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로 정의된 나, 동사로 움직이는 나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이름을 말한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곧바로 덧붙인다. 직업, 직바카라, 역할, 소속. 이렇게 몇 개의 단어를 더 얹어야 내가 또렷해진 것처럼 안심한다. 이 단어들은 대부분 명사다. 짧고, 분명하고, 설명을 대신해 주는 언어다. 우리는 왜 이토록 명사에 기대어 자신을 말하려 할까.
명사는 편리하다. 복잡한 내면을 길게 풀어 놓지 않아도 되고, 나의 위치를 단번에 정리해 준다. 상대도 이해하기 쉽다. ‘어떤 사람인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 간결함 속에서 묘한 안정도 느낀다.
나 역시 오랫동안 명사들 뒤에 서 있었다. 회계팀장, 온라인 게임인, 가장. 이런 단어들이 나를 지탱해 준다고 믿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말들이 없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단단한 명사를 향해 나아갔다. 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팀장으로. 명사가 바뀔 때마다 나의 크기도 함께 커진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훅 들어온 멘토의 질문.
"명함이 사라진다면, 나는 누구일까?"
회사 문을 나서면 직바카라은 효력을 잃는다. 역할도, 상황이 바뀌면 금세 희미해진다. 그렇게 하나씩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나’이다. 그때 마주하게 되는 낯선 감각. 이름도, 직바카라도 없이 서 있는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명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멈춰 있는 삶과 닮아 있다. 명사는 이미 완성된 상태이거나, 도달해야 할 고정된 목표를 의미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성공한 사람’, ‘인정받는 전문가’, ‘좋은 부모’ 같은 단어를 향해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그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맞추고, 다듬고, 때로는 잘라낸다. 하지만 놓치는 것이 있다. 그 단어 안에 나의 오리지널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묻게 되는 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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