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빈 낭독 #섬집 아기 #청산에 살리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번역할 때 그 의미를 살리는 게 어렵기도 하고 묘미이기도 하죠.
음악은 경계가 비교적 덜 합니다. '파두'의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검은 돛배>를 들으면 비통함과 애절함을 노래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클래식이 낯설어도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면 웅장함이 느껴지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들으면 포근한 위로가 전해집니다. <그리그의 아침의 기분>을 들으면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저 멀리서 곧 해가 뜰 것 같습니다.
연주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는 감동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향곡을 연주하고,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부르는 모습은 익숙한데, 그 반대의 경우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작년 추석, <K-가곡 슈퍼스타>에 참가한 많은 외국인 성악가들이 우리의 가곡을 노래하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정확한 가사 전달에 감성적인 뉘앙스까지 참 섬세했어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는데도 여전히 신기하고,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해 주면 고마운 마음마저 듭니다.
해외 음악가들이 내한 공연을 하면 앙코르곡으로 우리나라 곡을 선물로 들려주곤 하는데요,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그리운 금강산>, ‘킹스싱어즈’가 부른 <마법의 성>은 여러 번 다시 들어도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연주곡에도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냅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이 내한했을 때 <마법의 성>을 연주했는데요, 관객들이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우러지는 앙상블이 예술의 전당을 얼마나 아름답게 채웠는지 모릅니다.
피아니스트 조지 할리오노의 앙코르곡은 무려 <사랑하기 때문에>였습니다. 고요하게 울리는 피아노 솔로는, 마치 하늘에 있는 유재하가 자신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인사를 그의 피아노로 대신하는 듯했어요.
우리나라가 아닌 먼 타국 땅에서 자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한 <섬집 아기>의 따뜻하면서도 구슬픈 선율은 어쩌면 홀로 잠든 섬집 아기보다 더 외로웠을 그의 마음을 담아내서 그런지, 용재 오닐이 웃으면서 연주를 시작해도 듣는 동안 눈물이 흐릅니다.
어느 날, 가곡 한 곡을 첼로 연주로 듣게 되었습니다. 잔잔하고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감성에 수묵화 한 폭이 떠오르는 그 곡은 <청산에 살리라>였습니다. 이 곡을 연주한 사람은 놀랍게도 생경한 얼굴의 이방인이었습니다. 짙은 이목구비에 웨이브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한복을 곱게 입은 앨범 재킷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겨온 우리나라의 산천, 이 낯선 외국인이 우리의 금수강산을 저에게 들려주었어요.
모든 번뇌와 시름을 잊고 어딘가 마음을 기댄 채 쉬고 싶을 때, 문득 운무가 드리운 고요한 산속이 그리워질 때, 저는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청산의 살리라>를 듣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 <섬집 아기>
미샤 마이스키, <청산에 살리라>
조지 할리오노, <사랑하기 때문에>
* 오늘 말씀드린 모든 곡을 함께 듣고 싶은데, 앞으로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8lrQQ9zyvk
https://www.youtube.com/watch?v=zKe5ZljvVwI
https://www.youtube.com/watch?v=8c08r76j4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