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
적성이라는것 꿈이라는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무렵부터 나는 글쓰는 것에 매료되었다. 시험기간에도 공부대신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고, 퇴마록에서 부터, 천계영의 오디션,그리고 베토벤이 쓴 연애편지까지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심심하면 이미 읽은 이야기를 이리 저리 바꿔보면서, 나도 그런 글을 남기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오만했던 꿈을 꾸었더랬다. 그런 꿈은 나를 꽤 규모가 있던 독후감 대회에 몰래 응모하게 만들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상까지 받게 만들었다. 시상식에는 국어담당 선생님이 같이 가주셨는데 , 가는 길에 도서상품권을 주시며 바카라 많이 읽고 꾸준히 글을 써보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유난히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셔서 항상 어렵게 느껴지던 분어셨는데 그런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바카라도 더 많이 읽고 습작도 열심히 했었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바카라을 읽고 가장 많은 글을 썼던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먹고 대학진로를 결정하면서 작가의 꿈을 접었다. 물론 작가가 되고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프로패셔널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도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것이 일반적이었기때문에 나도 당연히 그래야할 것 같아서 국문학과에 합격하고나서도 경영학과에 갔다. 그래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어쩔 수 없어서 영문학을 복수전공하기는 했지만 예전만큼 문학에 대한 애정이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국어나 영어강사를 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다보니 나의 20대와 30대가 훌쩍 지나갔다. 이 시기에 내가 즐거운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게 뭘까 몰라 방황하던 청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즐거운 일 말고도 인생에서 해치워야할 일들이 많아서 퀘스트를 깨는 일에 바빴기 때문이기도 할 것 이다.
이혼을 하고 나서 다시 바카라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나를 다시 바카라과 글쓰기로 이끌었다. 읽고 쓰는 행위는 나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없어도 내 글이 나를 위로하고 읽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꿈도 다시 생겼다. 그래서 다시 대학원도 입학해서 열심히 문학도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런데 공고룝게 내가 다시 꿈을 꾸게 된 시기는 내 딸이 내가 작가라는 꿈을 처음 꾸게된 시기의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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