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의 인도 여행기
인도여행을 앞두고 인도 관련 바카라자를 몇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몇 년 전 읽었던 이 바카라을 망설이다 집어 들고 와서 다시 읽었다. 1997년에 출간된 바카라이니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도에 대한 입문으로는 명불허전이다.
류시화 작가님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은 대한민국에 그야말로 '인도 배낭여행 신드롬'을 일으킨 바카라이었다. 하지만 낭만 가득한 바카라을 덮고 여행자들이 마주한 실제 인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카라과 현실의 간극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인도의 매력은 있었으리라 본다.
바카라이 묘사하는 인도는 수천 년을 이어온 힌두교 문화와 뿌리가 맞닿아 있다. 기원전부터 시작해 이슬람의 지배와 불교의 등장 속에서도 묵묵히 명맥을 이어온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삶 그 자체다. 바라나시 가트에서 시신이 불타고 옆에서는 목욕재계를 하는 풍경은 생과사가 하나라는 윤회 사상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인도인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노 프라블럼(No Problem)" 역시 게으름이 아니라, 업보(카르마)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낙천적인 삶의 방식일 뿐이다.
물론 현실 인도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카스트 제도의 그늘, 끈질긴 호객행위와 기상천외한 사기꾼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과 위생 문제는 이방인이 온몸으로 부딪혀 이겨내야 할 날것의 현실일 뿐이다.
그러기에 무턱대고 환상만 품기보다는 그 거친 틈바구니 속에서 나만의 인도를 발견하는 것이 각자 여행자들의 몫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깨달음을 얻겠다고 동굴 속 요기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아침마다 골짜기의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다 주며 시중을 들다 동굴에서 쫓겨나서 돌 움막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 스승은 틈만 나면 그 돌집을 다시 원상태로 허물어뜨리고 가르침은 주지 않았기에 화가 난 저자는 물 항아리를 깨트려버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러자 마침내 그 요기는 떠나가는 버스까지 뒤쫓아와서 그제사 세 가지 만트라를 전해주고 간다.
"첫째,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말을 마치고 나서 요기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옴" 하 고 진동을 보냈다. 그 순간 척추 끝에서 온몸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강한 진동이 일면서 몸 전체로 퍼졌다. 축복과 환희의 물결이 내 안에 밀려왔다.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미치광이로 알았던 그가 더 없이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밧줄로 온몸을 휘감은 미치광이 사두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서 저자를 20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다며 괴롭힌다. 견딜 만큼 견디다 참다못한 저자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제게 무얼 일깨워 주시려는 건가요? 지금 말씀해 주시면 안 되나요?"
사두는 대답 대신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난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다시 한번 날 잘 보게. 내 몸에 무엇이 감겨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내가 말해 줄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이 밧줄은 내 스스로 감은 것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사두는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 몸에 걸치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그러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그것을 갠지스강에 힘껏 집어던졌다
영국인들은 인도인을 지배하기 위해 철저하게 이간질과 분리정바카라을 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잘 먹힌 것이 종교 간 갈등이었고 결국 인도는 해방 후에 힌두와 이슬람교로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로 나뉘었다.
인도에는 힌두, 이슬람 외에도 힌두 이슬람교를 다 수용하는 시크교가 있는데 정치, 슬롯적인 갈등과 충돌을 떠나서 이 시크교인의 환대와 말은 나에게도 뭉클했다.
*시크교(Sikhism)는 15세기 인도 북부 펀자브 지방에서 시작된 세계 5대 종교 중 하나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우상 숭배를 비판하며, 인간의 절대적 평등과 유일신 신앙을 핵심 교리로 삼고 있다.
긴 머리를 터번으로 감고 있기에 인도에서 터번을 두르고 수염이 긴 자들은 시크교도들이다.
저녁을 기다리는 사이에 내가 물었다.
"미스터 싱. 당신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지 않습니까? 인도인들은 흔히들 갠지스강을 강이 아니라 어머니이자 생명의 여신이라고 하던데요."
미스터 싱이 말했다.
"우리 시크교인들은 신분 차별 제도나 갠지스강 순례에 반대합니다.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그 물을 마신다고 해서 불결한 마음 이 씻어지는 건 아닙니다."
내가 또 물었다.
"당신의 신은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인내심을 갖고 생을 살아갈 것과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
인도인은 남의 일에 참견하고 질문하길 아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도가 심했던 바라나시 여인숙의 늙은 주인이 있다. 주인은 매일 아침 나갔다 돌아오는 저자에게 오늘은 뭘 배웠소?란 질문을 하는데 매번 대답하기 귀찮았던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지만... 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결국 여행도 우리 삶도 다 "배움"을 위한 거 아닐까? 우리는 날마다 더 배우기 위해 살고 있고 결국 체험 통한 삶의 배움으로 우리 영혼이 업 그레이드 되는 것이 이번생의 목적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저자가 인도 어록이라고 수첩에 적은 내용들이다.
"당신들은 왜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가?" 내가 묻자 남자가 대꾸했다.
"당신들은 왜 쉬지 않는가?"
"무엇을 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내가 묻자 머리를 산발한 요가 스승이 말했다.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라.”
인도여행을 열 번을 한 저자에게도 인도는 여전히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나라다. 더럽고, 익살맞고, 황당하고, 고귀하고, 기발하고, 화려하다. 인간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들이 뒤범벅되어 마술처럼 펼쳐진다.
그들은 고집 세고, 낙천적이고, 기품 있고, 성스럽고, 때로는 슬픔만큼 삶에 대해 열정적이고, 동시에 베짱이보다 더 게으르다.
가장 오래된 사원 전체가 남녀의 현란한 성행위 장면으로 조각돼 있는가 하면, 현대 식 건물 벽에다 소똥을 말린다고 덕지덕지 발라 놓기 일쑤이다.
물건값을 계속해서 깎으면 "그렇게 물건값을 깎으니까 넌 행복하냐?" 하고 상인들은 반문한다.
그러나 뭄바이의 해변에서는 보석 같은 아라비아해를 감상할 수 있고, 남인도 첸나이의 해변에서는 성난 노도처럼 파도쳐 오는 벵골만을 마주하는 나라, 북쪽 캐시미르에서는 신비한 설국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나라, 면적은 우리보다 33배나 큰 나라, 지금은 인구 14억 7천만 명으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 위국이 된 나라, 그게 인도다.
바카라의 마지막에는 인도의 ’노 프라블럼교‘에 대해 자세한 부연이 있다.
내가 버스를 놓쳐 발을 구르고 있어도 인도인들은 버스를 세워 주는 대신 노 프라블럼을 외쳤고, 이질 설사병에 걸려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화장실을 드나들어도 노 프라블럼이 그들의 처방전이었으며, 숙소를 구하지 못해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도 노 프라블럼이라고 타일렀다.
신발을 잃어버렸는가? 노 프라블럼이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맨발로 정글 속을 누비고 다닌 역사가 있다. 그러니 당신이 몇 시 간 동안 맨발로 다닌다고 해서 원숭이로 퇴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졌는가? 노 프라블럼이다. 대학에 갖다 바칠 등록금으로 인도 여행을 떠나면 몇 년을 귀족처럼 다니며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가? 노 프라블럼이다.
그 사람은 이미 그런 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도록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훌륭히 해 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그 배역을 당신 앞에서 해 보인 데는 분명히 어떤 교훈이 있을 것이다.
간단한 실천을 위한 <노 프라블럼 명상법>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노 프라블럼!'을 열 번 외친다.
누구를 만나든 '노 프라블럼'으로 인사를 건넨다.
수첩 맨 앞장에 굵은 글씨로 '노 프라블럼'을 적어둔다.
혹시 이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해도? 물론 노 프라블럼이다!
인도 구루의 말처럼,
인도라는 이 기상천외하고 신비로운 마법 지대에 발을 들일 때, 가슴속에 이 주문 하나만 품고 가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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