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원초적인 이유
인터메초(intermezzo),
중간을 뜻하는 단어를 찾다가
잇고 잇는 여러 말을 찾다가
처음 듣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노래의 간주곡, 인터메초.
내 삶에도 간주곡이 필요했다. 무심함에 지쳤다. '나이 탓'을 하는 나를 정면으로 때릴 문장이 필요했다. 조용함을 채우려 틀어놓은 영상에서 '무심함은 전두엽 퇴화에서 시작한다', 누군가 그렇게 말할 때 모두가 그렇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데, 나이가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인 것만 같다. 알려고 노력하는 모든 공부, 공부를 하지 않는 무심함은 마음의 난독증이다. 마음도 소설처럼, 수필처럼, 시처럼 읽어야만 했다. 읽지 않으면 모르고, 모르면 서로가 엇갈린다. 멈춘다. 그 끝은 외로움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심함과 다정함이 반대말은 아니다. 일종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 같다.
나의 인생 콘셉트는 식상이다. 그중에서도 상관이 도드라져서 말할 때, 거센 문장들을 주의한다. 첫째, 투덜대지 않는다. 누군가 '힝'하고 삐지면 애교처럼 귀여울 수 있지만, 나는 아니다. '힝'하면 고집스러운 마녀로 보인다. 화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윽박지르고 맘속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도 안쓰럽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마음속 단 한 줄만 꺼내도 남들에게 요란하게 들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판단병을 주의한다. 혼자 날카롭게 반응해서 판단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게 모두를 병들게 할 때가 있다. 노력해도 어려운 병이다.
무심함과 다정함, 스스로를 확인하는데 사주를 쓰는 건 의외로 적절했다. 감정을 섞어서 본 세상보다,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게 조금 더 쉬웠다. 속이 곪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목젖까지 차오른 싶은 말을 하도 참아서 가슴까지 마구 뛸 때도 있었다. 신경증이 돋는다. 어떻게든 말을 뱉어야지만 숨 쉴 것 같았다. 다행히 폭발하기 전에 찾은 표현법은 나처럼 남도 읽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완벽하게 사주에 상대방을 빗대는 건 오판할 가능성이 많다. 사주전문가들도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에 내담자들의 배경을 충분히 듣고, 그를 기반으로 해석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성격의 속도와 취향은 '일주와 월주의 오행과 십이간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맥락을 어디까지 다정하게 수용하는가? 천천히 혹은 깊게 단어를 사용하는가? 해석 방향이 다양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맥락과 직관은 한국 언어문화에서 의례 그렇다고 이해하는 ㅡ맥락,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몇 번까지 쓰느냐의 ㅡ직관이다. 지식보다는 대화를 대하는 태도다.
그렇다면, 애증의 편재들은 무심할까?
편재가 뚜렷한 친정엄마와 남편의 경우는 대화에서도 극도의 효율을 따진다.
가장 쉬운 단어로 짧아야 말이 잘 통한다.
남편이 "불과 달러의 차이는 뭐야?"라고 물었다면, "조선과 한국의 차이."라고 하면 좋아할 것이다. 그 기원부터 어떻게 그 말이 생겼고, 그 말은 지금은 쓰고 안 쓰고, 유튜브와 신문을 비교해 가며 성의껏 대답할수록 이해를 못 한다. 특히, 대화에서 조금만 독특한 단어를 써도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 사전적 의미 1번, 언어와 숫자가 똑같은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단어가 놀이도구이자 삶이기도 한 나와는 매우 다르다. 편재들은 감정적인 걸 날카롭다고 말하고, 다듬지 않은 사실들을 증거라고 말하곤 한다. 시각적인 증거, 말보다 글이 언어코딩에 수월했다. 그에 맞춰 감정을 최소화하고, 생각을 요약해서 글로 생각을 말하는 편이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고
일은 일이고
건강은 건강이고
남이 어떻게 하든 우리 고객들한테 맞춰서 일하면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일하든 내 몸 내가 챙기면서 일하는 거고.
이렇게까지 말해도 또 성질부리면 나도 똑같이 또 할 거야."
"나는 당신이 남 앞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투정 부릴 때,
그리고 "봤어야 알지(누구로부터?)" 말할 때, 살의를 느껴.
내가 괜찮아서 가만있는 게 아니고, 싸우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어서 입 다물고 사는 거야.
나도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봤어야 알지,
웃기고 있네,
네가 그렇지,
아까 한 말 전부 다 쓰레기 같은 말이야.
쌓아둘까, 말할까, 덮을까, 하다가
지금 가슴이 아파서 보낸다.
둘 다 열심히 사는데, 내가 잘못한 것도 없이 얻는 거 없이 불친절을 당하는 게 억울해서."
이런 글에 남편은 답이 없다.
대화의 인터메초, 간주곡으로 여겨지는 시간이다.
이를 테면, 댓글 없는 좋아요
혹은 댄스가수들의 '댄스 브레이크 타임'처럼 분명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데, 언어적 순간은 멈춘다.
무심함과 완전히 반대편이다.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전했지만 무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런 마음과 별개로 무심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다. 표현방법만으로 사랑을 의심한다. 무심함은 전두엽 퇴화에서 시작한다, 처럼 시간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이보다 원초적인 이유, 오랜 피로감 한계선에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보일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성격이라는 게 장단점으로는 나눠도 '좋다 나쁘다'로 구분할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젠 알았는데도 쉽지 않다.
봐도 봐도 어렵고, 해도 해도 모르겠어서
ㅡ 사주풀이를 해서라도 ㅡ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들여다봤다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