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무상을 느낀 오사카성

권불십년 역사의 교훈

by김별
이 글은 수정, 보완해서 재발행 되었습니다


오사카를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인 오사카성을 보러 나섰다.


오사카성 공원 동쪽 입구에서 출발하는 로드 트레인(꼬마 열차)을 타고 천수각 아래까지 편안하게 이동했다. 열차에서 내려 고개를 드는 순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천수각의 자태가 시선을 압도했다.

그 화려한 외관을 감상하는 동안 머릿속은 이 거대한 성을 둘러싼 일본역사의 서사로 가득 찼다.


오사카성은 일본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우리에게는 조선 침략의 원흉이기도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권력의 심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1583년, 천수각을 황금으로 번쩍이게 꾸민 당대 최고 규모의 성을 지었다.

오사카성가는 꼬마열차와 성과 해자


일본에서는 그와 함께 전국시대를 호령한 세 명의 영웅을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시로 비유하곤 한다.


울지 않으면 베어버리겠다는 불같은 혁신가 오다 노부나가,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다는 지략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결국 노부나가가 쌀을 찧고 히데요시가 떡을 빚었으나, 그것을 먹은 최후의 승자는 기다림의 천재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는 말처럼,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이에야스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로 권력을 장악했다.


이어 1615년 오사카성 전투를 통해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자결케 하며 도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이로써 군사 정권인 '막부'의 중심은 오사카에서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지금의 도쿄)로 이동하게 된다.

이 비정한 역사적 이야기를 곱씹으며 천수각을 바라보니, 화려함 뒤로 사라진 권력의 무상함이 묵직하게 밀려왔다.


여기서 역사의 흥미로운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도요토미 가문을 무너뜨리고 에도 막부(1603~1867)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 한일 관계는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파탄 난 조선과의 국교를 먼저 재개하자고 손을 내민 이가 바로 이에야스였다.

사람을 기다릴 줄 알던 그의 유연한 외교 정바카라 덕분에 조선은 '조선통신사'를 파견했고, 에도 막부가 지속된 260여 년 동안 양국은 전쟁 없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누렸다.


그러나 이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비극의 역사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핵심 군부 세력의 뿌리는 다름 아닌 야마구치현(옛 조슈 번) 지역이었다.

이곳은 과거 임진왜란 때 선봉에 서서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계열의 무사들이 대대로 칼을 갈며 숨어 살던 고향이었다.


이 조슈 번 출신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은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고, 그의 사상을 그대로 물려받아 훗날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다.


결국 임진왜란 때 우리를 침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 광기가 군국주의라는 옷을 갈아입고 이토 히로부미 세력으로 부활하여 조선을 삼킨 셈이다.


화려한 오사카성 천수각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성 앞을 걸어 나와 바로 옆 NHK 방송국 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 오사카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오사카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진열품들을 관람하니, 방금 보고 온 성의 역사와 일본의 복잡다단한 문화가 한층 더 깊숙이 이해되었다.

일본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의 그림과 전시물


뚜벅이 발의 피로를 풀은 정원 정자


이어서 오사카의 명문 정원인 게이타쿠엔 정원으로 이동했다.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정갈하고 고요한 밀실 같은 정원이 숨어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일본의 정원 문화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대비와 보완'의 미학이 존재한다.


칼날 위의 삶을 살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살았던 사무라이 군사정권 시대, 무사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요함'이었다.

피 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과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들은 대자연을 축소해 놓은 정원 안에서 홀로 명상을 하며 삶의 균형을 찾고자 했다.


서슬 퍼런 칼날의 삭막함을 다정한 초록의 정원으로 보완하려 했던 그들의 내면이 정원 구석구석에 짙게 배어 있는 듯했다.


초록의 품에 안겨 잠시 뚜벅이 여행의 피로를 푼 뒤, 오사카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쓰텐카쿠 전망대와 레트로한 신세카이 시장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멈춘 듯한 신세카이 골목은 지금도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적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손때 묻은 지폐와 동전을 정성스레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서, 빠름보다는 익숙함과 전통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다정함이 읽혔다.


저녁으로는 오사카의 명물인 골목길 꼬치요리, 쿠시카츠를 맛보았다. 주문 즉시 튀겨내 종류별로 '겉바속촉'의 바삭한 식감이 아주 별미였다.


시원한 나마비루(생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주위를 둘러보니, 낮 동안 그토록 매뉴얼대로 움직이며 깍듯하고 엄격했던 일본인들이 이곳에서만큼은 짐을 내려놓고 활짝 웃고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고요한 정원에서 마음을 다스렸듯, 오늘날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이 시끌벅적하고 레트로한 골목에서 바삭한 쿠시카츠와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긴장을 풀고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것이리라.


정원과 골목, 엄격함과 소박함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오사카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현지인식당 카레소바와 덮밥, 일본식 카레요리도 별미였다


모든 걸 현지인 맞춤으로 고객 특화해버리는(custmized ) 일본의 장점이 인도식 카레를 달달하고 향도 강하지않은 우리 입맛에도 먹기좋은 카레요리로 변화시켜 버렸다.


레트로한 신세카이시장과 꼬치요리


어느덧 해가 저물 무렵, 택시를 타고 이동해 아들이 미리 예매해 둔 e-티켓으로 하루카스300 전망대에 올랐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달한 지상 300m 높이. 360도 전면 통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오사카 시내는 숨이 멎을 듯 거대한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사방으로 서서히 대지를 물들이는 장엄한 붉은 일몰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문득 시선이 곁에 선 아들에게 머물렀다.

이번 8박 9일의 여정 동안 이 무거운 전체 일정을 총괄 기획하고, 엄마의 약한 체력과 아킬레스건을 온종일 살피며 동선마다 화장실 위치부터 배려해 주던 속 깊은 장남.


엄마에게 늘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앞장서 걷던 아들의 듬직한 뒷모습이 그제야 마음속에 통째로 쿵 하고 들어앉았다.


어느새 도심에 하나둘 불이 켜지며 보석을 뿌려놓은 듯 화려한 야경이 펼쳐졌지만, 내 눈가에는 알 수 없는 애잔함과 뭉클한 감동이 먼저 차올랐다.


언제 이렇게 자라서 엄마의 든든한 등대가 되어 주었을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울컥함과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화려하게 빛나는 오사카의 밤하늘 아래, 아들이 선물해 준 가장 눈부신 풍경과 그보다 더 눈부신 배려를 마음 깊이 새기며, 그렇게 고마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오마이 뉴스에서~

역사와 미식, 그리고 푸른 쉼표가 함께했던 오사카 여행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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