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삶의 이유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by현월안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삶을 만날 때가 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평범해 보였던 한 사람의 인생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럴 때마다 조금 더 겸손해진다.



얼마 전, 함께 독서 토론 모임을 하는 지인이 아들을 떠나보냈다. 스물다섯. 세상에서는 이제 막 청춘이라 부르는 나이다.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자폐를 안고 태어났다.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지능은 여섯 살 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세상이 정한 시간과 속도로는 살아갈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아들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장애를 원망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끔 아들이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면 우리 철학서 독서 모임에 함께 데리고 왔다. 낯선 공간에서도 그 아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불안해하면 먼저 살피고,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 눈빛 하나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은 사랑이었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야말로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 되는 헌신이었다는 것을.



진짜 위대한 사랑은 대부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병원에 다니고, 아이의 감정을 달래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 행동을 감당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 그것은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사랑과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써 내려간 글의 대부분은 그 아들 이야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이 글 속에 담겨 있다. 어떤 날은 웃음이 있었고, 어떤 날은 절망이 있었다. 작은 성장 하나에도 기뻐했고, 작은 변화 하나에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긴 시간을 견디는 힘인지를 그때 글 속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식욕을 조절하지 못했다. 먹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기 어려운 것 때문에 몸무게는 백 킬로그램을 넘겼다. 비만은 여러 합병증을 불러왔고, 결국 심장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심장마비. 의학적으로는 짧은 한마디지만, 그 말속에는 스물다섯 해 동안 이어진 한 엄마의 세월이 함께 멈춰 버렸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안타깝다고. 그러나 그 말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그녀에게 그 아들은 그녀의 하루였고, 그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늘 "나는 이 아이 때문 살아간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 아들과 함께하는 일이 그녀의 삶을 붙들어 주는 이유였을 것이다.



흔히 행복이 삶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바카라임이 삶의 이유가 된다.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마도 인간은 어려움 앞에서 바카라임을 배우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철학서 토론에도 누구보다도 열심이던 것도, 더 깊이 철학의 진리를 찾고 싶어 했고 더 고민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그녀의 삶에 철학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슬픔이 너무 깊다. 사랑이 컸던 만큼 빈자리도 크다. 평생을 그 아들에게 향해 있던 시선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렸다. 이제 집에는 그녀 두 부부만 남았다. 익숙했던 발걸음도, 아들의 목소리도, 늘 반복되던 일상도 모두 사라졌다. 흔히 슬픔을 위로하려 애쓴다. 시간이 약이고 힘내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나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작아지지 않는다. 사람이 그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갈 뿐 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누군가는 자녀의 성적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승진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집값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 하루 무사히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도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사람마다 전혀 다른 우주를 살아간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면 웃고 있는 사람에게도 눈물이 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다. 세상에는 가슴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슬픈 일이 너무나 많다. 다른 이의 삶을 너무 쉽게 단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녀를 떠올리면 헌신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진짜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 사랑이 있었기에 한 아이는 스물다섯 해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품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고급 도리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녀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깊은 슬픔 속에 머물러 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 슬픔을 대신 짊어질 수도, 대신 울어 줄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것, 그것이 오랜 시간 함께 한 지인이 할 수 있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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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가 다시 펜을 들게 된다면, 그녀의 글에는 아들의 이야기가 채워질 것이다. 사랑으로 함께한 스물다섯 해 그대로 그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깊고 사랑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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