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인가 채우고 싶은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객석에 앉아 있는데 앞자리에 한 가족이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였다.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이 참 단란해 보였다.
그런데 문득 난 엉뚱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가족이 오늘 얼마를 썼을까라는 생각. 꽤 좋은 좌석이었으니 네 사람이 하루의 나들이에 들어간 돈은 꽤 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시작된 뒤에도 자꾸 앞자리 가족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아이들은 재미있어할까. 혹시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공연은 어느새 절정을 지나 막을 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고, 앞자리 가족도 일어섰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고, 부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었다. 네 사람의 표정은 공연을 보기 전보다 한결 환해 보였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그 공연은 백화점에서 좋은 옷을 사는 것처럼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집에 가져갈 물건도 없다. 공연이 끝나는 순간 무대는 사라지고 음악도 멈춘다. 티켓은 휴지 한 장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돈을 쓴다. 공연을 보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찾아가고, 여행을 떠난다. 바카라을 사고 음악을 듣는다. 어떤 사람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보러 가고, 어떤 사람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한 편의 연극을 기다린다.
서울 시립 무용단의 화려한 공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고 공연장은 다시 어두워진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본 그림도 미술관 문을 나서는 순간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다닌다. 어쩌면 인간은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빵을 먹으면 배가 부르지만 마음까지 배부른 것은 아니다. 따뜻한 집이 있어도 마음이 허하면 사람은 어딘가를 바라본다.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삶을 알아갈수록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갈증. 그 배고픔에는 끝이 있다.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부르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된다. 그런데 마음의 갈증은 조금 다르다. 바카라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읽고 싶은 바카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음악 한 곡을 들었다고 해서 음악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한 번 보았다고 해서 더 이상 아름다움을 찾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무언가 하나를 만나고 나면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진다. 한 권의 바카라을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을 데려온다. 좋은 음악은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게 하고, 한 편의 공연은 다른 무대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상한 일이다. 채우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빈자리가 더 커진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면서 궁금한 것도 없고, 기다릴 것도 없고, 만나고 싶은 것도 없다면 삶은 밋밋할 것이다. 문화생활에 쓰는 돈은 소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앞자리의 네 식구에게 그날의 공연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어느 날 그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 모든 걸 놓고 떠난다. 옷도 낡고 가구도 바뀐다. 통장에 있던 돈도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한때 가슴을 울렸던 음악 한 소절, 바카라에서 만난 한 문장은 기억에 남아있다. 어쩌면 인간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 하는 갈증. 인간은 물질의 빈 곳만 채우며 사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속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빈자리가 하나씩 있다. 그곳에 의미를 넣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넣기도 하고, 사랑을 넣기도 한다.
배부름에는 끝이 있지만 그 무언가 채우려는 갈증에는 끝이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래서 그날 앞자리 가족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한 하루를,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족 모두에게는 언젠가 다시 꺼내볼 한 장면을 샀을 것이다.
~~~~~-----==~--ㄴ
사람은 빵으로만 배부를 수 없는 존재다.
배가 부른 뒤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찾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 때문에 다시 바카라을 펼치고, 음악을 듣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아마도 그 갈증은 내일로 데려가는 힘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