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 되어 간다

생명의 신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겸손해져야 하는지 알게 된다

by현월안




딸이 아들을 낳은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열 달 동안 딸의 몸 안에 품고 있던 생명을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딸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하루하루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손가락 하나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딸의 품에 안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워 가는 중이다. 딸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생명을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새삼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은 딸의 몸은 아직 회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몸이 겪어야 했을 고통과 긴장, 그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 시간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고, 또 그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산모가 감당해야 하는 수고는 정말 가볍지 않다. 생명은 꽃처럼 피어나지만, 그 꽃 한 송이를 피워 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깊은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가.



딸은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직은 몸을 추스르는 일조차 쉽지 않을 텐데, 딸 품에 안긴 작은 생명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운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작은 머리를 가만히 손으로 받쳐 주고, 혹시라도 불편하지 않을까 살피는 손길에는 이미 사랑이 넘쳐흐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웠던 딸이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그 변화가 내게는 여전히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아름답다.



나는 딸에게 여러 번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어떤 말로도 그 벅찬 감정이 다 담기지 않는다. 긴 산통을 겪고 새 생명을 품에 안은 딸이 기특하고, 제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아이를 보살피는 모습이 대견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일을 지나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는 딸이 기특하다. 내가 키운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품고, 낳고, 돌보고 사랑을 배워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이 낳는 일보다 더 대단한 일이 또 있을까. 한 생명을 세상에 맞아들이는 일보다 숭고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에서 감당하는 위대한 일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랜 세월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바치고, 누군가는 절망의 시간을 건너 다시 일어서고, 누군가는 이름 없이 타인의 삶을 지켜 낸다. 그러나 한 생명을 낳는 일에는 인간이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사랑, 고통과 기다림이 함께 들어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넘어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출산은 한 생명이 세상으로 나오는 일이고, 한 사람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존엄이기도 하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도 다시 태어난다. 아이가 첫 숨을 쉬는 순간, 여자의 삶에도 새로운 숨결이 숨 쉰다. 몸은 지쳐 있고 마음은 낯선 일들로 분주하지만, 그 안에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랑이 자라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 안에 없었던 줄 알았던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겸손해져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동글동글한 얼굴, 오물거리는 입술, 꼬물거리는 손가락과 발가락.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작은 아이의 존재만으로 온 가족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엄마와 아빠의 예쁜 모습만 골라 닮은 듯한 얼굴은 바라볼수록 사랑스럽고, 순둥순둥한 표정으로 잠든 모습은 세상의 어떤 근심도 잠시 잊게 한다. 작은 몸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들어 있을까. 아직 한 번도 걸어 보지 않은 길과 만나 보지 않은 사람들, 웃음과 눈물, 수많은 계절과 꿈이 작은 심장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배가 고프면 울고, 따뜻한 품 안에서 잠이 든다. 우리 가족들은 그 아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기뻐한다. 새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럽다. 새 생명이 우리 가족에게 사랑을 건네고 있다. 딸에게 엄마가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딸은 아기를 바라보며 눈에 사랑을 가득 담은 채 대답했다.

“이 아이가 내게 와서 행복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아이가 딸에게 와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그 짧은 말 안에는 새 생명을 향한 감사와 경이와 조건 없는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딸은 이제 아이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작은 울음에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고, 아이의 미소 하나에 온종일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전과는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자신의 어릴 적을 다시 떠올리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테고, 자신이 받아 온 사랑의 깊이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딸이 엄마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엄마였던 시간을 다시 살아 보는 듯하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지나온 날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들, 조금 더 안아 줄걸, 조금 더 기다려 줄걸 하고 뒤늦게 떠올리는 순간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고 또 자기 자신을 다시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도 자란다. 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부모의 마음도 그만큼 넓어진다.



이제 딸은 그 길의 첫머리에 서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밤새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설칠 날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 최선인지 몰라 고민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아이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어 마음 아픈 순간도,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쁜 순간도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만큼 걱정하고 소중한 만큼 두려워하고, 지켜 주고 싶은 만큼 마음 졸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갈 것이다.



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주 하나를 품에 안는 일이다. 우주는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그 안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별과 세상이 존재한다. 딸은 지금 자기 품에 안긴 작은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그 사랑 안에서 하루하루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사랑이 또 한 사람의 삶을 밝히고, 그 삶이 다시 다른 삶을 비추면서 세상은 조금씩 이어져 갈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사랑은 그렇게 시간의 강을 따라 흐른다.



아들이 태어난 지 열흘째 되는 날, 딸에게서 새 생명의 기적만이 아니라 사랑의 다음 장을 본다. 내가 딸에게 주었던 사랑이 이제 딸의 손길과 눈빛을 통해 또 다른 생명에게 전해지고 있다. 내가 딸에게 건넸던 다정한 말과 마음이 딸의 삶에 남아 있듯, 딸이 아이에게 주는 사랑도 그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사람의 몸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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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딸은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 작은 입술이 젖을 물고, 아이의 손이 엄마의 몸 어딘가에 가만히 닿아 있다. 창밖으로는 평범한 하루가 흐르고, 세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 조용한 방 안에서는 사랑스러운 모자 삶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말한다.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깊고 위대한 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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