람이겠구나. 인간은 하나의 얼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사람일 수 있고, 친구에게는 다정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행동 몇 가지가 한 인간 전체를 선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반대로 인간의 모든 시간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나만의 방을 가지고 있다. 그 방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때로는 나 자신조차도 들어가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또한 아주 예외적으로 어떤 자격을 얻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는 그 방문을 열어 보일 때도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그 방이 때때로 안 좋은 시기에 자신의 가족에게 열렸을 때, 우리는 종종 비극적인 사건을 뉴스로 접하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방이 있을 것이다. 그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 자신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날 이후 나는 나만의 그 방문을 조금 더 자주 열어 보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다정함이 무엇인가 다른 것을 덮는 천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보여 주는 얼굴과 보여 주지 않는 얼굴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닫힌 방 앞에 서서 열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채로, 그러나 그 방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 계속해서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사랑했다는 이유로도, 외로웠다는 이유로도,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도, 자신 또한 상처받고 자랐다는 이유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의 존엄을 파괴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날 내가 알게 된 것은 겨우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모르겠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어쩌면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조차도 끝까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관계에는 믿음만큼 경계가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사랑만큼 존중이 필요하고, 용서만큼 스스로를 지킬 용기도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건넬 말은 어쩌면 대단한 위로나 충고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랬군요.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군요.”
“당신의 모든 세월을 알 길은 없지만, 당신이 지금 많이 아프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잠시 그 사람의 이야기 곁에 머물러 주는 것.
때로는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제수씨는 아직 그 집에 있다. 아니, 그 집을 떠났지만 그 집은 아직 제수씨 안에 있다.
나는 가끔 짧은 안부를 보낸다. 식사는 하셨는지, 잠은 좀 주무시는지. 답은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누군가의 닫힌 방 밖에서 어느 한 명이라도 서 있다는 것.
그것이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그날 두 시간 동안 조금은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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