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뒤늦게 만난 박해영 작가의 <모자무싸>

by자크슈타인


남들 다 보고 나서야 뒤늦게 <모자무싸>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 마니아인 데다 <나의 해방일지>도 나쁘지 않게 봤었던지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작품 색이 드라마 시청을 시작하기에 좀 힘들게 작용하곤 하지요.


초반 몇 회는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하고 더디게 흘러가서, 그 구간을 넘어서는 일이 매번 작은 허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얼마 전 일본 출장길 비행기에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형님 덕에 옆자리에서 눈팅으로 보던 잔상이 남아 있어 이렇게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었네요.


저 ‘감정워치’란 것은 그 허무맹랑한 설정에 어이없다가도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나도 한번 차 보았으면 싶어지기도 합니다. 감정의 변화로 인해 몸에 반응이 오는 것이고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기에, 애당초 감정이란 게 심박, 땀, 자율신경계 반응 같은 인간의 생체 신호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상상을 통해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가능한 기술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어쩌면 제가 그 시계를 차 보고 싶은 이유는, 저조차 제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이미 지쳐 있고, 별일 아니라고 넘겼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아마도 평생을 그러면서 살아가는 게 바로 인간이란 존재이겠지요.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뜨리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실은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 숨기며 하루하루를 전전긍긍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무가치함’ 그 자체보다, 누군가에게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는 일인 것이겠지요.


그렇더라도 타인 역시 나와 같은 두려움 속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를 증명하느라 힘겨운 만큼, 다른 사람도 자신을 증명하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그러니 타인의 그런 애쓰는 모습에는 조금 너그러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무가치함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배려와 격려를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남들도 다 망해라, 망해라 저주를 퍼붓지는 말고 말이지요. 남이 무너진 자리에 우뚝 선다고 해서 내 삶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각자의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고단한 사람들이 서로의 그 싸움을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해 줄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황동만이라는 인물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말과 행동이 번번이 너무 과하다고 느꼈고, 좋아하던 구교환 배우에게까지 그 불편함이 옮겨 붙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이 배우는 원래 이렇게 오버하는 연기만 잘하나 싶은 찜찜함도 있었지요.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나의 아저씨〉를 볼 때도 처음에는 박동훈 부장의 고민과 어두움, 사람됨, 형제들과 동네 선후배들에게 깊이 얽혀 있는 그의 삶이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희네에 모여 앉은 그들의 수다에 웃고 울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듯 어느덧 그들의 안부를 함께 묻고 있더군요. 결국 이번에도 박해영 작가의 마법에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처음 제 눈에 들어온 사람은 황동만보다 그의 친구 준환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황동만을 피하고 흉을 보아도, 동만을 이해하고 계속 곁에서 어울리는 친구. 어쩌면 현실의 나는 준환이라는 사람과 조금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드라마를 보다 보니, 정작 마음에 걸리는 것은 황동만의 불안이었습니다.


자신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전염된다는 말. 상대가 불안하면 나도 불안하고, 상대가 기분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상대가 나를 편안해하고 좋아해 주면, 나 역시 그 사람이 좋아지고 그를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도와줄 마음이 생긴다는 그의 토로에 마음이 크게 울렸습니다.


왠지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누구와 어디에 있든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자기 색깔이 선명한 사람들이 있지요. 제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여럿 떠오릅니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저는 황동만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의 마음이지만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에 맞춰 온도가 바뀌곤 하니까요.


다만 한 가지 황동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상대가 저를 불편해하거나 싫어한다고 해서, 저도 황동만처럼 똑같이, 혹은 더 세게 그 사람을 싫어하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리지는 못합니다. 짜증을 내고 타박하며 나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일이 저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저 인물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불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실은 저럴 수 있다는 게 부러웠던 것은 아닐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굳이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요.


물론 매사 오버하고 때로는 과격한 그의 언행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모습 안에, 저는 좀처럼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준환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는 안도와 편안함의 감정이었는데, 황동만을 닮았다고 생각하니 불편함과 대략 난감,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사람은 역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모양입니다. 드라마 속 인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을 거울삼아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동만에게 빼놓을 수 없는 부러운 점이 하나 더 있지요.

저에게는 변은아도 없으니까요.


강말금 배우는 워낙 좋아해서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고혜진 대표 역시 멘트 하나하나가 찰진 참 매력적인 인물이고요. 박경세 감독과 최동현 대표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마 슬롯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 어른들의 모습이 가장 많이 비슷하게 투영된 캐릭터들이 아닐까 싶네요. 체면도 지켜야 하고, 자기 몫도 챙겨야 하고, 그러면서도 못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이해가 되다가도 얄밉고, 얄밉다가도 어딘지 낯익습니다. 아마 현실의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있겠지요.


처음에는 황동만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가 조금 덜 불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버린 저 자신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