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기억해야 할 것들
얼마 전, 종종 들르는 매장에 새로 들어온 신입직원 한 명을 알게 되었다. 7월 말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이제 막 스무 살을 조금 넘긴 아이였다. 그리고 그곳이 첫 온라인 게임이란다.
아직은 업무도, 낯선 환경도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님 앞에 서면 쭈뼛쭈뼛했고, 응대하는 말투도 어딘가 어설펐다. 대화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순간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쌓이는 경험만큼 일하는 요령도 늘어날 것이고, 지금은 어렵기만 한 손님과의 대화도 언젠가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재빠른 임기응변과 능숙한 표정 뒤로, 지금의 당황스러움은 조금씩 사라져 갈 테지.
그 아이에게서 풍기는 20대 초반의 풋풋함이 좋았다.
그래,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모르는 것이 많아 두렵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얼굴이 붉어지지만, 그만큼 사소한 칭찬 하나와 조그만 성취에도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던 그때.
오늘 다시 만난 그 아이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랐다.
유난히 밝은 표정에, 텐션도 잔뜩 올라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들뜬 기운이 온몸에서 묻어났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직접 손님을 응대해 제품을 판매했단다.
드디어 ‘개시’를 한 것이다.
직접 손님을 맞이하고, 설명하고, 손님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게 해 구매까지 이끌어낸 첫 번째 판매 실적!
자신의 힘으로 매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자랑스러움과 놀라움, 뿌듯함과 자부심이 그 아이의 얼굴에 마구 뒤섞인 채 드러나 있었다.
그토록 기쁘다니.
누군가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평범한 판매이고 업무의 일상일 뿐이겠지만, 그 아이에게는 슬롯에 첫발을 내디딘 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낸 최초의 성과였다.
배우려는 자세가 좋았다.
손님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사인 매니저를 대하고 소통하는 태도를 보아도 눈에 보인다. 일을 대하는 열정도 좋았고, 작은 성과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보기 좋았다.
그러다 그 아이가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반듯하게 반으로 두 번 접은 기다란 종이 한 장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살며시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조금 전 자신이 처음으로 판매한 제품의 영수증이라고 했다. 그저 상품명과 금액, 결제 시간이 인쇄된 얇은 감열지 종이 한 장.
하지만 그 아이에게 그것은 단순한 영수증이 아니었다. 슬롯생활을 시작한 뒤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결과였고, 자신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자기만의 작은 증서였다.
이 아이에게는 어쩌면 첫 급여명세서보다도 먼저 간직하고 싶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수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수증을 집으로 가져가 어머니에게도 보여드릴 거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조용히 번진다.
“엄마, 드디어 내가 오늘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어.”
아이는 아마 집으로 돌아가 영수증을 펼쳐 보이며, 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고객이었고, 자신이 어떻게 설명해서 손님의 반응이 어땠으며, 결국은 구매를 하셨다..라고 종알종알 이야기하겠지. 아이의 어머니는 그 작은 영수증을 들여다보며 당신이 직접 판매한 것보다도 더 기뻐하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라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하루의 삶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받았던 날,
첫 월급이 내 명의의 통장에 들어왔던 날,
처음으로 고객과 상사에게 칭찬을 받았던 날,
내가 만든 기획안이 채택되고, 내가 넣은 제안서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내가 진행한 일로 회사에 수익이 생겼던 그런 날들.
그때는 그런 작은 성취 하나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었다. 그 기쁨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했고, 부모님에게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지간한 성과에는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더 큰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하고, 기뻐할 틈도 없이 다음 일을 걱정한다.
무언가를 이루어낸 기쁨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이 더 커져만 갔다.
그러니 오늘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어쩌면 그 아이의 젊음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첫 성과를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마음.
한 장의 영수증을 소중히 접어 주머니에 넣는 마음.
그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잊고 살았을까.
그 아이가 오늘의 영수증을 얼마나 간직할지는 알 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일이 점점 익숙해지면, 오늘처럼 판매 한 건에 들뜨는 일은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그래도 조용히 바라본다.
오늘의 기쁨을 완전히 잊어버리진 않기를.
일에 능숙해질수록 처음의 마음까지 무뎌지지는 않기를.
작은 성취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멋지고 능력 있는 슬롯인으로 자라나기를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가끔은 기억해 내야겠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해져 버린 일들 가운데, 한때의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놓여 있는지를.
그 아이가 소중히 접어 주머니에 넣은 첫 영수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