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이 오다

산통은 고통 중에서도 특별한 통증이다

by현월안




딸이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사위에게 연락을 받았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딸은 네 시간째 진통을 하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주는 그 특유의 묵직함이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만큼 길게 느껴졌다. 병원 안에서는 딸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온몸으로 고통과 싸우고 있고, 나는 병원 주위에서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읽다 만 바카라을 펼쳐 들었다. 몇 줄을 읽다가 다시 같은 문장으로 되돌아온다. 눈으로는 바카라장을 넘기고 있지만 마음은 온통 묵직한 감각뿐이다.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내가 딸을 낳던 날도 이런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진통을 견뎠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만 생각했을 뿐, 그 고통이 한 생명을 세상으로 나오는데 얼마나 크고 깊은 통과의례였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딸이 산모가 되어 그 자리에 누워 있다.



세월은 참 묘하다. 한때 내가 품었던 작은 아이가 어느새 한 생명을 품은 엄마가 되어, 지금 자기 몸으로 새로운 생명의 문을 열고 있다. 나는 태우며 그 문밖에 서 있다. 손을 잡아 줄 수도 없고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기다리던 사위가 커피 한 잔을 건넨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커피를 받아 들었다. 따뜻한 커피의 온기가 손에 닿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다. 목구멍까지 차 올라온 불안이 커피보다 먼저 나를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커피를 그만 내려놓았다.



병원 휴게실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조금 서성이다가 또 멈추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작게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대신 아파줄 수 없고, 아무리 간절해도 그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우리 딸이 순산하게 해 주세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게 만나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하고 또 기도 했다.



산통은 고통 가운데서도 특별한 고통이다. 한 생명이 몸 밖으로 나오기 위해 산모의 몸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다. 몸이 열리고, 숨이 가빠지고, 다시 밀어내고, 또 기다린다. 그 시간 동안 산모는 고통과 싸우면서 또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도 없는 고통이다. 오직 자기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고통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다른 한 생명이 온몸을 내어주는 일. 산모는 자기 몸을 통해 아이에게 세상의 첫 문을 열어준다. 아이는 엄마의 고통을 딛고 세상으로 나온다.



생명은 그렇게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지나 세상에 온다. 여섯 시간이 지나갔다.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유난히 길다. 병원 복도의 시계가 한 칸 움직일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움직였다. 딸은 지금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문득 딸이 어렸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날들, 열이 나면 밤새 머리맡을 지키던 날, 처음 학교에 가던 날, 어느새 훌쩍 자라 자기 삶을 꾸려가는 성인이 되고. 그 작은 아이가 지금 새 생명을 세상에 데려오기 위해 자기 몸으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다.



내가 친정엄마의 몸을 지나 세상에 왔고, 딸은 내 몸을 지나 세상에 왔고, 이제 딸의 몸을 지나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진다. 생명은 그렇게 이어진다. 한 사람의 사랑이 다음 사람의 삶으로 건너가고, 다시 그 사랑이 또 다른 생명을 품는다. 그것은 어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의 이치다. 생명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진통이 9시간쯤 지날 무렵 마침내 산모의 이름이 불렸다. 순간 내 심장이 크게 뛰었다. 곧이어 들려왔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 아이 울음소리를 따라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우렁차게 들리는 그 첫 울음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없던 한 사람이 이제 세상에 존재한다는 신호였다. 조금 전까지 딸의 몸 안에 있던 아이가 우렁차게 소리를 낸다. 새 생명이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왔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애가 타더니,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나니까 마음이 고요해졌다. 딸은 그렇게 해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을 곁에서 함께 했다. 내 딸이 한 여자의 자리에서 엄마의 자리로 건너가는 일은 어쩌면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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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오늘 9시간 진통 끝에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오늘 딸이 견뎌낸 고통의 시간도 그렇게 지나갔다. 딸이 엄마가 되기 위해 감내했던 고통과 눈물과 숨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해주고 싶다. 우리 딸 고생했다고... 가을이 막 시작되는 때에 새 생명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왔다. 작고 어린 생명은 또 가족 안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기쁨이 될지 미리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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