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얀 종이'에 대하여
하얀 종이
눈앞에 놓인 종이에
흰색이 전염되는 머리
가득했던 검은 생각들은
하나둘 색을 잃고
검은 것을 뱉어보지만
헛기침만 하는 두 손
바카라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다.
몇 달 전,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고 다짐하며 나만의 규칙을 정했다.
하루에 최소한 이 정도는 적어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크게 부담이 되는 분량이 아니기에 매일 정해놓은 분량 이상을 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가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노트북을 열어도 자판 위에서 손이 방황했다.
이럴 땐 쉬는 것이 제일이라는데,
노트북을 닫으면 다시 전원을 켤 때까지 불편한 마음이 이어졌다.
결국 억지로 바카라상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었다.
아직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자꾸 조급해지고, 그럴수록 머리는 점점 하얘진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어본다.
그러다 그중 몇 개는 새로운 글로 탄생하고, 대부분은 지워진다.
겨우겨우 이어놓은 글을 바라보면 평소보다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더 고치지는 않는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런 날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