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시 '이런저런 줄기'에 대하여

by박헤디

이런저런 줄기


곧게 솟은 줄기는

가끔은 바람에 꺾여야 한다


바람의 힘 앞에서

오기로 버티고 버티면


쑥

끊어지기에


연약한 줄기는

가끔은 바람 앞에 버텨봐야 한다


바람의 힘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휙

뿌리째 뽑혀버리기에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이 말이 왜 이리 싫었을까?

모욕적으로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억지를 부리는 사람 앞에서도, 억울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접고 사는 동안 마음속엔 반항심이 자라났다.


'내가 참아줬는데 저 사람은 왜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지?'

'내가 억울한 상황인데 저 사람은 당당하네.'


반항심이 자라나고 자라나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내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세웠고, 사과를 하면 끝나는 가벼운 상황도 점점 파국으로 끌고 갔다.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와 사소한 갈등을 겪었다.

평소처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농담 정도면 풀릴 갈등이었는데, 반복된 말다툼에 나도 그 친구도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다음 달 수학여행까지 말도 섞지 않았다.

수학여행 첫날 저녁, 그 친구와 같은 방에 배정되었다.

싸우기 전에 정한 방 배정이라 바꿀 수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수학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그 친구의 농담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낮 동안은 친구의 농담에 고개를 돌려 몰래 웃기도 하고, 입꼬리를 누르려 입에 잔뜩 힘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밤, 친구의 농담 하나에 깔깔 웃음이 터져버렸고, 나와 친구의 한 달간의 냉전은 끝이 났다.


그제야 치킨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도 그 친구를 향한 불만이 있었고, 그 친구도 나를 향한 불만이 있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서로 느끼고 있었다.

싸움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젠 사과를 할 차례라는 것을.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자존심에 그 마음을 누르고 누르다 한 달간 끌고 온 것이었다.


밤늦게까지 친구와 묵힌 감정을 털어놨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갈등 앞에서 자존심을 부리기보다는 적절한 타협을 택했다.


내 잘못이 있으면 사과를 하루 이상 끌지 않고, 누군가에게 서운했다면 상대방이 다가왔을 때 진실되게 털어놓기로 다짐했다.

갈등에는 연습이 없기에 여전히 조금은 미숙하지만, 최대한 내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말이 불편하긴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자존심은 관계를 굶주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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