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거 어떻게 하는 건데?

서랍에 돈만 넣어두면 되는 줄 알았지

by이현

국민학교 시절에 매년마다 꼭 했던 것 중에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학교는 나만 가는 곳인데 부모님들에 대해서 뭐가 그리 궁금한 건지 매년마다 부모님 인적사항을 적어오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내 우주였던 두 분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담담하게 이렇게 저렇게 적으라며 알려주시곤 했었다. 몇 개 안 되는 빈칸을 채우기가 왜 그리 채우기가 힘들었는지 어렸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숙제처럼 후다닥 해가면 되는 줄만 알았다. 그중에도 '가훈'란은 꽤나 황당했다. 애초에 이런 게 없는데 어떻게 채우란 말인가.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잠깐의 정적 이후에 아빠가 뱉은 한 마디가 그대로 우리 집의 가훈이 되어버렸다.

아껴야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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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우리 가족의 첫 집은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 배우님이 연기를 하신 그 쪽방보다 더 좁은 단칸방에 아주 작은 연탄보일러가 딸린 부엌이 있는 셋방이었다. 그 집이 있는 골목에서 뛰어놀았던 기억도 생생해서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추억에 젖을 수 있어서 몇 번이고 돌려봤었더랬다. 그 드라마에서 마지막에 성동일 배우님 가족이 판교로 이사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꽤 울컥한 마음이 들었었다. 힘든 시절을 보상받을 가족들의 밝은 미래를 미리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우리 집은 판교는 아니지만 동네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빠, 엄마에게는 어려운 시절을 버티고 드디어 첫 집이 생긴 것이었다. 힘들었던 셋방 시절에 얼마나 아끼며 살았을지 감도 안 오는 게 사실이다. 아빠가 무심결에 뱉었다고 생각한 그 말이 사실은 우리 가족을 짊어지며 스스로 몇 천 번이고 되뇐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낀다는 건 어떤 건지 그 가훈 사건(?) 이후로 조금씩 배워갔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돈을 모으는 행위였다. 국민학교 5학년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한 달 용돈으로 1만 원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학교 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주셨던 용돈이다. 그때부터 나는 청개구리였나 보다. 아니면 '아껴야 잘 산다'는 가훈이 내 머릿속에 꽤나 깊이 자리했던 것인지 손에 쥐어진 돈을 맘껏 쓰지 않고 고이 모셔뒀었다.


명절은 대목이었다. 명절만 되면 세뱃돈을 제법 두둑이 챙길 수 있었다. 세뱃돈을 받으면 부모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나는 스스로 모아보겠다고 그걸 모두 내 주머니로 넣었었다. 내 행동을 막지 않고 믿어준 부모님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열쇠가 달린 내 바카라상 서랍에 모아뒀던 용돈과 함께 고이 뭉쳐놨다. 지폐들이 쌓여갈 때마다 즐거웠다. 아껴야 잘 산다는 아빠의 말은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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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Come back home>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너도 나도 쉬는 시간만 되면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느라 즐거웠었다. 한 번은 친구랑 우리 집에 놀러 가기로 하고 길을 걸어가면서 You must come back home~! 을 흥분해서 불렀었는데 마주 오던 동네 형아가 시끄럽다고 내 멱살을 잡아챘었다. 어린놈들이 시끄럽다고 그랬던 모양이었는데 나보다 덩치도 키도 큰 형이 멱살을 잡아 올리니 겁이 날 수밖에. 조용히 가겠다고 싹싹 빌어서 상황을 모면했었는데 개구쟁이 국딩들은 그 형이 멀리 사라지자 다시 You must come back home~! 하면서 온몸으로 노래를 불러대곤 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노래는 듣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가요탑텐, 카세트테이프, 라디오. 가요탑텐은 보면서 즐기는 재미가 있으니 당연히 본방사수였다. 요즘 애들이 아이돌에 푹 빠져있는 거 어른인 우리들도 다 해봤던 거다. 그래서 왜 그러는지 아는 거지.


라디오도 참 많이 들었다. 중간중간 노래를 틀어주는데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을 해두곤 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겠지만 공테이프를 사거나 공테이프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집안에 있던 테이프 앨범을 죄다 작살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앞 뒤로 멘트랑 겹치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노래만 깔끔하게 담아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앨범을 구해다가 전곡을 공테이프에 복사해다가 듣는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앨범들은 양면 재생으로 각 면 30분 정도씩 60분 재생이었는데, 그걸 또 노래를 더 넣겠다고 120분짜리 공테이프를 구해다가 꾹꾹 눌러 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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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만 노래를 듣기엔 장소가 너무 제약적이다 보니 들고 다니는 카세트가 친구들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소형 카세트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작은 사이즈만 해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는데, 거기에 리모컨이 있다? 내가 트렌드세터지 뭘. 나라고 이게 갖고 싶지 않았을까? 내 서랍 안에 잠자고 있는 '부'가 있지 않은가. 부모님에게 내가 모아둔 돈으로 미니 카세트를 사고 싶다고 얘기했다. 네가 모아둔 돈이니 사용하는 것도 너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아싸!' 이게 바로 돈을 모으는 재미인가! 처음 내돈내산으로 미니 카세트를 손에 거머쥔 그날은 흥분해서 잠도 안 왔었다. 13년 인생에 가장 큰 소비였다.



어린 시절에 돈을 모으던 습관이 어른이 되어도 지속되는 건 어쩌면 학교에 가훈을 적어내는 순간 결정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슬롯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결혼을 한 후에도 나에게 목돈을 만드는 일은 '모으는 것' 이상의 수단은 없었다. 그것도 아주 무계획적으로 말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모으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보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외면하고 살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회사에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받았던 때가 기억난다. 첫 월급은 집안 어른들에게 빨간 속옷을 사준다는 옛말이 기억나서 할머니께 속옷 사드리겠다고는 차마 말을 못 하고 시장에 나가서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사드렸다. 부모님에게도 외투를 사드렸다. 온라인 게임인들은 모두 알겠지만 처음 입사하면 수습기간이라고 해서 월급의 70%만 수령하게 된다. 월세며 생활비를 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 돈인데 할머니, 부모님 옷 몇 벌 사드리니까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두 번째 월급으로는 나를 위한 선물을, 세 번째 월급부터는 본격적인 슬롯생활을 위한 소비가 이루어졌다. 술을 마시러 다니고, 당구를 치러 다니면서 돈을 써댔다. 무계획으로 모으려고 했던 돈은 통장에 남아있을 리 없었다. 항상 텅텅 빈 텅장이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서랍 안에도 지폐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