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계곡물에 손을 넣고 버티는 삶의 온도

조영성. 「아버지의 겨울 물」(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by뜰에바다

조영성 작가의 「아버지의 겨울 물」은 실향민인 아버지가 겨울마다 '삼각산 자락, 도선사'로 올랐던 일을 기억하면서 펼쳐진다. 평범한 문장에서 아버지의 시린 손과 버티던 손을 기억해 내며, 화자의 삶으로 연결하는 대목이 일품이다.


수필에서, 아버지는 겨울이면 '산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형제를 늘 고향 산하에 두고 내려와야 했던 사람이었다. 형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다 담기지 않았고, 그 마음이 가장 아픈 날이면 어김없이 도선사로 향했다. 그곳은 부모 또한 젊은 시절 자주 찾았던 사찰이었다.

화자는 앙상한 가지들이 가득한 겨울 산에서 '나무들은 서로의 몸을 긁으며 낮게' 우는 계곡의 소리를 들으며 멈춰 서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계곡에 닿으면 아버지는 늘 멈춰 섰다. 그리고 말없이 장갑을 벗었다. 얇게 언 얼음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먼저 들리는 것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였다. 그것은 단순한 균열이 아니라 뼈가 부러지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이었다. 얼음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고, 그 틈으로 드러난 물은 소리 없이 흐르면서도 이상하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때 아버지는 그 계곡 물속에 손을 넣었는데, '순간적으로 통증이 몰려오다가' '감각 자체가 삭제된 것처럼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절대 멈추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묻지 못했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물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으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흔여덟에 나를 얻었다. 늦게 얻은 막내를 두고 “설익은 농사라도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만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었지만, 그 말은 끝내 도착하지 못한 미래였다.

결국 아버지는 그렇게 실향민이 삶을 견디며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말하다'가 끝내 별세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먼저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무너졌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더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눈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쓰고, 반복해서 마음속에 남겨라. 체화되게 해라.” 그 말은 계곡물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주 오래된 물길처럼.

그럼에도 화자는 몇 마디 안 되는 아버지의 적은 말을 기억하며, '만학으로 다시 시작한 공부'를 성취한다. 비로소 아버지가 겨울물에 손을 넣고 버티던 것은 '흐르면서도 사라지지 않으려 했던 삶의 온도'라고 해석하면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처음으로 ‘버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는 방식이었다. 결국 나는 10년 걸린다는 만학의 길을 4년 만에 끝냈다. 성적 우수자로 총장 앞에 섰던 날, 감격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물속에서 손을 빼지 않던 시간의 연장이었다.


수필 '아버지의 겨울 물'은 투박한 문체로, 아버지의 실향의 인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작가에게 이어진 삶의 자세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전연 욕심내지 않은 문장이 오히려 주제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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